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리서 DOCTRINE

교리 자료실

제목 2015년 예비자교리16 -- 성령에 대하여
작성자이철희 쪽지 캡슐 작성일2015-09-18 조회수3,455 추천수0

16. 하느님의 힘이신 성령(=천주성신)에 대하여

2015-0918.



1. 지난 주간까지는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만나는 아주 밀접한 분, 실제로 사람으로도 세상에 태어나셨던 예수님, 우리가 세상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본보기를 알려주신 분에 대한 내용을 말로 설명한 시간이었습니다. 신앙의 내용을 말씀드렸다고는 했습니다만,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들어야 할 모든 내용을 다 말씀드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빠뜨린 내용도 당연히 있을 것이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 내용을 반복할 것도 있고, 지금은 들었지만 그 뜻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내용도 섞여있을 것입니다. 신앙이라는 것과 그에 대한 내용은 한번 듣는다고 해서 금방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번 작심한다고 해서 그 내용을 완벽하게 실천할 수 있는 내용도 아니기 때문에 반복이 필요한 일입니다.

    


2. 목표를 세운 것에 닿지 않은 행동/아직 말로 다하지 못한 내용은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반복하는 내용을 통해서 더 잘 알아듣게 될 것이고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 말은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불 위에 놓인 냄비와 같이 금방 뜨거워지거나 달아오르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기도 하니까, 이 내용을 신앙교리를 다루는 이 시간에 적용한다면, 신앙에 관한 내용은 아주 오랜 시간을 두고 배우고, 알고, 깨닫는 과정이라는 말이 될 것입니다. 말 그대로 신앙(信仰)에 대한 것은 세상에 있는 것을 대하는 것과는 다른 자세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세상에서 통용되는 말로 배우는 것인데, ‘세상의 것들을 대하듯 쉽게 생각해도 괜찮을 말 그대로 세상의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한계는 있습니다.

    


3. 지난 시간까지는 예수님에 대한 내용을 말씀드렸고, 오늘은 신앙이나 신앙생활의 신()적인 요소, 사람의 눈으로는 그 모습이나 활동에 대해서 알아볼 수 없는, 또 일찍이 사람의 모습으로도 드러나지 않은 하느님의 힘이신, 성신 혹은 성령에 대해서 말할 순서입니다. 예전에는 성신(聖神)이라는 말과 표현을 썼습니다만, 요즘에는 그 말 대신에 성령(聖靈)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하고 그 표현만을 주로 사용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그래서 저도 여러분에게 편의상 성령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것입니다. 표현은 달라집니다만,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만나게 될 수도 있는 용어인, 성신이라는 말과도 같은 것이라고 알아들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의 힘이신 제3위 성령이 세상의 우리들, 사람의 삶에 등장하신 것은 세상에 인간으로 오신 제2위 성자이셨던, 예수님께서 수난하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다음의 일이었습니다. 물론 성령은 예수님처럼 사람이 으뜸으로 생각하면 살던 세상에 인간처럼 육체(肉體)를 지닌 모습으로 오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로 그분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신 것을 가리켜서 성령강림이라고 합니다. 제가 제2위나 제3위를 말씀드렸습니다만, 그것은 인간의 삶에 영향을 준 순서대로 부르는 표현일 뿐이고, 그게 힘이나 존재나 탄생의 순서는 아니라는 것을 노파심(老婆心)에서 말씀드립니다.

    


4. 예수님께서 세상에 사신 기간은 33년이었습니다. 지난 시간에도 몇 번 반복해서 말씀드린 내용이기도 합니다. 서기3047일 금요일, 십자가위에서 수난(受難)하시고 팔목에 못이 박혀 죽으시고, 3일째 되는 날인 49일에 부활하신 것으로 세상에서는 말합니다만, 예수님의 부활이 일어났다고 말하는 49일 이후에는 이 신앙의 일들에 대해서 날짜를 말하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저도 편의상 날짜나 시간을 말씀드릴 때가 있기는 하겠지만, 그렇게 말씀드리는 내용에 그다지 신경을 쓸 일은 아닙니다. 날짜를 계산하는 것은 인간세상의 일이지, 하느님의 일을 설명하는데 필요한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69. () 예수 승천하신 후 제 10일후에 무슨 일이 있었느뇨?

() 예수 승천하신 후 제 10일에 성신이 사도 위에 내려오시니 이는 성신강림(聖神降臨)이니라.

5. 성령의 등장에 관한 내용이 문답69번 항에 있습니다.

