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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5년 예비자교리11--사람에 대하여
작성자이철희 쪽지 캡슐 작성일2015-07-31 조회수3,191 추천수0

1.5 사람에 대하여

2015-0724. 금요일. 이태원.

1. 오늘은 하느님의 피조물에서 그중 뛰어난 존재이고, 가장 으뜸이라고 하는 사람에 대한 설명을 말씀드릴 차례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지난 주간에 말씀드린 천사(天使)’라는 표현과 조금 충돌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들으면 좋겠습니다. 천사나 사람은 모두 다 하느님의 뜻을 대하고 실천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천사는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최고의 존재이고, 사람은 같은 최고의 존재이기는 하지만 눈에 보이는 육체, 시간이 지나면 다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돌아가야 하는 특징을 갖춘 존재라는 것이 차이가 있는 대상입니다. 한편으로는 서글픈 존재이지만, 그것도 우리가 대하기 나름입니다

 

2. 어째서 사람을 눈에 보이는 뛰어난 존재이고, 으뜸인 존재라고 말할까요? 사실 인간의 어느 구석을 봐도 그렇게 봐줄 모습은 없습니다. 어리거나 젊었을 때는 아름답고 예쁘다는 소리가 자동적으로 따라붙겠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러한 판단에서 멀어지는 모습으로 자꾸만 바뀝니다. 그 상황을 맘에 들지 않는 표현으로 말하면 늙는다(!)’고 하겠지만, 좋은 소리로 하면 원숙해진다(!)’고 말할 것입니다. 이왕이면 좋게 생각할 일이지만, 사람이 생각하는 그 표현만으로 얻고 싶고 설명하고 싶은 것을 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안타까운 일입니다

 

3. 우리가 흔히 아는 4대종교와 신앙에서, 그리스도교나 그리스도교의 바탕이라고 할 수 있는 유대교를 제외하면 사람의 시작이나 창조에 대해서 말하는 종교나 믿음은 없습니다. 이렇게 신앙과 종교에서 사람의 기원/혹은/시작에 관해서 언급이 있다는 것은 그에 대한 관심이 있다는 뜻일 것이고, 종교와 신앙에서 그런 언급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 하겠습니까?


4. 사람은 흔히 자신이 모르는 것을 연구하고 탐구하고, 알려고 애씁니다. 하지만 사람이 원한다고 해서 그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알고 싶다고 바라는 것을 모른다고 해도 세상에서 목숨을 유지하는 일에 큰 문제가 될 일은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신앙이나 종교가 알려주지 못한다면 아쉽다고 말할 것이고, 그렇게 묻는 알고 싶은 질문에 대답이 없다는 것은 그 신앙과 그 종교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내용이 아니라는 정도만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5. 다른 종교와 신앙에 대한 것을 ---제가 아는 한도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우리 그리스도교신앙에서 말하는 내용을 찾아볼 시간입니다. 한 걸음 더 늦게, 우리 신앙에서 말하는 내용을 다루기 전에, 세상의 학문에서는 이 사람에 대한 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는지 먼저 말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6. 세상을 해석하고 다루는 학문은 흔히 진화론을 바탕으로 합니다. 이 진화론의 상대적인 위치는 창조론입니다. 창조론이라는 단어가 언제부터 쓰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창조론은 모든 것의 기원을 하느님에 대한 믿음에서 해석합니다. 당연히 하느님을 전제로 말하기 때문에, 과학에서는 창조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면, 진화론에서 말하는 내용을 먼저 살피는 것이 순서일 것입니다. 사람은 수많은 세포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단세포가 아니가 다세포라는 얘기입니다. 그렇게 많은 다세포로 이루어진 사람은 그 시작이 어머니의 자궁에서 만나는 난자(卵子)와 정자(精子)의 결합으로 이루어집니다. 생물학에서는 이렇게 사람이 생기는 과정을 말한다고 하지만, 그렇게 난자와 정자가 합쳐지기 전, 그보다 앞서서 이루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만족할 만한 설명을 해주지 않습니다

 

7. 사람의 시작을 난자와 정자의 합체에서 시작한다고 보는 것이 진화론 혹은 과학의 입장이니, 그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아는 것도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주 작은 크기의 난자(0.2mm)와 난자보다 더 작은 크기의 정자(60미크론(1미크론은 100분의 1mm)으로 총 길이는 난자의 4분의1)가 수많은 가능성과 기능을 DNARNA라는 것으로 그 안에 품고 있다고 과학에서는 말합니다만, 어떤 이유로 그런 것이 가능한지, 어떤 힘으로 그렇게 특별한 능력을 작은 크기 안에 갖추게 됐는지 그 이유를 아는 것도 아니고 설명을 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과학에서 밝혀낸 사실은 그렇다고 하데(!)’정도일 뿐입니다. 그 일에 왜 그런 현상이 생겼는지 그 과정이나 목적을 아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알아듣도록 설명하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과학의 기준에서는 신앙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신앙은 그 과정을 설명합니다. 또한 과학에서는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신앙의 내용이나 기준에 대해서 단죄하거나 판단하려고 하지만, 신앙의 기준에서는 과학에서 제시하는 것에 대하여 안타깝다고 말은 하지만 단죄하거나 판단하지는 않습니다.


