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펀 사회교리] (11) 섬기는 다스림
‘섬김받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통치자 필요 띠노 : 지난 겨울부터 꽤 긴 시간을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가 돼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 왔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은 국가에 대한 생각을 좀 해보려고 해요 덕이 : 역사 안에서 본다면, 정치적으로는 왕정국가, 독재국가, 민주국가 등이 떠오르는데요. 교회는 어떤 국가 형태를 가장 올바르다고 하는지 궁금해요. 띠노 : 교회는 무엇보다도 ‘진정한 통치자는 하느님’이라는 분명한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만 보더라도, 인간적 통치가 아닌 오직 하느님에 의한 통치만이 참된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이스라엘 역사를 담은 구약 성경과 함께, 신약에서도 민족의 통치자들이 휘두르는 압제와 전제의 권력을 거부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마르 10,42 참조). 이에 따라 교회는 “정치적 힘(Political power)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점을 가르쳐 왔습니다. 시몬 : 그렇다면 공적인 정치적 힘 혹은 권위는 그 권위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을 위해, 현대의 국가에서는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일 것 같아요. 띠노 : 맞아요. 이러한 가르침은 사회교리 문헌들 안에서 많이 발견됩니다. 「새로운 사태」에서는 국가의 통치가 국민을 위한 것이며, “국가가 개인이나 가정을 장악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하고 있어요. 이후의 문헌에서도 교회의 입장은 분명합니다. 회칙 「지상의 평화」에서는 “공권력의 책임은 인간의 권리와 의무를 보장하는 것”(60항)이라고 가르칩니다. 가톨릭 교회의 공식 교리서인 「가톨릭교회 교리서」에서는 이렇게 정리합니다. “공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봉사하기 위해 이를 행사해야 한다… 아무도 인간의 존엄성과 자연법에 어긋나는 것을 명령하거나 입법화할 수 없다”(2235항). “권위 행사의 목적은 모든 사람이 쉽게 자유를 행사하고 그 책임을 다하도록 하기 위하여 올바른 가치 서열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다”(2236항). 시몬 : 현대 국가의 개념 자체에서도,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안에서도 국가 혹은 공적 영역의 존재 이유는 오로지 백성을 위한 봉사의 직분 때문이라는 게 분명하군요. 덕이 : 그렇다면, 공적 권위로 국민을 사찰하거나 감찰 등 국민의 자유를 부정하는 이른바 ‘블랙리스트’, (위임된) 통치자와의 친분, 혹은 통치자 자신이 지위를 남용하여 일으킨 이익의 사유화 등은 (국가라 불리는) 공적 권위의 존재 이유 자체를 부정한 것이며, 이는 현대의 민주공화국의 개념 자체를 부정한 것으로도 볼 수 있겠군요. 띠노 : 그렇습니다. 봉사를 위해 위임된 권위가 그 스스로의 임무를 망각하고 백성들 위에, 국민들 위에 올라서 있으려 한 자체가 이미 헌법 질서를 전면적으로 흔든 것이죠. 우리는 예수님께서 당신을 인간적인 지상의 왕으로 추대하려는 사람들을 피하셨다는 사실(요한 6,15)을 기억할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당신의 통치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 주셨죠. 그것은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다스리심이었던 겁니다. 오늘날의 통치자는 바로 이러한 통치자이어야만 하는 거죠. * 지도 민경일 신부(아우구스티노·서울대교구) - 민경일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2002년 사제품을 받았다. 경희대학교 NGO대학원에서 시민사회학을 전공했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성의교정 보건대학원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3월 19일, 지도 민경일 신부(아우구스티노 · 서울대교구), 정리 서상덕 · 박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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