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펀 사회교리] (17) 기권할 권리? ①
본인 의사 분명히 드러낼 때 진정한 ‘권리’라 할 수 있어 아직도 사무실 출근은 낯설다. 교구 사회복지국장으로 1월에 부임해 석 달째가 되었지만 몸에 꽉 끼는 옷을 입은 것 같다. 창문을 열고 아침 공기를 불러들이며 크게 기지개를 펴 본다. 바다 내음이 실린 바람이 하루를 맑게 만든다. 이때 방문을 두드리는 둔탁한 소리가 들린다. ‘일찍부터 또 무슨 일이지?’ 요즘 하도 복지시설에서 말썽들이 많아서, 전화벨이 울리거나 방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면 괜히 겁부터 난다. 하지만 마음을 추스르며 담담하게 대답한다. “예, 들어오세요.” 문을 시부저기 열면서 복지국 직원 둘이 들어온다. 선임 팀장 베드로와 팀장 스텔라다. 말없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함께 고개를 숙이며 자리를 권하고 앉는다. “신부님은 이번에 누구 찍으실 겁니까?” 대뜸 아침부터 선임 팀장 베드로가 또 날궂이를 시작한다. 곧 다가올 대통령 선거 때 누구에게 투표할지를 묻고 있다. “베드로씨 뭐 또 아침부터 쓸데없는 소립니까?! 다 큰 어른들이 알아서 찍을 일이지, 근데 베드로씨는 누굴 찍을 겁니까?” 되묻는 말에 베드로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저요? 저는 그 날 잠이나 푹 잘 겁니다. 노총각이 데이트할 사람도 없고….” 괜스레 옆에 앉은 미혼인 팀장 스텔라를 쳐다보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냥 잠이나 푹 자는 게 남는 것 아니겠습니까?” 베드로의 너스레에 백 신부는 혀를 차며, “그러니까 한국 정치가 발전이 없습니다. 젊은 분들이 적극적으로 투표하고, 투표를 통하여 자신들의 의사를 정확히 밝혀 주어야지 좋은 후보가 당선되어 나랏일을 잘 꾸려 나가죠. 안 그래요?” “예, 신부님 말씀 맞습니다. 그래도 뭐 별로 마음에 드는 후보도 없고. 투표하지 않을 권리도 권리 아닙니까?” 베드로의 반격이 만만찮다. 흡사 준비하고 온 듯한 말투다. ‘그렇구나! 아침부터 시작하는 폼이 그렇다 싶더니만….’ 그렇다고 순순히 물러설 내가 아니다. “물론 기권도 한 가지 표현 방법이겠지요. 투표하지 않을 권리도 권리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분명한 권리를 표현할 때 권리가 되는 것 아닙니까? 귀찮아서 투표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면, 투표소 밖에서 인증 샷 찍어서 제게 보내 보세요. 그럼 투표 안 할 권리를 행사한 것으로 인정해드릴게요.” 베드로가 꼬리를 팍 내린다. “뭐 꼭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승기를 잡았을 때 몰아쳐야 한다. “투표하지 않을 권리를 저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과연 많은 사람들이 투표장에 가지 않는 것이 투표하지 않을 권리 때문일까요?” * 지도 백남해 신부(요한 보스코 · 마산교구 사회복지국장) - 마산교구 소속으로 1992년 사제품을 받았다. 마산교구 사회사목 담당, 마산시장애인복지관장, 창원시진해종합사회복지관장, 정의평화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가톨릭신문, 2017년 4월 30일, 지도 백남해 신부(요한 보스코 · 마산교구 사회복지국장), 정리 서상덕 · 박지순 기자] [펀펀 사회교리] (18) 기권할 권리? ② 선거권은 권리이자 의무 “꼭 투표하세요” 베드로를 향한 나의 말이 계속된다. “사실 모든 후보, 아니 한 후보라도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고, 내놓은 공약을 보면 영 아니다 싶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투표를 하지 않는다고 무엇이 바뀝니까?” 베드로가 반박을 못하자 팀장 스텔라가 거들고 나온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편들기는! “투표율이 낮고 젊은 사람들이 투표장에 가지 않으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따져서 대책을 세우는 것이 정부가 먼저 해야 할 일 아닙니까? 투표장에 가지 않는 사람만 나무랄 일은 아니지 싶습니다.” 공격이 예사롭지 않다. 그렇다고 물러설 내가 아니지. “아주 근본적인 문제를 정확하게 짚으셨군요. 사실 여러 나라에서 투표율을 올리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합니다. 한 예로 호주는 투표율이 90%가 넘습니다. ‘의무 투표제도’를 통해서 투표를 하지 않으면 벌금을 부과하기 때문입니다.” “‘의무투표제’라뇨? 원래 투표, 참정권은 국민의 권리 아닌가요?” 스텔라의 예리한 지적이 계속된다. “그렇죠. 참정권은 공무 담임권과 선거권, 국민 투표권을 말하지요. 그 중에서도 직접 참정권인 선거는 매우 중요한 권리입니다. 이 권리를 국민의 의무로 여긴다는 것이죠.” ‘권리가 의무라….’ 스텔라와 베드로가 중얼거리듯 되새긴다. “자, 우리나라 국민의 4대 의무가 뭐죠?” “근로 · 납세 · 국방 · 교육의 의무 아닙니까?!” 베드로가 신이 나서 말한다. “제법인데요. 교육의 의무는 의무이면서 권리입니다. 이는 교육을 통해서 한 개인이 국가를 위해 필요한 인재로 양성되어 국가 발전에 힘이 되어야 하기에 의무이지만, 한 개인의 삶을 볼 때에도 교육을 통해서 자신을 개발하고 더 나은 삶을 만들 수 있기에 권리도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선거권은 권리이지만 선거를 통하여 국가를 잘 이끌어갈 지도자를 뽑아야 나라가 발전하기에, 이 권리를 잘 사용하는 것은 깨어있는 국민의 의무가 될 수가 있는 것이죠.” “그래도 저는 ‘기권할 권리’가 있다고 봅니다!” 베드로가 물러서지 않는다. 스텔라 앞에서 지기 싫은 눈치다. “물론 ‘기권할 권리’를 잘 사용할 제도적 장치가 있으면 괜찮습니다. 예를 들면, 투표용지에 ‘기권 칸’을 만들고 ‘기권’이 1등하면 선거를 다시 하고, 그 당시 후보는 출마할 수 없게 한다든지….” “옳소! 정부는 ‘기권 칸’을 만들어라!” 베드로가 신이 나서 장난스럽게 소리칩니다. 더 나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여러분도 꼭 투표하세요. [가톨릭신문, 2017년 5월 7일, 백남해 신부(요한 보스코 · 마산교구 사회복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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