8. 또한 과학의 설명은 시기상으로, 난자와 정자의 결합이후의 발전과정에 대해서는 생물의 진화로 설명합니다. 사람은 유인원이나 원숭이와 같은 포유류에 속하는 것으로 말하고, 그 포유류보다 앞선 대상은 양서류나 파충류를 얘기하며, 시간적으로 그 앞 단계로 이야기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단세포와 다세포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저도 현실에서는 과학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삽니다. 그래서 제가 이 시간에 신앙을 중심으로 말한다고 해도 세상의 기준을 완전히 무시하거나 아무런 상관도 없이 살기에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저는 사제로 살고 있는 사람이고, 이 시간은 그리스도교신앙을 설명하는 시간이기에 과학의 기준이나 설명보다는 신앙의 내용을 더 우선으로 말할 것입니다. 신앙을 대하는 과학의 입장은 자기들의 기준에 일치하지 않는 하느님의 존재나 개입을 믿을 수 없다(!!!)’는 것에서 시작하고 거부하며, 과학에서 말하는 것을 가장 확실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과학의 설명역시도 자기들이 말하는 중간단계가 실존(實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면, 무슨 자신감으로 신앙에서 말하는 것을 무조건 거부하고 부정하는지 신앙을 먼저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9. 이래서 과학과 신앙은 영원히 평행선을 달린다고 말합니다. 어느 한쪽편의 입장에서 다른 쪽을 완전히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단죄할 수도 없는 것이 정상인데, 과학은 신앙을 부정하고 단죄하지만 신앙은 그렇게 행동하는 과학을 안타깝게 여긴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과학과 신앙의 씨름은 이 정도만 하겠습니다.


33. () 사람은 무엇이뇨?

() 사람은 영혼과 육신으로 결합된 자니라.

34. () 영혼은 무엇이뇨?

() 영혼은 신령하여 불사불멸하는 체(), 육신과 합하여 그 생명이 되느니라.

10. 신앙에서 말하는 사람에 대한 설명입니다.

신앙에서 말하는 사람에 관한 기본진리는 영혼과 육신의 결합체라고 합니다. 저도 설명을 이렇게 하지만, 육신/육체는 눈에 보이는 대상이니까 안다고 말할 수 있고 그 구조도 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만, 영혼에 대해서는 달리 말할 방법이 없습니다. 인간의 감각기관으로서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영혼에 대한 얘기는 신앙에서 말하는 개념일 뿐이기에 과학에서는 말하지는 않는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사전을 찾으면 영혼(靈魂)<가톨릭>신령하여 불사불멸하는 정신/영신(靈神). 육체에 깃들어 마음의 작용을 맡고 생명을 부여한다고 여겨지는 비물질적 실체라고 설명합니다. 여러 가지로 설명해도 세상에 사는 우리가 흔히 앞세우는 과학의 도구로서는 영혼이 어떤 것인지, 어떤 모양인지, 어떤 기능을 하는지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안타깝지요? 그런데도 신앙에서는 그 개념을 사용하면서, 그 대상이 무엇이며 어떠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11. 사람은 자신이 알아듣지 못하는 대상을 만날 때, 적당히 도전하다가 물러서고 그러다가 포기하는 태도를 취하기도 하고, 그 대상이 된 상대방의 존재를 아예 무시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사용합니다. 특별히 신앙에 관한 것이거나, 신앙으로 설명하는 것에 대해서 신앙에서는 두 번째 태도를 취할 것입니다. 말 그대로 과학을 앞세우는 태도에서 수긍할 수 없는 것일 테니, 만일 여러분이 같은 태도를 갖고 이 시간을 대한다고 해도 그렇게 대하는 태도는 신앙을 대하는 태도로서는 올바르지 않다는 것 외에 따로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없습니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선택하고 살아가는 존재라면, 나와 다른 선택을 할 때, 그 선택을 바꾸게 할 수 있는 것은 폭력이나 무력인데, 그것은 말 그대로 세상의 논리에서나 사용할 수 있는 것일 뿐입니다.


