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아카데미] 부패의 정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권리 1961년이 저물어가는 12월, 이스라엘에서는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이란 전범을 처벌하기 위한 재판이 있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나치 친위대 중위, 유태인 업무책임자로 유태인의 체포, 강제이주를 계획, 지휘하고 수많은 유태인을 학살한 인물입니다. 다른 전범들은 자신의 유죄를 인정했지만 아이히만은 항변했습니다. “나는 군인이었다. 단지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군인이 상부의 명령대로 행동하는 것이 왜 유죄인가?” 결국 그는 1962년 6월 1일에 교수형으로 처형되었습니다. 재판을 지켜본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낳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 아이히만의 죄는 시킨다고 아무 생각 없이 행한 죄다. 우리 모두의 안에는 아이히만이 있다’고 했습니다. 온 나라가 대통령의 부패와 비리에 참담함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비리를 저지르고도 ‘내가 잘못한 것이 뭐죠?’라고 항변한 것은 비리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황당한 시민들은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부패의 정의는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사적 이득을 위해 공적 권력을 오용하는 것’입니다. 대통령 직무정지 원인은 비리와 부패 때문이며 자신에게 주어진 공적 권력을 생각 없이 사사로이 오용한 것입니다. 대학교수였던 조원동은 2013년 3월부터 약 15개월간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냈고 2013년 7월 대통령의 지시로 ‘이미경 CJ 부회장’ 사퇴를 강요한 혐의로 기소되고 12월 14일, 청문회 끝에 ‘대통령이 시킨 대로 했는데 죄인이 돼버렸다’며 억울해 했습니다. CJ E&M이 운영하는 케이블 방송은 2012년 대선 당시 후보자 박근혜를 희화화한 프로그램을 방영했고 2013년 CJ창업투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삶을 그린 영화 ‘변호인’을 제작하여 1000만 관객을 모았습니다. 박 대통령과 측근들은 이런 CJ의 태도가 눈에 거슬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원동은 권력의 지시를 따라 민간기업의 경영진을 교체했고 그로서 기소된 상황이 억울하다고 합니다. “대통령이 시켜서, 최순실이 시켜서, 이모가 시켜서, 수석비서관의 명령이라서…” 그들과 아이히만의 얼굴이 오버랩 됩니다. 「간추린 사회교리」 399항은, “공권력의 명령이 도덕 질서의 요구나 인간의 기본권 또는 복음의 가르침에 위배될 때, 국민들은 양심에 비추어 그 명령에 따르지 않을 의무가 있다. 부당한 법은 도덕적으로 올곧은 사람들을 곤란에 빠트리는 양심의 문제를 제기한다. 도덕적으로 사악한 행위에 협력하도록 요청 받을 때 그들은 이를 거부하여야 한다. 그러한 거부는 인간의 의무인 동시에 인간의 기본권이기도 하다. 인간의 기본권은 바로 그 자체로서 국법으로 인정받고 보호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삶이 버겁고, 막막하고, 그래서 시키는 대로, 책임 없이 살아가고 싶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아이히만이 되는 것도 아닌 바, 한 번 눈감고 약간만 비겁하면 삶은 재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고 답할 때, 복음과 양심의 소리를 듣고 선택하고 실천하는 사회교리가 생활화됩니다. 2017년, ‘세상 속의 신앙인의 몫’에 대하여 ‘사유’(思惟)하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합니다. * 양운기 수사(한국순교복자수도회) - 한국순교복자수도회 소속.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상임위원이며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이다. 현재 나루터 공동체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1월 1일, 양운기 수사(한국순교복자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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