이 항목의 내용은 위에 말씀드린 내용 그대로입니다. 사람이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서 인간의 지식과 상식으로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것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신앙의 길을 제대로 갈 수 있습니다. 물론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내용도 믿을 교리의 항목에 규정된 내용은 아닙니다. 성령의 등장은 예수님의 승천(昇天) 10,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신 날로부터는 50일에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부활대축일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이 가까운 주일로 옮겨서 기억합니다만, 해마다 부활대축일의 날짜가 달라지는 관계로, 성령강림대축일도 고정된 날짜로 정해져 있지는 않습니다.


6. 일반적으로 부활대축일을 정하는 것은 양력320일이나 21일에 있는 춘분이 지나고, 음력으로 계산하는 보름달을 본 후, 그 다음에 맞이하는 첫 번째 주일입니다. 우리가 그 내용을 정확히 알아야 부활대축일이 정해지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다고만 알아들으시면 될 일입니다. 그렇게 정해진 부활대축일을 가리켜서 부활제1주일이라고 셈을 하니까, 그 날로부터 만49일이 지난 50일째 되는 날을 성령강림일로 기념합니다. 이 날짜가 우리나라처럼 농경문화에서는 특별한 일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예수님께서 사셨던 유목민문화에서는 밀을 거두는 때였다고 합니다. 우리문화로 생각하면 추석과 같은 명절이라고 해도 차이는 없을 듯합니다.


70. () 성신(聖神)은 누구시뇨?

() 성신은 천주 제3위시니,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어 성부와 성자와 같이 참 천주시오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한 천주시니라.

7. 이렇게 내려오신 성령의 위치에 대한 설명이 70번 문답의 내용입니다.

2위와 제3위에 대한 내용은 위에서 말씀드렸으니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사람의 인식에서 그렇게 사용하는 표현이라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성령에 대한 신앙의 규정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이 70번 항목의 내용입니다. 우리 신앙에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다(=나오다)고 간단하게 설명합니다만, 이 말을 주종관계로 해석한 그 옛날의 역사에서는 천주교회와 동방정교회가 갈라지게 된 원인이 됩니다. 이 역시 하느님의 속성에 해당되는 얘기입니다만, 인간이 그 사정을 어떻게 안다고 다투는지,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 속해있는지, 성령은 성부에게만 속해있는지 그 표현에 따라서 1054년에 그리스도교회는 가톨릭과 동방정교회로 분열됩니다. 독자적으로 말하면 나름대로 이유와 장점을 말하겠지만, 분열이라는 것은 어떤 표현을 하고 어떤 과정을 말해도 아픈 역사인 것은 분명합니다. 드러난 역사내용만 간단하게 본다면, ‘그리스도교와 오르도톡스(=정교회)’로 분리됩니다. 역사의 내용이나 전체과정을 말한다면, 이 사실 말고도 복잡한 다른 내용이 있겠습니다만, 표면적으로 드러난 신앙의 분리는 성령의 시작문제 때문입니다.


8. 사람은 두 가지 이상이 같은 성격이나 같은 의미를 간다고 말할 때, 이론상으로는 그럴듯하다고 여깁니다만, 두 가지가 똑같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말로는 성부하느님혹은 성자하느님성령하느님이라고 합니다만, 사람의 지식으로는 이 대상들을 생각하면서 상하관계나 종속관계를 말합니다. 먼저 말한다면, 우리 사람들의 존재에 하느님의 세 위격은 시간을 두고 등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순서에 따라 힘에도 위치에도 능력에도 존재에도 대우에도 차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 조건을 갖춘 인간으로 살고 있습니다. 신앙에 대한 내용을 말하는 사람이기에 그렇지 않다고 말을 하고 강조합니다만, 실제로 이런 말을 들을 때 사람의 지성과 지혜로는 알아들을 수 없고 깨달을 수 없고 증명할 수 없는 특수한 일이기 때문에 신앙에서 가르치는 대로만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물론 사람의 입장에서 어려운 일이니, 내 맘대로 해도 좋으냐고 묻는 것은 어리석은 자세입니다. 우리는 보통 사람의 하나로서, 세상의 지혜를 발휘하여 하느님의 사정을 알아들으려는 것이 아니라, 신앙인의 한 사람으로 알아들으려는 것이니, 그 상황을 깨닫는다면 신앙에서 가르쳐주는 내용을 제대로 받아들여야 할 일입니다.


