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아카데미] 노동의 존엄
노동개혁과 국가의 역할
노사정위원회가 노동시장 개혁에 합의했다고 한다. “합의”라고 하지만 사실상 노동계의 투항에 가깝다.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과 청년 일자리를 위한 개혁이라고 하지만, 그런 명분은 허울뿐이고, 그 내용을 따져보면 대기업의 민원을 처리해준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핵심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임금피크제, 일반해고 조건 완화,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과 파견 근로 허용 업종의 확대 등이다. 임금피크제란 임금의 상한선을 정해서 그 이상의 임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현행법상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의해’ 정리해고가 가능하여, 기업 쪽의 자의적 해석에 의해 정리해고가 사회문제로 발전(예를 들면 쌍용자동차)하는 마당에 성과를 내지 못하는 개별 노동자를 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 또한 기간제 노동과 파견 노동으로 대표되는 비정규직 노동의 기간을 더욱 늘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는 업종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들은 노동조합과 교섭을 통해서나 노동자들의 동의를 얻어서 기업의 규칙(취업규칙)을 바꾸어야 가능한 일인데, 이것 역시 노동자들의 동의 없이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이번 노동개혁의 실질적인 내용이다. 내가 보기에는, 정규직 숙련 노동자의 임금을 줄이거나 또는 그들을 쉽게 해고시켜서 비정규직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서 그 자리에 청년들을 메우겠다는 뜻으로 밖에 해석이 되지 않는다. 1998년 IMF의 요구대로 정리해고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법을 바꾼 결과, 오늘날 많은 노동자가 불안정한 고용 상태에서 일하고 있으며, 이는 곧바로 노동소득의 감소로, 그리고 이는 멕시코와 브라질 수준의 양극화로 이어졌다. 이런 경험에서 보자면, 이번 노동개혁은 더 많은 실업자를 양산하고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노동 문제에 있어서 국가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 물어보아야 한다. 성 요한바오로 2세 교황의 <노동하는 인간>에 의하면, 기업이 직접 고용주라면 국가는 간접 고용주라고 할 수 있다. 정책과 제도, 법률 등을 통하여 기업과 노동자 사이의 직접적 고용 관계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뜻이다. 이처럼 큰 영향력을 가진 국가는 기업과 노동자의 관계가 정의롭고 합리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특히 “노동력을 지닌 모든 사람들의 적절한 고용 문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 분야에 있어서 정의롭고 올바른 상태에 대립되는 것은 실업 상태, 즉 노동 능력이 있는 사람을 위한 일자리가 없는 상태이다.…간접 고용주라는 이름에 속하는 사람들의 역할은 실업에 반하여 행동하는 것이다. 실업은 어떠한 경우에라도 죄악이며, 실업이 어느 수준에 이르면 실제로 사회의 재앙이 될 수 있다.”(18항) 적어도 이런 면에서 지금 정부는 고용 문제에 대해서 가톨릭교회의 사회교리와는 반대쪽으로 달려가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우리가 가톨릭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에 기반을 두어서 살펴볼 사례가 없지 않다. 네덜란드나 독일에서 있었던 사회적 대타협이다. 간단히 말하면, 법정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주 40시간 노동에서 38시간 또는 36시간으로 줄이는 것이다. 노동자는 노동시간이 줄어든 만큼의 소득을 양보하고, 기업은 줄어든 노동시간을 채울 노동자를 고용하면 된다. 이런 방식이야말로 진짜 사회적 대타협이고, 진정한 노동개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교리의 공동선과 연대성의 정신을 실현하는 조치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제도를 우리나라에서 시행하기 위해서는 많은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우리가 보다 더 인간과 노동의 존엄을 중심에 두고 모색한다면 못할 것도 없다고 본다. “실업은 어떠한 경우에라도 죄악”이라는 성 요한바오로 2세 교황의 호소를 잊지 말자.
* 이동화 신부는 1998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2010년 교황청 그레고리오대학교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부산가톨릭대 신학원장과 신학대학 교수를 맡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5년 10월 11일, 이동화 신부(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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