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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회교리 아카데미: 찾아가는 사목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12-27 조회수2,361 추천수0

[사회교리 아카데미] 찾아가는 사목

 

예수님의 얼굴을 외면하지 않기

 

 

오늘은 저희 본당에서 느낀 점을 나눠볼까 합니다. 주임신부님이신 백성호 세례자 요한 신부님과 함께 자비의 희년을 맞아 전 신자 가정을 대상으로 가정 축복식을 하고 있습니다.

 

유럽, 특히 독일교회에서는 주로 주님 공현 대축일에 신자들의 가정을 축복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집집마다 대문이나 문 상인방에 ‘20+C+M+B+16’과 같은 글귀가 분필로 쓰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앞뒤의 숫자는 그 해의 연도를 나타내고, +는 십자가이며, CMB는 ‘Christus Mansionem Benedicat’(그리스도께서 이 집을 축복하십니다)라는 라틴어 문장의 약자입니다. 이를 변형해, 자비의 희년을 시작하면서 신자들의 가정에 하느님의 자비가 가득하기를 기도하고 축복하는 예식을 갖고 있습니다.

 

집안 형편 때문에 혹은 청소나 여러 가지 이유로, 사제의 방문을 부담스러워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자, 축복 예물은 일체 받지 않고, 음식은 물론 물 한 잔도 마시지 않고, 현관문을 열어 놓고, 문 앞에서 집 축복을 하기로 여러 차례 공지하고 신청을 받았습니다. 그래서인지 700세대 정도, 주일미사에 나오는 거의 모든 신자 가정이 가정 축복식을 신청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복음의 기쁨」에서 자신 안에 갇혀 있지 말고, 양들을 찾아 나아가는 교회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어떻게 해야 판을 짜놓고 신자들을 기다리는 모습이 아니라, 그들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는 교회가 되는 것인지에 대해 많은 고민과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가정 축복식을 진행하면서 조금은 답을 알게 되었습니다.

 

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우리 성당 주변, 늘 지나다니던 이 길가에 이렇게나 많은 신자 가정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렵기 때문에, 늦은 시간에 퇴근하기 때문에 성당에서 시간을 내어 봉사하지도 못하고, 가까스로 주일미사에만 참석하는 사람도 있었고, 성당에서 자주 얼굴을 보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청소년, 청년들도 있었습니다.

 

사회의 양극화로 어려운 가정이 많아진다는 통계는 여러 차례 접했는데, 신자들의 가정도 그랬습니다. 성당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청년들 가정에도, 성인 형제자매들의 가정에도 어려운 가정이 있었습니다. 다만 사목자들이 찾아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직까지는 신자들이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사목자의 방문을 꺼려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신자들은 자신의 집에 오는 사제를 예수님처럼 기쁘게 환영했습니다. 그동안 스스로가 신자들이 부담스러워한다 여기며 가지 않은 것은 아닌지 부끄러웠습니다.

 

교회의 중산층화는 사제의 중산층화와 같은 말이었습니다. 사제들의 의식과 생활수준이 중산층화 되었기 때문에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신자들 중에 기꺼이 식사를 대접하고, 내가 찾아가기에 깨끗한 집에 사는 신자들을 주로 만나게 되고, 그러면서 교회가 중산층화되었다고 핑계만 늘어놓았던 것은 아닌지, 그래서 늘 곁에서 사목자들을, 교회를 바라보는 예수님의 얼굴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자비의 희년을 지내면서 교회가 신자들의 얼굴을 통해, 특별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얼굴을 통해 우리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그를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 자비를 듬뿍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김성수 신부 -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현재 고덕동본당에서 사목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5년 12월 27일, 김성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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