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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진리를 찾아서: 견진성사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7-04-20 조회수5,532 추천수0

[진리를 찾아서] 견진성사

 

 

삶에서

 

지금은 그만두었지만 신학원에서 강의를 하다 보면 가끔 예리한(?)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한번은 어떤 신사분이 ‘세례 때 성령을 받는다고 배웠는데 견진 때 받는 성령은 다른 성령이신지’ 물어보셨다.

 

그분은 오랫동안 개신교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얼마 전 가톨릭으로 개종했는데, 다음과 같은 「성경」 구절을 들먹이며 성령은 세례 때가 아닌 견진 때 받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들이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을 뿐, 그들 가운데 아직 아무에게도 성령께서 내리지 않으셨기 때문이다”(사도 8,16).

 

「성경」 내용의 자구적 해석만으로는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 부분은 예루살렘 교회에 내리신 성령께서 사도적 인준을 받은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 이제는 사마리아인들에게도 내리신다는 의미가 강조된 것이다. 그래서 세례성사는 성령 안의 삶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세례와 견진 때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은 같은 분이시라고 설명해 드렸다.

 

하지만 성령을 견진 때 받아야만 한다고 여기는 개인적 이유(?)가 있었는지,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였다. 급기야 가톨릭교회는 왜 「성경」에 나오지 않는 것을 가르치느냐며 그동안 자신이 가졌던 교리에 대한 궁금증을 마구 쏟아 내기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 고해성사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으셨는데, 가톨릭교회는 왜 고해성사를 행하느냐?’ ‘연옥이 「성경」 어디에 언급되는가?’ ‘성당마다 세워 둔 마리아상과 요셉상은 십계명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냐?’…. 

 

이러한 질문을 곰곰이 살펴보면 ‘오직 성경으로만’에 충실했던 그분이 믿은 지난날의 신앙의 눈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가톨릭교회는 개신교와는 달리 계시의 원천을 「성경」뿐만 아니라 사도들에게서 유래하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모범, 그리고 성령을 통해서 전달된 ‘성전’(聖傳)도 있다고 가르친다. 성령을 세례 때 받는지 견진 때 받는지 궁금했던 이유도 근본적으로는 성전을 계시의 원천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가가기

 

오순절에 성령을 충만히 받은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뜻을 받들어, 새 신자들에게 안수해 세례의 은총을 완성시키는 성령의 선물을 베풀어 주었다. 가톨릭 전승은 안수를 견진성사의 기원으로 인정하며, 이 견진으로써 성령 강림의 은총이 교회 안에서 영속되고 있다고 가르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288항 참조).

 

우리나라 교회에서는 견진성사를 받기 위한 기준으로 ‘분별력’을 가질 나이인 만 12세 이상을 제시한다(교회법전, 제89조;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 제67조 참조). 여기서 ‘분별력’의 나이라는 것은 견진을 받을 수 있기에 적절한 나이, 곧 신앙으로 성숙한 단계에 이른 나이를 말한다. 이는 자연적 성장의 성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성년을 의미한다.

 

신자들 가운데는 12세가 지났지만 견진성사를 미루는 사람이 간혹 있다. 하지만 모든 신자는 적절한 시기에 견진성사를 받을 의무가 있다(교회법전, 제890조 참조). 왜냐하면 견진성사와 성체성사가 없어도 세례성사는 유효하지만, 세례성사와 성체성사, 견진성사로 이어지는 그리스도교 입문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견진성사는 세례성사의 은총을 활성화하여 견진자가 그리스도와 더욱 견고하게 결합하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더욱 굳게 결합되어, 한층 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하는 성사이다.

 

견진성사를 통해 성령의 선물을 풍부하게 하며, 성령의 선물은 그것을 받는 사람의 덕을 보충하고 완전하게 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한다. 곧,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갈라 5,22)와 같은 성령의 열매이다.

 

견진성사의 핵심 예식은 집전자가 한 손을 견진자의 머리에 얹고 이마에 축성성유를 바름으로써 “성령 특은의 날인을 받으시오.”라고 말하는 예식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300항 참조).

