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아카데미] 광복의 기쁨
빛을 되찾다(光復)
지난 8월 15일 우리 민족은 광복 70주년의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한 분 한 분 돌아가시는 와중에 우리는 지난 70년 간 풀지 못한 숙제의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게 됩니다. 국내 갈등의 잠재적 요소로 남아있는 친일세력 청산 문제는 물론이고, 위안부를 비롯해 일본으로부터 받아야 하는 보상문제, 역사왜곡, 독도문제와 같은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광복의 기쁨과 함께 시작된 분단의 상처, 북방한계선과 같은 여러 정치적, 군사적 문제들은 분명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광복이라는 한자어를 글자 그대로 보면, ‘빛을 되찾는다’는 뜻입니다. 신앙인에게 빛은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부활성야 전례에서 “그리스도 우리의 빛”이라고 노래하며 그분의 부활, 빛을 되찾음을 경축합니다. 하지만 바로 이어지는 부활찬송에서 노래하듯이, 이 빛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짙은 어둠을, 우리 안에 뿌리깊이 자리잡은 죄와 그 상처를 마주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빛은 바로 그 어둠 속에 비추고, 그 어둠을 밝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민족의 광복을 이야기할 때에도 단순히 일본의 강점과 그에 따른 어두운 상황만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자리잡고 있는 어둠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해야 합니다.
광복이라는 기쁨은 우리의 임시정부가 독립전쟁,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으로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그래서 전후 보상과 영토 문제, 친일세력 청산의 문제에 있어서 당당한 주체가 되지 못했다는 어둠을 안고 있습니다. 청구권자금이라는 형태로 과거 우리가 겪은 피해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당장 급한 눈앞의 자금 지원을 위해 국민의 아픔을 외면한 정치인들의 행동, 냉전시대에 한일관계를 적당히 봉합하여 자유진영의 최전방으로 삼고자 했던 강대국들의 움직임이라는 어둠도 분명히 바라보아야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수많은 피를 흘리고도 정전협정의 협상테이블에 주체로 앉을 수 없었던 우리의 모습을, 그 과정에서 정전협정과 북방한계선 설정 자체가 갖고 있는 분명한 모순도 직면해야 합니다. 정전협정에서 해상의 군사분계선은 설정되어 있지 않았고, 후에 쌍방의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설정되었습니다. 당시 해상군사력이 없던 북한은 이에 대해 명시적인 인정도 거부도 하지 않았다가 오늘날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연평해전과 같은 참사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되지만, 우리가 주체가 되지도 못하고 맺은 협정과 그 이후 역사적 현실의 어둠은 솔직히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회교리로 세상을 바라보는 과정은 ‘관찰’, ‘판단’, ‘실천’의 세 단계를 거칩니다. 광복 70주년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아전인수격의 역사해석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현대사가 안고 있는 아픔을 직면할 수 있어야 합니다(관찰). 이를 분열과 정쟁의 도구로 삼지 말고 십자가의 어둠을 이기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비추어야 합니다(판단). 세상의 판단에 휘둘리지 말고 이 어둠에 작은 불빛을 밝힐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실천). 특히 올바른 현실인식(관찰)이 있을 때에 사회교리를 통해 올바른 신앙의 실천을 할 수 있습니다. 광복 70주년을 맞는 우리가 우리 어둠까지도 바라볼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인으로 성장하여 진정한 빛을 되찾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김성수 신부 -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현재 고덕동본당에서 사목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5년 8월 16일, 김성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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