12. 영혼이 무엇인지 세상의 논리나 과학의 논리로서는 따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하지만, 신앙에서는 그게 무엇인지, 그게 어떤 대상인지 설명하려고 합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를 영혼과 육신이 합한 것이라고 한다면, 만일 영혼과 육신이 분리된 존재가 있다고 한다면 그 대상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닐 것이고, 그때 그 사람은 죽은 존재가 되는 것이고, 세상에서 사멸하는 존재가 되어, 땅 속으로 가거나 화장하는 일만 남겨둔 상태가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으로부터 온 영혼이 육체와 함께 있을 때, 그 대상은 사람이 되고, 그 사람은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고 실천할 줄 아는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혼이 어떤 것이며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13. 세상의 논리에서는 이 영혼이라는 표현대신에, 정신이나 마음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하지만 표현이 다르니 뭔가 설명하는 의미도 다를 것입니다. 제가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은 아니니, 제가 말하고 싶은 것만 표현하겠습니다. 세상의 논리에서는 영원(永遠,=한없이 오래 계속되는 일.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일)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정신과 마음이라는 것에 대하여 그런 표현을 쓰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신앙의 용어에서는 영혼이 하느님에게서 온 것이므로 그 존재는 시간에 구애되지 않으며 영원하고, 사람으로 살 때 함께 머물렀던 육체와 분리되면 하느님의 심판과 판단을 받기 위하여 하느님에게고 나아간다고 설명합니다. 물론 세상의 논리는 아니기에, 신앙의 논리와 표현을 세상의 기준으로서는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믿고 받아들이느냐 혹은 거부하고 거절하여 내 삶은 그저 이 세상에 살아있을 때 눈에 보이는 존재로서 끝을 맺는다고 생각할 것이냐의 차이뿐입니다. 강요할 것은 아닙니다만, 여러분은 어떤 쪽의 설명에 수긍하십니까? 어느 쪽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고, 어느 쪽에 여러분의 삶을 일치시키겠습니까? 그리고 그 선택에 따라 사람의 삶은 아주 많은 차이를 보일 것입니다. 물론 선택이라는 말을 강조하다보면, 신앙에 대한 요소는 사라지고 모든 것을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오류나 잘못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만, 그렇게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35. () 인류의 으뜸 조상은 누구뇨?

() 인류의 으뜸 조상은 아담하와, 천주 저들을 낙원에 두사, 주의 계명을 잘 지킴으로 죽지 않고 바로 천당에 오르게 하고자 하시니라.

36. () 천주 원조(元祖) 두 사람을 어떻게 내시느뇨?

() 천주 아담의 육신은 진흙으로 만드시고 하와의 육신은 아담의 갈빗대를 취하여 만드시고 그 둘의 영혼은 아무 재료도 없이 창조하여 주시니라.

14. 최초의 인류에 대한 신앙의 얘기를 다룰 순서입니다.

최초로 생겼다는 그 사람의 이름을 알까요? 아마도 알 방법이 없을 것입니다. 그때는 문자도 없었을 것이고, 이름을 붙인다는 것 자체가 요즘의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리에서는 최초의 사람은 남자였고, 그의 이름은 아담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최초의 그 대상의 이름을 지은 하느님을 누가 만나서 들은 것일까요?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세상의 논리에서는 사람이 세상에 등장한 것을 꽤나 오래전으로 계산합니다. 학생시절에는 인간의 등장을 4만 년 전이라는 소리로 들었던 듯(!)한데, 요즘에는 그보다 훨씬 더 오래전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소리를 듣곤 합니다. 50만 년 전 혹은 60만 년 전 인류의 두개골 뼈 발견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세상에 인간이 등장한 지 꽤나 오래된 것처럼 말합니다만, 과학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에 불만을 갖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어떤 기준에서 그렇게 말하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15. 세상에서는 그렇게 말하는 시간에 대하여, 신앙에서 시간이나 길이를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최초의 인간은 아담이었고, 그 배우자는 하와였다고 합니다. 누가 본 사람이 있는지는 모릅니다. 당연히 저도 본 일이 없습니다. 세상의 과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아담의 두개골 뼈나 하와의 몸을 이루었던 뼈가 어딘가에 있다는 소리를 들은 일도 없습니다. 신앙에서는 그러한 것을 중요한 단서로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담이라는 낱말을 사전에서 찾으면, ‘성경에 나오는 인류최초의 남자, 히브리어로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설명합니다. 히브리어에서 우리가 아는 흙(=soil)아다무스라고 발음합니다. 아다무스에서 시작된 인간이라고 하여, 가장 처음으로 등장한 남자의 이름을 아담이라고 했을 거라는 소리를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구약성경, 첫째권인 창세기에서 볼 수 있는 내용에 사람의 창조에

***1,26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그가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집짐승과 온갖 들짐승과 땅을 기(어다니)는 온갖 것을 다스리게 하자.” 27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2,7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대한 내용이 두 군데(창세1,26-27 / 창세2,7)에 나옵니다.


