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산책 (35) 그리스도인의 세례: 죄를 씻고 새 생명으로 ‘물에 잠기는 예식’이 묻힘과 죽음을 의미한다면, 한국천주교회에서 세례 예식 때 주로 사용하는 ‘머리에 물을 붓는 예식’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또한 세례(洗禮)라는 말은 ‘씻는 예식’을 의미하는데 무엇을 씻는다는 말일까?
초기 교회 카르타고의 주교였던 성 치프리아노(200~258)는 세례에 사용될 물의 축복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세례를 받은 사람의 죄가 씻어질 수 있도록 먼저 사제가 물을 깨끗하게 하고 거룩하게 해야 한다”(「편지」 70). 또, 현재 한국천주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어른 입교 예식』(세례 예식서)의 세례수 축복 기도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성령의 힘으로 외아드님의 은총을 이 물에 부어 주시어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사람이 세례성사로 온갖 묵은 허물을 씻어 버리고 물과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게 하소서.”
그러므로 ‘씻는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죄와 허물을 씻고 죄의 사함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잠기는 예식’이 ‘죄에 대한 죽음’을 의미한다면 ‘씻는 예식’은 ‘죄의 용서’를 강조하는 것이다. 따라서 ‘씻는 예식’을 마치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몸을 깨끗이 하고 부정(不淨)을 피하는, 일종의 목욕재계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씻는 예식’은 “단순한 정결 예식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와 결합되는 성사”(「어른입교예식 지침」 32항)로서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잠기는 예식’과 ‘물을 붓는 예식’ 중 어떠한 것이 맞는가? 초기 교회 공동체의 문헌과 그 시대를 반영하는 옛 모자이크를 보면 처음에는 주로 ‘잠기는 예식’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몸 전체를 물에 잠기게 한 경우도 있었으나, 무릎이나 허리 높이까지의 물에서 세례가 이루어진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가 13세기에 이르러 로마 가톨릭 교회를 중심으로 한 라틴 교회에서 ‘잠기는 예식’이 점차 사라지고, ‘머리에 물을 붓는 예식’을 주로 거행하게 되었다. 반면, 동방 전례에서는 지금까지도 “성삼위를 각각 부르면서 예비 신자를 물에 잠기게 했다가 나오게 하는” 세례를 거행하고 있다(참조: 가톨릭교회교리서, 1240항). 현대 가톨릭 교회는 두 예식을 모두 인정하고 있다. “세례는 세례수에 세 번 잠김으로써 의미 깊게 이루어진다. 그러나 오랜 관습에 따라 예비 신자의 머리에 세 번 물을 붓는 방식으로도 베풀 수 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239항).
정리하자면, ‘잠기는 예식’으로서의 세례는 ‘주님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다시 태어남’을 강조하는 예식이라 볼 수 있고, ‘물을 붓는 예식’으로서의 세례는 ‘물을 부어 죄와 허물을 씻어내는 정화’의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어느 것을 세례 예식으로 사용하든,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죄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며,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교회 안에서 한 몸을 이루어 그 사명에 참여하게 된다”(가톨릭교회교리서, 1213항).
[2015년 11월 15일 연중 제33주일(평신도 주일) 청주주보 4면, 김대섭 바오로 신부(복음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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