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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위령성월에 되새겨 보는 대사(大赦)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11-12 조회수3,402 추천수0

[세상 속의 교회읽기] 위령성월에 되새겨 보는 대사(大赦)



가톨릭교회는 위령성월, 특히 위령의 날인 11월 2일을 전후해서 1일부터 8일까지 열심한 마음으로 묘지를 방문하고,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교우는 전대사를 받을 수 있다고 안내한다.

그리고 이 전대사를 연옥에 있는 이들에게 양도할 수 있다고 가르치며 연옥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하도록 권한다.

가톨릭 신자라면 누구나 잠벌(暫罰)이며 대사(大赦)에 대해 들어 보았을 것이다. 중대하고 심각한 죄를 지은 신자는 고해성사를 통해 그 죄를 용서받아야 한다. 신자가 죄를 지은 것에 대해 진정으로 뉘우치며 사제에게 고백하면, 사제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죄를 용서한다.

그러나 죄는 용서되더라도 죗값, 곧 그 죄에 따라 치러야 할 벌은 남는다(잠벌). 그리고 잠벌을 해소하지 못한 채로 죽으면 연옥에서 그것을 다 기워 갚아야 한다. 그런데 교회는 특정한 조건에 맞는 선행을 함으로써 잠벌을 없애거나 감면받을 수 있게 해 주었다(대사).

한편, 교회는 하늘의 성인들과 이승의 신자들과 연옥의 영혼들이 공로를 공유할 수 있는(모든 성인의 통공) 공동체다. 그러기에 이승의 우리는 연옥의 영혼에게 우리가 받은 대사를 양도할 수 있다.

대사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그러나 대사는 교회 역사에서 가장 큰 스캔들 중 하나였다.


죄는 용서되더라도 죗값은 남아

하느님께서는 죄를 용서하신다. 하지만 그 죄가 죄를 지은 사람의 영혼에 끼친 폐해까지 즉각 깨끗하게 없애 주지는 않으시고, 이를 없애는 것은 당사자의 몫으로 남겨 두셨다. 이에 교회는 초창기에 죄 지은 신자들에게 당혹스럽고 수치스럽기까지 한 속죄 행위들을 공개적으로 실행할 것을 요구했다. 가령 간음한 사람이 그 사실을 고백하면, 1년 동안 주일마다 성당 입구에서 머리에 재를 뒤집어쓴 채 ‘간음한 자’라는 팻말을 들고 앉아 있게 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신자들이 점점 더 많아지면서 성당 주출입구 계단은 속죄행위를 하는 사람들도 넘쳐나게 되었다. 따라서 새로운 방식의 속죄 행위 도입이 불가피해졌다. 이에 교회는 좀 더 효율적이고 상징적인 속죄 방식을 생각해냈다. 예를 들면, 가난한 이들을 위해 봉사하고, 노인들을 돌보며, 성당이나 사제관의 망가지고 고장 난 시설을 고치는 일을 하게 한 것이다.

이제 신자들은 단순하지만 필요한 자선 행위를 실천함으로써 죄가 영혼에 끼친 폐해를 기워 갚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이 대사의 시작인데, 교회는 초창기에 ‘며칠’ ‘몇 달’ ‘몇 년’ 동안 성당 입구에 앉아 속죄 행위를 이행하던 관행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후대의 보속도 이런 방식으로 이행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지도자들은 특정한 선행에다 ‘100일’ 또는 ‘1년’ 하는 식으로 가치를 부여했다. 하지만 이것이 연옥에서 그만큼 빨리 풀려날 것임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특정한 선행에 100일 또는 1년이란 가치를 부여한 것은 참회자가 죄목을 적은 주홍 글씨(팻말)를 들고 머리에 재를 뒤집어 쓴 채 100일 또는 1년 동안 성당 입구에 앉아 있어야 하는 것을 상쇄 또는 감면해 준다는 뜻이었을 뿐이다.


