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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펀펀 사회교리: 프롤로그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7-05-02 조회수3,452 추천수0

[펀펀 사회교리] (16) 프롤로그


“세상일 함께 고민하며 나누고 공감할 터”

 

 

전화 한 통이었습니다. 이 깊은 수렁 속에 발을 디딘 것은.

 

점점 몸이 가라앉고 침잠하여 숨이 턱턱 막히다가 끝내 사라져 버릴 것을 알면서도 “그러겠노라” 말한 것은, 제 안에 숨어 욕망의 혀를 날름거리는 교만과 만용의 끝없는 수렁의 깊이 때문이었습니다. 다시는 끝없이 이어지는 글을 쓰지 않으리라 다짐을 하고 또 했지만, 이성은 치졸한 명예욕이나 몇 마디 칭찬에 늘 목말라하는 감성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마치, 이제 드디어 늦은 밤 라면을 먹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맹약을 하지만, 한밤중에 부엌에서 물을 끓이면서 벽장을 열고 어떤 라면을 먹을지 고민하는 나약한 내 의지와 같은 것입니다.

 

25년 신부 생활 중 14년을 복지 시설에서 일했고, 고작 11년 정도만 본당 사목을 하다 보니 신자들의 삶을 잘 모를 수 있습니다.

 

반면, 비신자들과 어울려 살다 보니 신자를 넘어서는 폭넓은 사람들의 삶은 어렴풋하나마 공감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스스로 불편함에도 타인의 고통과 불행에 가슴 쓸어내릴 줄 아는 장애인들, 어른들의 시선 주변을 맴도는 스스로를 버린 아이들, 경쟁에서 밀려나 다시 한 번 삶의 기회를 잡으려 애쓰는 이웃들, 원하지 않았지만 세월이 쌓여 어르신이라 불리면서도 어른 대접을 받지 못하는 정말 어르신들, 하느님께서 주신 새 생명을 몸에 품고 살지만 속으로 웅크려야 하는 미혼모들, 낯선 타국에 마음 붙여 살려고 왔지만 몸조차 거부당하기 일쑤인 이주민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지난 2014년 8월 세월호 유족들을 만나시고 하신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는 말씀은, 복지 일을 하고 있는 저 같은 사람에게는 너무나 울림이 큰 이야기입니다.

 

결국 하느님께서 구원하고자 하신 것은 사람입니다. 당신께서 가장 사랑하는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종교, 가톨릭의 시작입니다.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39)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분명하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나눌 모든 이야기는 하느님과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이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면서 겪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연관 지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관계를 벗어나서 살 수 없습니다. 이에 사회교리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지식이 짧은 제가 감히 여러분을 가르치려 들겠습니까? 세상 살아가는 일에 대해 여러분과 함께 고민하며 나누고 공감하고 싶습니다. 저와 생각이 다르시거나 더 좋은 생각을 가지신 분들께서는 가감 없이 가톨릭신문 홈페이지를 통하여 생각을 나누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 이번 호 ‘펀펀 사회교리’부터 백남해 신부님께서 함께해주시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큰 성원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 지도 백남해 신부(요한 보스코 · 마산교구 사회복지국장) - 마산교구 소속으로 1992년 사제품을 받았다. 마산교구 사회사목 담당, 마산시장애인복지관장, 창원시진해종합사회복지관장, 정의평화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가톨릭신문, 2017년 4월 23일, 지도 백남해 신부(요한 보스코 · 마산교구 사회복지국장), 정리 서상덕 · 박지순 기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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