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아카데미] 시장에 대한 국가의 책임
‘약육강식’ 경제 영역에 평화 · 정의 세워야 가톨릭교회의 사회교리를 나무에 비유하자면, 인간 존엄성의 원칙은 뿌리에 비길 수 있다. 이 뿌리에서부터 나오고 동시에 이 뿌리를 실현하는 두 개의 큰 기둥은 보조성과 공동선의 원리라고 볼 수 있다. 보조성의 원리가 개인과 시민사회에 대한 국가 권력의 한계를 설정하는 원리라고 한다면, 공동선의 원리는 시장, 즉 경제적 영역에 국가 권력의 책임과 의무를 지우는 원리라고 할 수 있다.
공동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현실, 특히 경제 영역에서 벌어지는 인간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미 17세기 사회철학자 토마스 홉스가 말했듯이 ‘자연적인 상태’로서의 사회는 “만민에 대한 만인의 투쟁(bellum omnium contra omnes)”이요, 그러한 상태에서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homo hominis lupus)”일 뿐이다. 비록 홉스를 비롯한 근대 초기의 사회철학자들에게 무질서한 자연 상태는 국가와 권력의 등장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이었지만, 오늘날 경제 영역에서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우리의 경제 현실은 전쟁터요 더 강한 짐승들만 살아남는 ‘동물의 왕국’과도 같다.
1931년 비오 11세 교황의 회칙 <사십주년>도 그런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오늘날 무엇보다도 명백한 것은 부의 축적뿐만 아니라 거대한 권력과 경제의 독재적 지배력이 소수의 수중에 집중되어 있다…현대 경제 질서의 특징인 이 권력의 집중은 최강자의 생존만을 허용하는 무제한한 자유 경쟁의 자연적 귀결이다(41항).”
그렇다면 이 전쟁터를 누가 평화의 나라로 만들 것이며, 어떻게 동물의 왕국을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며,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이사야 11,6) 가는 곳으로 만들 수 있을까?
약육강식의 동물의 왕국을 공생의 공원으로 만들어야 하는 중요한 임무는 정치와 정치공동체(국가)에게 맡겨져 있다. 바로 이러한 국가의 책임과 의무를 지우는 원리가 공동선의 원리이다. 먼저 ‘공동선’이란 “인간이 더욱 충만하고 더욱 용이하게 자기완성을 추구하도록 하는 사회생활 조건의 총화”(사목헌장 26항)를 가리킨다. 이는 공동체 전체의 평화와 안전, 공정하고도 정의로운 사법 체계 등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조건도 포함하지만, 그것을 넘어서서 음식과 주거, 모두가 참여하는 노동, 인간으로서 누려야 하는 기본적인 의료혜택과 교육, 문화와 교통 등 사회경제적 조건들이 포함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한 사회의 공동선의 크기는 공공복리 또는 보편적 복지의 크기와 비례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국가를 포함한 정치공동체는 “공동선을 위하여 존재하고, 공동선 안에서 완전한 자기 정당화와 의미를 얻고, 공동선에서 본래의 고유한 자기 원리를 이끌어낸다.”(사목헌장 74항) 그렇기 때문에 국가는 마치도 동물의 왕국과도 같은 경제 영역, 즉 시장에 대해서 규제하고 조절(백주년 35항)함으로써 개입하고, 특히 노동자를 비롯한 약자들의 인권이 훼손되지 않도록 감시해야 하며, 시장의 독점을 방지하도록 노력해야 하며(백주년 48항), 지나친 사유 재산의 권리행사를 규제(간추린 사회교리 177항)해야 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역할들이야말로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이고, 정치와 국가의 고유한 의무이자 책임인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정치는 흔히 폄하되기는 하지만,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이므로 매우 숭고한 소명이고 사랑의 가장 고결한 형태”(복음의 기쁨 205항)라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르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의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의무이자 소명인 것이다.
* 이동화 신부는 1998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2010년 교황청 그레고리오대학교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부산가톨릭대 신학원장과 신학대학 교수를 맡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5년 11월 22일, 이동화 신부(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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