대사를 팔아 치우던 ‘대사 판매왕’

이처럼 처음에는 속죄기간을 단축하여 주던 관행이 중세 초에는 속죄를 사면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 우리가 ‘대사’라고 부르는 것이 생겨났다.

그리고 십자군운동이 전개되면서부터는 십자군에 참가하는 사람이나 십자군을 위하여 재산을 기부하는 사람은 대사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십자군운동이 끝난 후에는 특정한 공익사업을 위해 기부하는 사람도 대사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 취지나 의의를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하거나 분별하지는 못했다. 어쩌면 연옥을 더 큰 죄를 지으면 형을 더 오래 살아야 하는 감옥과 같은 곳이라 여겼고, 그러니 대사란 형량을 몇 년 줄여 주는 것 정도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그릇된 오해가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런 마당에 중세 말에는 교회의 일부 지도자들마저도 이 오해의 대열에 동참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웅장한 교회 건물을 짓기로 했는데, 그 기금을 모으는 데에 대사를 이용하게 된 것이다. 물론 교회 당국이 대사를 대놓고 팔도록 허용한 적은 결코 없다. 그러나 독일에서 다량의 자금이 유입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의혹을 제기하지는 않았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독일에 소위 ‘대사 판매왕’이 있었다. 한 수도회의 수도자인 그는 교회가 마치 파산 직전에 몰리기라도 한 것처럼 대사를 팔아 치웠다. (그 덕분에 교회는 ‘종교개혁’이란 폭풍을 만나 그야말로 파산할 뻔 했다)

그는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연옥에서 단련 중인 부모, 친지, 친구를 끔찍한 고통에서 풀어 주라고 호소했다. 그는 연옥을 ‘불바다’로 묘사하고, 작은 용광로를 만들어 불을 피워 놓고는 개며 고양이들을 산 채로 그곳에 집어 던지곤 했다.

이를 본 사람들은 자기가 알던 사람들이 어떤 고통을 당하는지를 간접적이지만 생생하게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가 펼친 퍼포먼스를 보면서 지인들이 하루속히 불가마에서 삐져나올 수 있도록 동전 몇 닢을 기꺼이 던졌다.

그런데 이 광경을 보고 격분한 이가 있었다. 극심한 상업주의를 반대한 마르틴 루터는 이내 교황을 그리스도의 적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자신의 성경 해석이야말로 오류가 없다고, 자신이 사제로서 행한 독신 서약은 무효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교황에 맞서는 교회를 세웠다. 채 100년도 지나지 않아 수십 개의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이 생겨났다. 이렇게 해서 아직까지도 그리스도교계를 아프고 슬프게 하는 분열이 시작되었다.

이후 다시 중심을 잡은 교회는 대사의 남용을 규제하였다. 교회법에 규정되어 있던 엄한 보속을 폐지했다. 20세기에 들어서 바오로 6세 교황은 대사에 대한 법을 제정하여 대사의 의미와 규정을 명확히 했다. 이제 신자들이 대사를 받기 위해 해야 할 의무들이 많이 완화되었다. 고해성사를 보고, 영성체를 하고, 성당 참배를 하고, 교황의 뜻이 이뤄지도록 기도하면 대사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바오로 6세 교황, 대사의 의미와 규정 명확히 해

교회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죄의 대가를 돈으로 치를 수 있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 한때의 부끄러운 행적을 교회는 이내 바로잡았다.

아직도 우리가 ‘대사’라고 일컫는 용어를 다분히 악의를 담아 ‘면죄부’라고 곱씹는 이들이 있긴 하다. 하지만 우리는 대사가 벌의 사면에는 효과가 있지만 죄 자체를 용서하지는 못하며, 우리에게는 죄를 용서하거나 보속의 짐을 덜어줄 어떠한 권리도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5년 11월호, 이석규 베드로(CBCK 교리교육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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