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아카데미] 경제 민주화
우리나라 경제와 재벌 문화
이제는 물 건너간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한때 ‘경제 민주화’는 지금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핵심적 공약사항이었다. 사실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에 여야를 떠나서 경제 민주화를 내세우고, 그 핵심적 내용이 재벌의 기업지배구조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재벌의 폐해가 컸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에 재벌이라고 불리는 기업집단의 역할이 컸고, 지금 역시 긍정적인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의 근원 역시 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라고 말할 수 있다. 긍정적 역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한국 경제가 마치도 동맥경화에 걸린 것처럼 제대로 순환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재벌 체제인 것이다.
재벌은 두 가지 측면에서 한국 경제의 동맥경화를 불러일으킨다. 첫째는 소수의 재벌 기업집단이 우리나라 전체의 산업과 시장을 독점적으로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피부에 직접적으로 와 닿는 예를 들자면, 몇몇 재벌의 대형마트는 재래시장이나 골목상권에 돈이 돌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다. 대형마트뿐만 아니라 웬만한 빵집과 편의점, 심지어 교통카드의 최대주주가 재벌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재벌의 독점은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으며, 자영업을 비롯한 서민경제의 어려움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둘째로, 재벌은 대체로 특정 개인 또는 ‘총수 일가’의 혈족이 다수의 대규모 독과점 계열사들을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지배하는 형태이다. 이러한 총수 일가가 많아야 5% 정도의 주식으로 50% 이상의 의결권을 실질적으로 장악함으로써 수많은 계열사와 이해당사자의 의사에 반해 자기 이익을 거두어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의 롯데그룹의 싸움에서 잘 볼 수 있듯이, 1%도 되지 않는 지분으로 95조에 달하는 기업집단을 차지하려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 벌어지는 막장 드라마를 서민들은 우두커니 지켜봐야 한다. 대기업과 우리나라 전체 산업, 그리고 시장 전체가 몇몇 사람들의 의사결정에 놓여있는 것이다.
이러한 몇몇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완화시키는 경제 민주화야말로 자유경쟁을 기본 원리로 하는 건강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위해서도, 또 어렵게 살아가는 수많은 자영업자와 노동자들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경제에 있어서 독점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이미 1931년 비오 11세 교황께서 <사십주년>이라는 사회회칙을 통해 경고하고 있다. 이 회칙 41항에 의하면, 경제적 독점은 자본주의 경제의 근간인 자유경쟁을 무너뜨리고 있고, 동시에 자유경쟁의 자연적 귀결이기도 하다. 이러한 경제적 독점은 경제 영역에서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정치적 권력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되고, 더 나가서는 국가 간의 충돌까지 야기한다는 것이 비오 교황의 근심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세계 전쟁을 예측한 탁월한 통찰이 아닐 수 없다. 비오 11세 교황의 이 탁월한 통찰은 오늘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그대로 녹아들어가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의 기쁨」에서 경제적 독점이 공동선을 지켜야 하는 국가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새로운 독재’(56항)로 출현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비판처럼, 오늘날 독점적 기업집단은 우리 경제의 건강한 순환을 막고 있는 부정적 측면이 너무나 크다. 재벌의 경제적 독점과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서민 경제 나가서 국민경제 전체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동개혁’이 아니라 ‘재벌개혁’이다. 하여, 다시 ‘경제민주화’를 끄집어내지 않을 수 없다.
* 이동화 신부는 1998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2010년 교황청 그레고리오대학교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부산교구에서 직장노동사목을 담당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5년 9월 6일, 이동화 신부(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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