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신부의 교리산책] 십자고상 윗부분에 붙어 있는 ‘INRI’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1코린 2,2)
서기 33년경, 로마 총독 빌라도 관저에서 세상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재판이 열렸습니다. 피고는 나자렛 출신 예수라는 사람입니다. 그의 첫 번째 죄목은 성전 모독죄였습니다. 유다교의 핵심 계명인 안식일법(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치시는, 마르 3,1-6 참조)과, 정결례법(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마태 15,1-20 참조)에 대한 발언이 도전적이어서 위기에 몰린 그였습니다. 하느님의 성전을 모독했다는 죄명으로 대제관과 원로들의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요한 2,19) 그러나 단지 성전의 권위를 무너뜨렸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사형에 처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 종교 지도자들이 두 번째로 적용시킨 죄목은 정치적 선동죄였습니다. “빌라도는 명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달게 하였는데,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라고 쓰여 있었다.”(요한 19,19)
예수의 죄명을 ‘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 라틴어로 ‘Iesus Nazarenus-Rex-Iudaeorum’라 한 것입니다. 이 약칭 ‘INRI’가 십자고상 윗부분에 붙어 있습니다. 당시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했다는 사실 자체가 로마 제국의 독자적인 결정을 시사합니다. 다시 말해 유다인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를 정치적 선동죄로 로마 제국에 고발하여 선동자들에게 주어지는 사형(로마식 형벌인 십자가형에 처해지는 사람들은 대역죄를 범한 폭도, 탈영한 군인, 성전 강도와 같은 중죄인들이었다), 곧 십자가형을 받게 한 것입니다.
십자가에는 세 종류가 있습니다. 내가 부족하기 때문에 져야 하는 십자가, 남이 나에게 지우는 십자가, 또 하늘이 나에게 허락하신 십자가가 있습니다. 사순 시기의 절정을 향해 나아가면서 나에게 지워진 십자가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봅니다. 십자가는 고통스럽게 지고만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가슴에 품고’ 부활의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것임을 깊이 묵상해 봅시다.
[2017년 4월 2일 사순 제5주일 서울주보 4면, 김지영 사무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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