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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펀펀 사회교리: 최저임금과 교회 가르침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7-07-31 조회수3,794 추천수0

[펀펀 사회교리] (30) 최저임금과 교회 가르침 ①


성경에도 하루 노동에 대한 가치와 품삯 언급돼

 

 

“먹고 살기 빠듯하네!”

 

“베드로씨 월급 적다고 일마저 적게 하면 안 됩니다. 원래 인생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 아닙니까?! 월급봉투가 얇아도 마음이 넉넉하면 그게 부자지요.”

 

악덕사용자 백 신부의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

 

“그건 그렇고 요즘 최저임금이 얼마더라… 시급이 6470원이죠. 그런데 사용자는 너무 많다고 하고 노동자는 너무 적다고 하고… 각자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니 어느 한쪽이 옳다 그르다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고…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OECD 가입국 중 중간 이하라고 합니다. 어때요 베드로씨는 얼마가 적당한 것 같습니까?”

 

“그거야, 많을수록 좋죠! 그런데 그게 마음대로 됩니까, 어디. 그런데 옛날에도 최저임금 같은 게 있었던가요?”

 

“물론 최저임금이라는 명확한 표현을 쓰지는 않더라도 어느 시대든지, 사람이 살아가는데 드는 최소한의 비용에 대한 고민과 논의는 있어 왔습니다. 국민을 보살펴야 하는 국가의 기본 정책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경에도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라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가 일꾼들과 하루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밭으로 보냈다. 그가 또 아홉 시쯤, 열두 시와 오후 세시, 다섯 시에 나가보니 다른 이들이 하는 일 없이 장터에 서 있었다. ‘당신들은 왜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 서 있소?’ 하고 물으니, 그들이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는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하고 말하였다. 저녁때가 되자 포도밭 주인은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이들부터 임금을 한 데나리온씩 주었다. 그래서 맨 먼저 온 이들은 자기들은 더 받으려니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만 받았다. 그들은 밭 임자에게 투덜거렸다. 그러자 밭 임자는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라고 하였다.」(마태 20장 요약)

 

예수님께서는 요즘말로 ‘완전고용’을 꿈꾸셨나 봅니다. 사실 하루 종일 일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화가 날만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 기초생존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들이 같이 받은 ‘한 데나리온’은 그 당시 정해진 노동자의 하루 품삯입니다.

 

비록 일한 시간은 짧더라도 누구든지 일하고자 하면, 가족들을 먹여 살릴 하루치 품삯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데나리온’은 학자들마다 의견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대략 7만 원에서 10만 원 사이로 봅니다. 그 당시 하루 노동시간이 10시간 정도였으니 시급이 최소 7000원에서 1만 원 사이로 나타납니다.

 

서민들의 인권과 생존권이 그리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던 2000년 전 이스라엘 노동자 시급이 지금 우리나라 보다 더 높으니 서글프지 않습니까?”

 

* 백남해 신부(요한 보스코·마산교구 사회복지국장) - 마산교구 소속으로 1992년 사제품을 받았다. 마산교구 사회사목 담당, 마산시장애인복지관장, 창원시진해종합사회복지관장, 정의평화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가톨릭신문, 2017년 7월 30일, 백남해 신부]

 

 

[펀펀 사회교리] (31) 최저임금과 교회 가르침 ②

 

대기업 유보금 넘쳐나도, 노동자 임금에는 ‘무관심’

 

 

“노동이 단순하고 일거리가 농업에 치우치던 2000년 전 이스라엘 시대를 지금과 비교하는 건 잘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베드로의 지적에 고개를 끄덕이며 백 신부가 답한다.

 

“지금처럼 일이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세상에서 임금에 대해 국가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이 불합리할 수도 있습니다. 사회주의 국가도 아닌 민주주의 정치체제와 자본주의 시장체제를 기본으로 하는 국가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베드로가 맞장구를 치며 한 술 더 뜬다.

 

“신부님. 노동자들 입장에서만 이야기를 하시는데, 기업 입장, 특히 영세 자영업자라면 ‘알바생’ 한두 명 쓰는 것도 무서울 지경입니다.”

 

“그렇죠, 요즘은 무엇보다도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대기업과 영세 자영업자는 분리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기업들을 보면 사내 유보금을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기업정보 사이트 ‘재벌닷컴’이 30대 그룹 소속 178개 상장사 감사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이들 상장사의 유보금은 3월 말 현재 691조5000억 원으로 집계됐답니다. 이는 2017년 정부 예산규모(400조7000억)보다 약 72.5%나 더 많은 액수거든요. 얼마 전 새 정부가 일자리 추경이라고 어렵게 얻어낸 추경 규모가 11조300억 원이었습니다. 30대 기업 사내유보금의 1.2~1.3% 정도에 불과한 돈입니다. 이처럼 대기업들은 돈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잘 풀지 않고,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임금 상승에 대해서만 핏대를 세우고 있습니다. 좀 잘못된 것 같지 않습니까?”

 

가만히 듣고 있던 베드로가 의외의 반격을 가한다.

 

“신부님은 여전히 한쪽만 보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대기업 대변인은 아니지만 정확한 사실을 아실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신부님 말씀이 틀린 건 아니지만, 전문가에 의하면, 유보금이 ‘곳간에 쌓아놓은 현금이 아니다’고 합니다. 놀부의 곳간처럼 언제든지 꺼낼 쓸 수 있는 현금이 아니라는 말이죠. 전국경제인연합회 주장을 들어보면 유보금 가운데 활용 가능한 자금 비중은 10~15%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대기업들이 놀부 심보로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고 현금을 꼭 쥐고 이자 놀이라도 하는 것처럼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험험.”

