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산책 (37) 신부님~, 사는게 죄유~~~ 고해소 안에서 한참을 기다린다. 잠시 뒤 누가 들어온 것 같아 신자 쪽으로 난 작은 창문을 연다. “고백하세요~~.” “아유~ 신부님, 사는게 다 죄쥬~ 뭐 있겠어유?” “(허걱), 그래도 잘 생각해보시면 특별히 고백할 것이 있을 것 같은데요.” “글쎄유~~.” 죄와 무관하게 살아갈 수 없는 우리의 삶을 가리키는 말일 수도 있지만, 그냥 무턱대고 의무감 때문에 고해소에 들어오는 신자들의 마음을 나타내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편하지만은 않다. 어느 자매님은 이렇게 물어본 적도 있었다. “맨날 같은 죄만 고백하는데 뭐 특별히 고백할 필요 있나요?” “제가 고백해야 하느님께서 아시는 것도 아니잖아요. 다 아실텐데요, 뭐... 그냥 착하게 살면 되는 것 아닌가요?” 이 성사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며 어떻게 불러야 할까? 교회는 이 성사를 무엇보다도 참회의 성사라 부르고 있다(참조: 교회헌장, 11항; 교회법, 959조; 가톨릭교회교리서, 1421항). 참회(Penance)는 “하느님께 돌아오고, 회개하는 것이며, 우리가 지은 악행을 혐오하고 악에서 돌아서서 죄를 짓지 않는 것”(가톨릭교회교리서, 1431항)을 말한다. 즉 참회는 통회하는 마음으로 지은 죄를 아파하며,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결심을 뜻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성사를 받기 전에 ‘하느님의 말씀에 비추어 양심성찰’을 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이러한 통회는 고백(Confession)을 통해 하느님과 교회 앞에 그 죄들을 내놓게 된다. 곧 참회를 하는 이는 고백을 통해 “자기가 지은 죄를 직시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가톨릭교회교리서, 1455항) 것이다. 또한 반복적이고 일상적인 잘못도 고백함으로써 “양심을 기르고, 나쁜 성향과 싸우며, 그리스도를 통해 치유 받고, 성령의 생명 안에서 성장”(가톨릭교회교리서, 1458항)할 수 있으므로, 교회는 이러한 잘못도 고백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참회자는 통회와 고백을 통해 하느님의 용서를 받고, 하느님과 교회와 화해(Reconciliation)하게 된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2코린 5,20)라는 바오로 사도의 권고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마태 5,24)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당 부는 이 성사를 통해 실현되는 것이다. 이러한 세 가지 의미, 즉 참회, 고백, 화해의 의미를 모두 포함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는 무엇일까? 필자는 이를 가장 잘 표현하는 용어가 ‘고해성사(告解聖事)’라고 생각한다. 비록 라틴어나 영어에는 없는 단어이지만, 고해(告: 알릴 고, 解: 풀 해)는 ‘죄의 고백’의 의미뿐 아니라 하느님의 용서를 통한 ‘화해’의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고해성사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잘못을 따지시거나, 죄와 잘못을 꾸짖고 벌하시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느님께서는 고해성사를 통해 우리 각자가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과 이웃들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고해성사는 ‘우리 영혼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의 선물’인 것이다. 나는 고해성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억지로 해야만 하는 신자의 의무로? 아니면 내 죄와 허물을 용서하시는 하느님 자비의 선물로? [2015년 11월 29일 대림 제1주일 청주주보 4면, 김대섭 바오로 신부(복음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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