9. 사람이 하느님에 대해서 대하는 용어는 달라도, 하느님은 한 분이고 같은 분이십니다. 차이가 있다면, 그 하느님을 사람이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부른다는 것입니다. 다르게 부르니 사람의 지혜와 상식과 이성으로는 다른 대상이라고 말하기는 쉽고, 자신이 생각하던 일이 일어나면 그 하느님은 뛰어난 능력을 가지신 분이라고 쉽게 말합니다. 하지만 인간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자기의 자유라고는 해도, 그것은 잘못된 태도입니다. 신앙에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서로 다른 분으로 말하지도 않고, 다른 분으로 알아듣는다고 해도 그 태도가 옳은 태도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게 부르고, 다른 분으로 알아듣고, 다르게 말합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게 인간과 사람의 한계이니 무엇으로 그 모자란 설명을 보충하겠습니까?


10. 사람은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뛰어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저 자신을 그렇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자신을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할 테니 따로 비판할 일은 아니라고 해도, 지나치거나 과한 것은 분명합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문제가 없다고 우겨도, 그러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영원히 살지도 못하고, 모든 것을 아는 것도 아니며,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탓입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 사람의 입장에서 하느님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도 없지만, 그런 한계를 바꾸어주고 그런 상황을 다르게 보게 해주는 것이 바로 신앙의 힘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자신을 독특하게 생각할 인간에게 하느님의 힘이 오십니다.


71. () 성신이 강림 날에 무엇을 하시뇨?

() 성신이 강림 날에 사도들의 신덕(信德)을 굳게 하시고 저들에게 은혜를 충만히 내리시어 복음을 널리 전하여 천주교회를 온 세상에 펴게 하시니라.

11. 하느님께서 인간으로 나시어 세상에 머무르신 분을 예수그리스도라고 했고, 하느님께서 정하신 방법으로 하느님의 힘이 인간의 세상에 계속 남게 하시려는 일은 훗날 성령의 강림이라는 방법으로 함께 하십니다. 성령강림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에 기억합니다. 성령이 강림하신 날은 유목민족의 수확의 기쁨을 말하는 시기였습니다. 하느님의 힘이신 성령께서 인간의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신 때는 인간이 풍요의 삶에 들어선 때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날짜를 정하는 것이 특별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렇게 다르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도 인간의 행복을 바라시는 분이라고 말입니다.


12. 신약성경의 다섯 번째 책, 사도행전2장에는 이 성령의 강림이 어떤 모양이었는지 설명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불이 붙었으나 타서 없어지지는 않는 혀라는 뜻으로 간단하게 불혀모양으로 예루살렘의 다락방에 모여 있던 공동체에게 하느님의 성령이 내려오십니다. 혀는 사람이 말을 소리로 나게 하는데 필수적인 인체(人體)의 기관입니다. 없으면 당연히 문제가 되지만, 그 길이가 짧아도 사람이 올바른 말하는 데는 당연히 문제가 있는 중요한 기관입니다. 우리가 믿을 교리로 말하는 71번 문답에는 그 모양이나 날짜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그 성령께서 우리의 삶에 오시어 이루시려고 하신 일을 설명합니다.


13. 믿음은 무엇이겠습니까? 세상의 삶에 바빠서 이리저리 뛰고 달리는 인간의 입장에서는 설명하기가 어려운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이라고 말하는 것은 세상의 삶을 설명하는 용어가 아니라, 그보다 근본적이고 그보다 상위(上位)개념인 천상계(天上界)/하느님나라와 관련된 용어이기에 적당한 설명이 없으면 알아듣기 힘든 일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일에만 관심을 가진다면, 하늘나라와 관련되는 다른 세상의 사정을 생각할 이유는 당연히 없을 것입니다.


14. 이 믿음은 세상에 사는 우리의 삶을 하느님나라와 연결시켜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하느님나라와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 믿음이 사람의 삶에 끼치는 영향은 아주 큽니다. 세상에 있다는 것들이 그 의미(意味)를 가지려면, 세상의 존재들 가운데 가장 으뜸이라고 말하는 인간(人間)이 그 대상을 받아들이거나 인정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다른 사람은 그 존재를 받아들여서 자신의 삶에 풍요한 결과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내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생명이나 목숨을 우리가 세상에서 중요한 것으로 말하고 그 시작이 부모님의 사랑과 그 사랑의 결합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사실 그것이 옳다고 하겠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은 세상의 시각에서 해석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생명이 부모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아듣거나 설명하려면 인간의 세상에는 없는 하느님나라와 관련된 설명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되면 사람의 삶은 달라지고 그가 세상에서 드러내는 자세도 달라질 것입니다.