16. 두 가지 내용 중에서 이 시간에 말하는 내용과 일치할 내용은 창세기2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 모습도 누군가 관찰하고 기록해서 우리에게 전달해준 내용은 아닙니다. 다만 신앙에서 그렇게 말하는 내용일 뿐입니다. 사람은 흙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창세기2장의 내용이라면, 먼저 읽은 창세기1장의 내용은 사람의 중요성에 대한 것입니다. 사람은 세상의 논리에서 말하는 진화의 산물로 아니고, 다른 동물이나 포유류에서 온전하게 바뀐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의해서 세상에 태어났으며, 하느님에게 적용될 존엄성을 갖고 있기에 더 존귀한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말하고 나면, 진화를 기본으로 설명하는 세상에서 인간의 가치가 다른지 설명하지 못하는 단점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보충논리입니다. 어차피 현재 살아있는 사람 중에서 그 누구도 이 놀라운 사실을 보거나 증언할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17. 남자인 아담은 흙에서, ‘흙의 먼지(2,7)’에서 태어났고, 여자는 남자의 갈빗대에서 태어났다고 신앙에서 말합니다. 과학의 입장에서는 확인되지 않은 소리입니다. 실제로 남자와 여자의 갈비뼈의 개수가 다른가요? 손으로 짚어가면서 세어 본 일은 없습니다만, 그 일이 사실과 일치하는지 그 내용은 잘 모르지만, 성경에서 그 내용을 기록한 것은 남자와 여자의 갈빗대 뼈의 수가 정말로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을 기록하기 위한 목적이 성경기록에 있는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내용을 신앙에서는 남자의 보호를 받을 대상인 여자’, ‘심장을 보호하는 기능을 하는 갈빗대 뼈에서 나온 것이 여자라면 그렇게 한 일의 시작이 된 남자의 목숨만큼이나 중요한 대상인 존재인 여자라는 의미로 해석할 것입니다.


18. 사람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후, 그들이 살던 곳을 교리문답에서는 낙원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다른 말로는 에덴’(동산)(=Eden,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이브가 죄짓기 전에 살던 낙원)이라고도 설명합니다. 어디인지는 모릅니다. 성경도 그 장소가 어딘지 기록하지 않습니다. 창세기의 이러한 기록은 장소를 알려주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다스리시던 곳,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구비해주셨고 살게 하신 곳이라는 의미로 알아들으면 충분할 것입니다.



19. 교리문답37항의 내용은 위에서 살핀, 구약성경창세기의 1,26-27에 나온 내용을

37. () 성경에 천주 사람을 당신 모상대로 내셨다하니 이는 무슨 뜻이뇨?

() 이는 천주 사람에게 다만 본성에 적합한 지력과 자유와 의지를 주실 뿐 아니라, 또한 과성(過性=조력성총)은혜와 초성(超性=상존성총)은혜로 저를 아름답게 꾸미셨다는 뜻이니라.

38. () 천주 원조(元祖)에게 주신 초성(超性)은혜는 무엇이뇨?

() 천주 원조에게 주신 초성은혜는 은총과 성덕(聖德)이니 이로 인하여 저들이 천당영복을 누릴 자격을 얻게 되니라.

39. () 천주 원조(元祖)에게 주신 과성(過性)은혜는 무엇이뇨?

() 이 은혜는 사욕(邪慾)편정(偏情)이 없고 지혜가 밝고 고통이 없고 죽지 아니하는 은혜니라.

강조한 표현으로 알아들으면 될 내용입니다.