 

여기서 기름은 예로부터 풍요와 기쁨의 표징, 정화와 치유, 아름다움과 건강 등의 상징이었다. 견진성사에서의 도유는 이러한 차원을 넘어서 견진자들을 ‘기름부음받은이’, 곧 ‘그리스도’의 삶에 참여시킨다.

 

견진성사도 세례성사와 성품성사처럼 영혼에 지워지지 않는 영적 표지를 새겨준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견진자에게 하늘의 능력을 부여하여 당신의 증인이 되게 하셨다는 표지이다(루카 24,48 참조).

 

견진성사를 받으려면 은총의 상태에 있어야 한다. 성령의 선물을 받을 수 있도록 정화하고자 고해성사를 받는 것은 마땅하며, 간절한 기도와 온순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온전히 내맡기면서 성령의 힘과 은총을 받고자 준비해야 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310항 참조). 성사를 받은 뒤에는 말과 행동으로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삶의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살펴보기

 

견진성사뿐 아니라 칠성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셨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성사적 삶을 떠나서 전해질 수 없다. 따라서 성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신앙을 거부하는 것이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다.

 

몇 년 전 이단 종파 ‘신천지’로 몸살을 앓았던 한 본당을 방문한 적이 있다. 본당 회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신천지 후유증으로 여전히 힘들다고 하며, 지금도 「성경」을 읽으면 그 당시 신천지에서 가르쳤던 ‘신통방통 비유 풀이’의 구절들이 머리에 맴돈다고 했다.

 

얼마나 세뇌를 잘 시켰는지 기가 차지만 더 기가 막힌 것은 당시 신천지를 추종했던 신자가 ‘미사를 드리지 마라.’ ‘고해성사를 하지 마라.’ ‘성경만 열심히 읽으면 된다.’고 말했을 때, 아무도 잘못되었다고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성사에 대한 우리 신자들의 인식이 잘 드러나는 모습이라 생각한다.

 

성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세우셨고, 그리스도의 몸에서 나오는 힘이요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의 행위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116항 참조).

 

교회는 성사 생활의 효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성령께서 신자들을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므로, 이러한 성사는 신자들의 구원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가르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129항 참조). 성사가 「성경」 말씀보다 구원에 덜 효과적인 것도 아니다.

 

사도전승에는 오직 글로 쓰인 하느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만 있는 게 아니다.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 그리고 그분과 함께한 공동생활에서 받은 것과 성령의 조언에 힘입어 배운 것을 설교와 모범과 제도로써 전달해 준 구전 전승도 있다.

 

「성경」 어디에도 예수님께서 견진성사를 세우셨다는 말씀은 없다. 하지만 사도전승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견진성사를 세우셨다고 고백한다. 이처럼 우리 신앙인은 계시의 전달에는 「성경」뿐만 아니라 ‘성전’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결심하기

 

교회는 그리스도교 이름을 주는 예식을 통해 예비 신자에게 새 이름을 주고 세례성사를 베푼다. 그런데 세례성사 때 받은 세례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견진성사 때 바꿀 수 있는지 물어보는 분이 간혹 있다. 한국 천주교회는 사목적 혼란을 피하고자 세례명의 변경을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2015년 춘계 정기 총회 결정 사항).

 

따라서 견진성사를 받을 때 세례명을 바꿀 수는 없다. 사제나 수도자의 경우, 세례명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지향으로 공경할 성인을 함께 기억하는 것이다. 처음 세례명을 정할 때 자신의 생일에 가까운 축일의 성인이나 근사한 이름을 찾기보다 존경하는 성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정했으면 그 수호성인의 모범을 따르고자 더욱 노력하는 것이 세례명을 바꾸는 것보다 더 바람직할 것이다.

 

* 박종주 베드로 - 부산교구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평생교육원장으로 일하며 차별화된 가톨릭 평생 교육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랫동안 신학교에서 교리 교육을 가르쳤다.

 

[경향잡지, 2017년 4월호, 박종주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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