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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회교리 아카데미: 성경의 안식일과 희년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8-09 조회수2,564 추천수0

[사회교리 아카데미] 성경의 안식일과 희년

불평등 해소 · 정의 사회를 위한 시간



“물신숭배는 악마의 배설물이다.”

지난 7월 초 남미를 방문하신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시 한 번 분명하고도 단호한 어조로 고삐 풀린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인간의 얼굴을 가진 경제 모델’을 촉구했다. 많은 이들, 특히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이나 우리나라의 보수 인사들은 교황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냐는 식으로 비난하지만, 교황은 거침없이 자본주의의 폐해를 비판하고 가난한 이들의 권리를 옹호하고 있다.

교황의 행보는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모습이 아니며, 교회의 전통 안에서 볼 때도 전혀 새로운 것도 아니다. 교회의 역사 안에서 신앙인들의 실천은 이를 증명한다. 무엇보다도 사도행전에서 볼 수 있는 초대교회 공동체의 삶이 그러하다.

이미 시작부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평등한 공동체를 지향했고, 가난한 이들을 편드는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구약성서 안에서 드러나는 신앙인들의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그 중심에는 안식일과 희년이라는 종교적이면서도 사회적인 제도가 자리 잡고 있었다.

복음서의 여러 구절에서 예수님께서 안식일 율법에 맞서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안식일 율법을 없애시려는 것이 아니라, 바리사이 사람들의 형식주의를 배격하신 것이었다. 안식일 규정을 부자와 권력자들만 지킬 수 있게끔 풀이함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하는 것으로 뒤집어 놓은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었다.

오히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다’(마르코 2,27)는 것이 올바른 해석이다. 실제로 안식일 정신의 근간은 휴식과 하느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노예와 여성이 노동을 담당하고 있던 사회에서 7일 중의 하루를 일을 중단하고 쉬어야 한다는 것은 인권선언과도 같은 것이다. 7년 중에 1년을 쉬는 안식년은 안식일의 확장이다. 안식년에는 사람과 가축만 쉬는 것이 아니라 땅도 쉬어야 한다. 6년 동안 농사지은 땅에는 농사를 짓지 않고 놀리는 것이다. 사람만 쉬는 것이 아니라, 우주만물이 쉬어야 하고, 온 생태계가 창조의 시간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더 나아가서 안식년을 일곱 번 보내고 난 다음 해, 그러니까 50년마다 이스라엘 민족은 희년을 지냈다. 희년에는 노예들을 풀어주어야 하고, 빚을 탕감해주어야 했다. 50년 동안 토지와 재산의 불균형을 다시 원상회복시켜야만 했다. 여호수아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와서 12지파에게 공평하게 나누어준 그 상태의 재산으로 되돌아가는 해가 바로 희년이었다.

희년은 가난과 불평등이 한 세대를 뛰어넘지 못하게 한 규정이었다. 루카복음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공생활을 주님의 희년을 선포(루카 4,16)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바로 그것 때문에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의 미움을 사기 시작했다.

안식일·안식년·희년의 정신은 하느님이 빚으신 참다운 인간과 우주를 회복하는 것이다. 불평등을 없애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것이다. 그것의 선포를 예수님은 당신 사명으로 받아들이셨다. 오늘의 교황 역시 이를 선포하는 것이다. 가난과 불평등은 경제 자체에서 나오기 보다는 부자들이 만들어 놓은 제도와 법에서 나온다. 안식일의 법은 그것을 뒤집는 것이다. 안식일과 희년의 규정은 하느님께서 거저 베풀어 주신 구원 사건이 정의와 사회적 연대의 원리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안식일과 안식년, 희년의 규정은 축소된 사회교리(간추린 사회교리, 25항)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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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화 신부는 1998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2010년 교황청 그레고리오대학교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부산교구에서 직장노동사목을 담당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5년 8월 9일,
이동화 신부(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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