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고 힘나는 신앙 -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해설] (144) 성경 안에서 만나는 기도의 달인 (61) - 거침없는 복음선포자, 필리포스
‘법보다 사람 우선’ 거부할 수 없는 하늘 명령 따라
■ 부제(副祭) 필리포스 초대교회 시절 이야기다. 열두 사도의 맹활약으로 신자들의 수효가 점점 늘어났다. 숫자가 많으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 그리스말을 쓰는 유다인들이 ‘식량 배급’ 문제로 본토 유다인들에게 불평을 해댔다. 그들의 배급 때마다 과부들이 푸대접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에 열두 사도가 신자들을 소집하여 제시한 해법이 바로 일곱 봉사자의 선출이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식탁 봉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서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찾아내십시오. 그들에게 이 직무를 맡기고, 우리는 기도와 말씀 봉사에만 전념하겠습니다”(사도 6,2-4). 온 공동체가 동의하였다. 그리하여 일곱 명의 후보자가 사도들 앞에 세워지고, 사도들은 기도와 안수로 그들에게 식탁 봉사자직을 맡겼다. 이것이 오늘의 교회 공식 직함으로 부제(副祭, deacon)직의 기원이다. 이들 일곱 가운데 괄목할만한 활약을 한 인물로 스테파노와 필리포스가 있다. 이둘 뿐 아니라 일곱 모두는 ‘성령과 지혜’로 충만하였다. 이들은 말하자면 ‘공채’로 뽑힌 하느님 일꾼들이었다. 하늘에 계신 열두 사도들이 섭섭해 할 얘기이겠지만, 그들은 오로지 예수님의 안목에 좋게 찍힌 이들로만 구성된 특채 인재들인 셈이다. 하지만 일곱 부제는 치열한 경쟁을 거쳐 공개적으로 뽑혔으니, 세속의 기준에서도 ‘한 똑똑’ 하는 인재들이었을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 복음 선포자로 나서다 과연 그랬다. 사도행전은 필리포스 부제가 얼마나 야물딱지게 복음을 전했는지를 소상히 전해준다. 필리포스의 맹활약은 동료 부제 스테파노의 순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알다시피 스테파노는 초대 교회 첫 번째 순교자로 기록되고 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이 있듯이 그의 비상한 율법 해석은 활동 초기부터 유다 지도자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러나 (그들은) 그의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사도 6,10). 결국 유다인들은 그를 모함하여 최고의회에 넘겼다. ‘산헤드린’이라 불리는 이 최고의회! 예수님을 빌라도 총독에게 넘겨 처형케 한 바로 그 무소불위의 공권력이다. 그들 앞에서 스테파노는 전혀 기죽지 않고 그들 자신의 부당함을 구약성경의 논리로 폭로한다. “목이 뻣뻣하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여, 여러분은 줄곧 성령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조상들과 똑같습니다.… 그들은 의로우신 분께서 오시리라고 예고한 이들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러분은 그 의로우신 분을 배신하고 죽였습니다”(사도 7,51-52). 이 말에 그들은 화가 치밀어 올라 이를 갈다가, 급기야 스테파노를 성 밖으로 몰아내어 돌로 쳐 죽인다. 이 장렬한 순교 직후, 예루살렘 교회는 심한 박해를 받기 시작하였다. 스테파노 사태로 말미암아 ‘이단사설’로 몰렸기 때문이었다. 박해의 주동자는 아직 회개하기 전의 청년 ‘사울’이었다. 그는 닥치는 대로 신자들을 잡아다가 감옥에 처넣었다. 그래서 신자들은 유다와 사마리아 여러 지방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그들은 변방을 두루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 그 때 필리포스 부제는 흩어진 신자들과 운명을 같이하였다. 