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아카데미] 사회적 다원주의와 민주주의
민주주의 발전 가로막는 경제 집중화 오늘날 우리 사회의 지나친 집중화는 지난 시기 우리 사회가 이루어낸 결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늘날 우리 사회의 발전에 족쇄가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먼저 경제의 집중화를 들 수 있겠다. IMF 금융 위기 이후 그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대 재벌이 등장했다. 물론 이전에 재벌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또한 근대화 초기에 수출과 기술 개발에 기여한 역할을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거대 재벌은 상속되는 가족 소유와 총수 중심의 경영체제로 우리나라 경제의 효율성과 건전성을 위협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보다는 지대추구라고 불리는 국가 보조금을 타먹는 방식으로, 그리고 이미 창출된 가치를 빼앗는 방식(예를 들어 대형 마트나 골목길 빵집을 생각할 수 있다)으로 건강한 시장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경제의 집중화를 만들어내는 거대 재벌의 등장은 여러 형태로 민주주의의 작동을 저해하고 왜곡한다. 자신의 경제적 이해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행정-입법-사법부에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자금을 뿌리는 것은 이미 오랜 관행이라 보인다. 정부의 주요 정책 결정과 국회의 입법 행위에 거대 기업의 영향력이 미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가의 공적 행위와 소수 기업집단의 이해관계와 사적 이익의 경계가 무너진다. 그리고 이런 사회 구조는 언론을 통해서 신화와 우상으로 변형된다. 기업이 잘돼야 경제가 잘되고 서민이 잘 산다는 신화로, 그리고 어느 기업이 없으면 우리나라 경제가 망한다는 식의 우상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소수 부자들의 생각을 자신들의 생각으로 아무런 비판과 성찰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 구조와 사회의 통념은 우리 사회의 교육, 문화, 지역 속으로 퍼져 들어가 하나의 단일한 가치 체계를 만들어내고, 다양한 영역의 권력과 영향력을 단일한 체계로 집중시키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집중화는 민주적이고 자율적이며 주체적인 발전, 그리고 균형적이고 수평적인 발전을 가로막는다. 이런 사회는 제도적으로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다하더라도, 또 선거를 통해서 공직자를 선출하고 있다하더라도 사실상 민주주의라고 말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사회적 다원주의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다원주의는 인간의 사회적 본성에 기초해 있다. 인간의 사회적 본성은 단일한 형태가 아니라 여러 다른 형식의 표현된다. 그러므로 사회를 형성하는 여러 요소들은 각자가 그 안에서 자신의 특성과 자율성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하나의 조화로운 전체(간추린 사회교리 151항)가 되어야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말하는 “현세 사물의 정당한 자율성”(사목헌장 36항)이 뜻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정치공동체는 이러한 현세 사물의 정당한 자율성을 존중하고 보호하며, 발전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사회 안의 각각의 영역과 집단에 대해서 지나친 간섭과 개입은 삼가야 하고, 도와주는 방식으로 개입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보조성의 원리가 의미하는 바다. 그러나 다른 영역과 중간적인 집단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해치는 힘이 있다면, 다른 영역과 집단을 위해서 그 힘에 제한을 가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오늘날 시장의 힘이 지나쳐서 시민사회의 자율성과 다원성을 훼손한다면 그 힘은 통제되어야 한다. 공동선의 원리가 뜻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민주주의는 단순히 선거와 같은 절차를 잘 따른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다원주의에 기초하여 보조성과 공동선의 원리가 균형 있게 이루어낸 결과(간추린 사회교리 407항)라고 할 수 있다. * 이동화 신부는 1998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2010년 교황청 그레고리오대학교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부산가톨릭대 신학원장을 맡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6년 3월 20일, 이동화 신부(부산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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