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아카데미] 신앙인과 연대성
피는 물보다 진하다? 신앙은 피보다 진하다! 오늘은 모든 성인 대축일입니다. 교회는 모든 성인들을 기념하며 그들의 모범을 본받도록 신자들을 격려합니다. 또한 이 날을 통해서 이미 이 지상에서의 삶을 마치고 천국에서 하느님을 뵈오며 영광을 누리고 있는 성인들과 우리가 결합되어 있음을 기억하도록 가르칩니다. 우리는 주일미사 때에 성인들의 통공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모든 성인 대축일에 특별히 연대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1인 가구 500만 시대를 맞이하면서 2015년 현재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26.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1인 가구가 아니라 하더라도, 이미 오래전부터 생겨난 현상으로 핵가족화와 저출산으로 인해 가족에 대한 기존의 개념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특정 형태의 가족이 연대성에 더 적합하다거나, 1인 가구와 같은 가족 형태가 지나친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촉진하고 연대성을 해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1인 가구와 저출산으로 인해 발생하는 많은 사회 문제가 있지만, 앞서도 몇 차례 말씀드린 것처럼 그것은 단순히 개인의 선택에서만 오는 결과가 아니라, 정치권과 국가가 제대로 된 정책을 내놓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여기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어떤 형태의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든 신앙인이 이루는 연대성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연대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서, 무엇을 중심으로 연대하는가입니다.
특정 주장을 관철시키거나, 자신들의 입장을 전달하기 위한 집회에서의 연대는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 혹은 개인이나 집단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가치와 이념을 위한 연대입니다. 이런 경우에 개인과 집단의 이익에 반하는 이들 혹은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반하는 이들은 이 연대에서 제외됩니다. 혈연을 중심으로 한 연대는 이보다 더 진합니다.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 혹은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더라도 혈연은 이를 뛰어넘어 그들을 연대시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이익이나 가치에 의한 연대보다 배타적인 성격도 지닙니다. 그래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신앙은 피보다 진합니다. 이 땅에서 먼저 살아간 우리 신앙 선조들, 순교자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개인의 이익을 뛰어넘어서, 신분과 이념, 제도와 가치를 모두 뛰어넘어서, 심지어 혈연까지도 넘어서서 서로 사랑하고 연대했습니다. 이 연대는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한 연대, 그리스도를 중심에 둔 연대입니다.
나의 이익 때문이든, 추구하는 가치 때문이든, 혈연 때문이든 그 무엇도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교회는 하느님과 수많은 성인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이들 특별히 소외되고 고통 받는 사람들과 이루는 이 연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잘못이 있어서 그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내가 한 가족이기 때문에, 한분이신 하느님 아버지를 모신 형제자매이기 때문에 연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죄와 악의 현실에 진심으로 “제 탓이오”를 외치며 연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로 인한 구원에서도 멀어질 것입니다.
* 김성수 신부 -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현재 고덕동본당에서 사목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5년 11월 1일, 김성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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