그는 사마리아의 한 도시로 내려가서 그리스도를 전하였다. 호응은 뜨거웠다. “군중은 필리포스의 말을 듣고 또 그가 일으키는 표징들을 보고, 모두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사실 많은 사람에게 붙어 있던 더러운 영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고, 또 많은 중풍 병자와 불구자가 나았다. 그리하여 그 고을에 큰 기쁨이 넘쳤다”(사도 8,6-8). 이를 보면 필리포스가 말씀도 좋고, 능력도 있고, 마귀도 쫓아내는 등, 사도들과 똑같은 권능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결실에 대하여 그는 매일 밤 잠 들기 전에 이렇게 ‘보고 기도’를 올리지 않았을까. 심혼을 휘도는 강박에서 오늘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가슴 안에서 이는 바람에 떠밀려 큰 소리로 당신의 이름을 알렸습니다. 병든 자가 일어나고, 죽은 자가 살아나고, 파산한 이들이 심기일전하고, 파탄 난 가정에 다시 웃음이 돌고, 낙심하던 이들이 다시 희망을 붙잡고, 슬퍼하던 이들이 기쁨을 되찾고, 방황하던 이들이 살아갈 목적을 발견하고…. 당신의 이름으로 하여 집집마다 새로운 해가 떴습니다. ■ 세례 터의 여운 그러던 어느 날, 필리포스에게 홀연히 천사가 나타나 하느님의 전갈을 건넨다. “일어나 예루살렘에서 가자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남쪽으로 가거라. 그것은 외딴길이다”(사도 8,26). 그는 즉시 광야 길을 떠난다. 그 길에서 필리포스는 에티오피아 여왕 칸다케의 내시를 만난다. 그 내시는 여왕의 모든 재정을 관리하던 고관으로서 예루살렘 순례를 마치고 돌아가던 길이었다. 마침 그때 내시는 ‘이사야 예언서’를 읽고 있던 참이었다. “학대받고 천대받았지만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미 양처럼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이사 53,7). 필리포스는 내시에게 다가가 말을 건넨다. “지금 읽으시는 것을 아시겠습니까?” 내시가 묻는다. “여기서 ‘그’가 누굽니까?” 이렇게 해서 필리포스는 ‘그’에 관한 기쁜 소식을 전하게 된다(사도 8,30-35 참조). ‘그’의 삶, 십자가 죽음, 그리고 부활의 소식을 전해들은 내시는 그들이 물가에 이르자 화통하게 세례(洗禮)를 청한다. “여기에 물이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는 데에 무슨 장애가 있겠습니까?”(사도 8,36) 필리포스는 이 화통한 청원에 역시 화끈하게 세례를 베푼다. 이리하여 내시는 북아프리카의 첫 번째 그리스도인이 된다. (북)아프리카에 하느님 나라를 세우기 위한 주춧돌이 된 것이다.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내시의 유예 없는 결단과 함께 필리포스의 용단에 감탄한다. 무절차의 예식을 베푼 그의 거침없음은 결코 만용이 아니었으리라. 그날 바쳤을 또 다른 ‘보고 기도’에는 그의 순명의지가 이렇게 배어 있지 않았을까. 심장의 직관에 순명했습니다. “예비자 교리를 받아야 합니다”, “이것을 배워야 하고 저것을 외워야 합니다”, “교육은 10개월 꼬박 채워야 합니다”, “찰고를 통과해야 합니다” 등등 밟아야 할 과정을 일절 생략하고 생명의 물을 부었습니다. “술과 세속을 끊고”, “은퇴를 하고”, “생활 좀 정리를 하고” 등등 미룰 핑계거리를 내팽개친 그의 용단에 대한 거침없는 보상이었습니다. ‘절차’보다 ‘상황’이 먼저요 형식보다 생명이 먼저요 법보다 사람이 우선이라시는, 거부할 수 없는 하늘 명령을 따름이었습니다. * 차동엽 신부는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서 성서신학 석사, 사목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및 미래사목연구소 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5년 12월 6일, 차동엽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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