15. 세상에 살면서, 하느님과 우리의 삶을 연결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이 사는 세상에서 맺는 열매는 사람의 판단으로 미처 알 수 없는데 대단히 귀한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 신앙의 설명에서는 은총이나 은혜라고 표현하고, 그 효과는 내가 하느님나라에 참여하게 해주는 힘이 되는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게 해줍니다. 물론 사람의 협조가 있어야 하는 일이겠습니다만, 사람이 그렇게 나설 수 있는 것도 성령의 역할이요, 작용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신앙에 대해서 올바른 자세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고, 내가 믿고 따르는 신앙은 더 널리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72. () 성신이 신자들의 마음에 무엇을 하시뇨?

() 성신이 신자들의 마음을 도우시어 당신의 인도하심을 따라 영생을 얻게 하고자 하시느니라.

73. () 성신이 어떻게 신자들을 도우시느뇨?

() 성신이 은총과 초성덕행(超性德行)과 무수한 성우(聖佑,=하느님의 특별한 사랑과 은혜)로써 신자들을 도우시느니라.

16. 다음으로 믿을 교리에서 말하는 내용은 성령의 작용이나 하는 일입니다. 지금 말씀드린 71번 항에 나오는 내용과 겹치는 내용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입장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71번 문답내용은 하느님의 영께서 우리들의 삶에 내리시는 작용이지만, 72-73번 문답내용은 우리 사람들의 행위가 그에 협조하는 행동의 찬성과 반대에 따라 내가 맺는 삶의 열매를 말합니다.


17. 사람은 놀라운 존재입니다. 하느님의 크신 힘이라고 하더라도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산다는 것은 아닙니다. 가능성을 말하는 것뿐입니다. 하느님과 그분의 힘이신 성령이 놀라운 일에 대하여 우리가 찬성하고 수긍해서 협력할 수도 있고, 그 삶의 끝은 하느님과 함께 하는 영원한 생명으로 연결될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거부한다면, 같은 일에 찬성하는 자가 맺는 삶의 결실은 내 것이 되지 않을 것이고, 그 삶의 끝은 죽음입니다. 이 성령께서 우리 사람들을 어떻게 도우시는지 우리가 눈으로 확인하거나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내용을 73번 문답에서는 초성덕행이라는 표현과 성우라는 표현으로 설명합니다. 사람의 본성과 그 한계를 넘는 것을 초성이라고 하고, 그 은총의 힘으로 사람의 삶에 드러날 결과를 덕행이라고 합니다.


74. () 성신이 천주교회 안에서 무엇을 하시뇨?

() 성신이 천주교회를 생활하게 하시고 진리와 성덕(聖德)에 그르칠 수 없게 인도하시느니라.

18. 인간의 삶에 이루어지는 일들을 보고서, 그것은 하느님의 일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하느님을 공경하고 그분의 뜻을 이루려는 교회공동체가 하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처음부터 받아들이지 않는 자가 세상에서 일어나는 그 어떤 일을 보고서, ‘그 일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판단하고 선언하겠습니까? 성령께서 교회를 통하여 하시는 일을 74번 문답에는 표현합니다.


19. 교회공동체는 하느님의 힘으로 유지하고 발전합니다. 교회역시도 세상에서 한계가 있는 인간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요 단체이기 때문에 때로는 단점을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공동체가 하느님의 뜻을 벗어나는 결과를 맺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일을 표현하는 것이 진리와 성덕에 그르칠 수 없게 인도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현상을 사람의 지성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할 방법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니체아-콘스탄티노플 신경)또한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믿나이다.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고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영광과 흠숭을 받으시며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나이다. -----

(사도신경)성령을 믿으며

20. 성령에 대한 설명은 우리가 미사 때에 하는 신앙고백에 조금씩 다르게 나타납니다. 그 글자의 표현이 무엇인지는 지금까지 설명한 것에 따르면 될 일이지만, 신앙고백에 나오는 내용을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21. 지금까지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제3위인 성령에 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역사와 관련된 문제로부터 시작해서, 그 성령이 하시는 일까지 말씀드렸습니다. 말씀드린 내용 외에도, 그 성령께서 신앙인으로 지내는 우리의 삶에 드러나는 일로 말하는 것을 짧게 정리하면, 우리가 미사 때에 봉헌한 예물인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몸과 피가 되게 하는 힘이기도 하고, 신앙인들이 부담스럽게 생각합니다만, 신자들이 사제에게 고백하는 죄를 진정으로 용서해주시는 힘이기도 합니다. 또한 신앙공동체가 하느님의 뜻에 머물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기도 합니다.


*** 이 외에도 하느님의 힘인 성령은 교회 안에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