이 내용은 앞서 말씀드린, 진화론의 개념에서 인간이 왜 중요한 대상이고, 다른 동물보다 더 귀한 존재로 대우받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것에 대한 대답이 될 것입니다. 사람이 귀한 존재가 된 것은 그 안에 하느님에게서 받은 모상을 갖춘 존재이기 때문이라고는 것입니다. 모상(模像)본뜬 상이라는 의미를 담아서, 라틴어로는 이마고 데이(Imago Dei)’라는 표현으로 씁니다. 외국문자 하나 더 쓰는 것이 큰 자랑은 아닙니다만, 인간이 본래 혹은 태생적으로 갖추지 못한 것을 하느님께서 허락해주셨기에 사람이 갖게 된 것이고, 바로 그것 때문에 인간이 그만큼 존귀한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이 은총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훗날 은총에 대한 설명을 또 할 수 있는 시간이 있겠습니다만,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심어주신 은총을 상존성총이라고 한다면,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에 우리가 노력을 더하여 좋은 결과를 맺게 하는 것을 조력성총이라고 구별하면 될 것입니다. 어떤 것이 바로 그 내용에 정확하게 일치하는지 설명하기는 쉽지 않고, 제게도 그것을 정확하게 구별할 능력은 없습니다. 간단하게 문답의 내용으로만 설명하면, 초성은혜와 과성은혜를 38번교리문답과 39번교리문답에서 설명합니다.


로마서8, 18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비추어보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9 모든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20 피조물이 제 구실을 못하게 된 것은 제 본의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렇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21 곧 피조물에게도 멸망의 사슬에서 풀려나서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스러운 자유에 참여할 날이 올 것입니다

20. 하느님의 은총은 사람들의 삶에 큰 열매를 맺습니다. 하지만 사람이라는 존재는 왜 그런지 몰라도 처음부터 불완전했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신약성경에 있는 로마인들에게 보낸 사도바오로의 편지8장을 보면, 하느님께서 처음부터 그렇게 되기를 원하셨다는 안타까운 표현이 나옵니다.

하느님께서 불완전한 인간을 창조해야 당신의 능력(!)을 드러낼 수 있기에 그랬다고 해야 할까요? 사람의 감정을 담는다면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것은 지나치게 인간위주로 해석하는 것이 될 것이고, 실제로 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니 그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는 표현이 가능할 것입니다. 과연 하느님은 당신의 피조물이 불완전한 존재이기를 바랐을까요? 그게 아니었다면, 인간은 하느님에 의해서 창조되지도 않았어야 하고, 일정한 기간을 살다가 죽는 존재도 아니었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사람에게서 그러한 모습을 볼 수는 없는 법입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실제로 바라는 것보다는 약하기 때문입니다

 

40.() 천주 이런 은혜를 원조에게만 주시뇨?

()그렇지 아니하니, 인류의 시조(始祖)되는 아담으로써 전 인류에게까지 전하여 주시고자 하셨느니라.

21. 하느님이 바라시는 것은 아담이라는 최초의 사람을 통해서 전체 인류에게 선물을 주시고자 했다는 것이 교회공동체의 시각입니다. 교리문답40번의 내용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세상에서 바라는 것과는 달리, 인간에게는 한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 중에 악한 사람이 있을까요? 당연히 없다고 하는 것이 정상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온전히 선한 사람은 있을까요? 이 질문에 긍정의 대답을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중간이라는 대답은 없다고 한다면, 사람은 자신이 바라는 것만큼 온전하고도 완벽한 모습으로 하느님께 다가서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도 있을 것입니다.


41. () 천주 낙원에서 원조의 충성을 어떻게 시험하시뇨?

() 천주 지선악수(知善惡樹) 실과를 먹지 말라는 계명으로써 시험하시느니라.

42. () 원조 주의 계명을 지켰느뇨?

() 원조 주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마귀 유인에 빠져 금한 실과를 먹음으로 교만한 죄와 순명(順命)치 아니한 죄를 범하였느니라.

43. () 천주 원조를 어떻게 벌하시뇨?

() 천주 원조에게 주신 초성은혜와 과성은혜를 도로 거두시고 저들을 낙원에서 내치사 마귀의 지배에 버려두시느니라.

22. 사람이 선택하는 악과 그에 대한 결과를 다루는 내용입니다.

사람이 악에 넘어간 일을 묘사하는 창세기의 내용은 첫 인간 아담의 아내, 하와가 뱀의 꾐에 넘어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 먹고, 남편에게도 주고, 자기들의 벌거벗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뭇잎을 엮어서 앞을 가리면서 시작합니다. 성경의 세계에서는 다 드러낸다는 것이 악에서 멀리 떨어진 행동이라고 묘사하는 것이지만, 실제 사람들의 삶은 그렇지 않습니다

 

23. 죄는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벗어나서도 잘 살 수 있다고 우기는 것이며, 그러한 행동이고, 실행입니다. 그리되면 당연히 인간은 하느님의 축복에 직접 참여할 수 없고, 자신이 생각한 올바른(?) 삶의 방법이 바로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사람에게 순명이란 어떤 덕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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