 

백 신부를 너무 몰아붙였다고 생각했는지 베드로가 헛기침을 하며 말을 마치자 백 신부의 반격이 시작된다. [가톨릭신문, 2017년 8월 6일, 백남해 신부]

 

 

[펀펀 사회교리] (32) 최저임금과 교회 가르침 ③

 

기업은 국민의 것, 사회적 책임 다해야

 

 

베드로의 사내유보금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들으며 백 신부가 말을 이어간다.

 

“베드로씨 말이 많은 부분 맞습니다. 국내 회사들이 가진 사내유보금에 대하여 많은 전문가들이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장부상에 문제가 없고, 이론적으로 아무리 맞는 말일지라도 실제 적용에는 다를 수 있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사내유보금 문제도 그중에 하나라고 보입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어떤 나라 기업이든지 비상사태를 대비해 유보금을 쌓아 둡니다. 특히 요즘 같이 전 세계가 불황일 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책임을 가진 제대로 된 기업이라면 무조건 쌓아 두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애플 등의 기업을 보면 배당에는 매우 인색하지만 오히려 투자를 많이 함으로써 기업성장을 이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업들은 자기 기업의 사업에 투자하기보다 몸집 불리기 등에 더 많이 투자합니다. 잘못된 투자죠. 또 기업 배당률이 너무 낮습니다. 그러니 주식을 투자가 아닌 도박처럼 투기로 하게 됩니다. 그리고 고용창출을 하지 않습니다. 다행히 새 정부 들어서 기업들이 고용창출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대기업들이 골목상권을 침범하는 나쁜 고용창출은 없어져야 합니다. 요약하자면 베드로씨 말대로, 사내유보금이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들이 사내유보금으로 어떤 투자를 하는지, 배당을 제대로 주는지, 사회에 얼마나 기여하고 고용창출을 하는지에 대해서 알고 나면 옹호하지만은 못할 것입니다.”

 

백 신부의 강한 반격에 베드로가 할 말을 잊은 듯 머뭇거리다 말한다.

 

“하지만 신부님, 기업의 목적은 이윤 창출이고 기업 활동이 자선 사업은 아니지 않습니까? 요즘 같은 세계적 불황에 아차하면 밀려나는 기업 환경 속에서 대기업일수록 우선 살아남고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뭐, 베드로씨 말이 영 틀린 건 아닙니다. 요즘 기업하기 참 힘들겠죠. 하지만 기업에는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기억하시죠? 지난 IMF체제 때에 정부에서 파산 직전인 기업들을 170조 이상의 세금을 투자해서 살렸던 일말입니다. 기업은 단순히 개인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회와 국가 전체, 국민들이 먹고 사는 기반이기 때문에 국민 혈세를 부어서라도 살려야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기업들도 기업이 개인의 소유가 아닌 국민 전체의 것이라는 생각으로 경영하고 사회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리고 천주교 신자라면 내 주머니에 들어있는 재물이나, 내 능력조차도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어쨌든 대기업이 최저임금 상승 때문에 힘들다는 것은 엄살로밖에 보이지 않는군요.” [가톨릭신문, 2017년 8월 13일, 백남해 신부]

 

 

[펀펀 사회교리] (32) 최저임금과 교회 가르침 ④

 

양극화 심화는 경제 발전 저해 요인

 

 

대기업이 최저임금 때문에 어렵다고 하는 것은 엄살이라는 백 신부의 논리에 저격당한 베드로가 ‘분골쇄신’ 영세 자영업자에 대한 변호를 시작한다.

 

“알겠습니다. 신부님. 대기업들은 사내유보금부터 사회적 책임에 따른 투자로써 최저임금 인상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 인정합니다. 하지만 영세 자영업자들과 가내수공업에 가까운 소기업들은 어떻게 합니까?”

 

베드로의 반격이 자못 비장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순순히 물러설 백 신부 또한 아니다.

 

“그렇습니다. 이번 최저임금 인상률은 2001년 16.6%를 기록한 뒤 16년 만에 최대 폭 상승입니다. 올해 최저임금 시급인 6470원보다 16.4% 인상된 금액이죠. 인상 금액은 1060원으로 역대 최대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다 보니 여러 가지 문제점이나 어려움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저임금을 단순히 ‘얼마나 올랐느냐’만 따질 일이 아닙니다.

 

OECD 가입국인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도 돌아보아야 하고, 최저임금에 대한 근본정신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저임금제는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함’(최저임금법 제1조)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즉 사회안전망 구축의 한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로자에게 임금을 적게 줄수록 기업이 이익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습니다. 수입이 적어진 노동자는 구매력이 떨어집니다. 결국 기업이 만든 물건을 살 사람이 없고, 영세 자영업자들이 운영하는 식당, 빵집 등에서 밥 먹을 사람이 없어집니다. 장기적으로 내수가 저하되어서 경기가 돌아가지 않게 됩니다.

 

자, 베드로씨 요즘 대부분 회사에서 점심밥을 주죠? 그런데 산업사회 초반에는 회사에서 점심을 주질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집에서 도시락을 싸오거나 돈을 주고 사먹었는데요. 그게 가난한 노동자들이 돈을 아끼려고 점심을 굶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오후 작업 중에 사고 발생률이 바짝 오르는 겁니다. 배가 고픈 노동자들이 사고를 당하는 것이죠. 그래서 할 수 없이 회사에서 일괄적으로 공짜 점심밥을 주기 시작했거든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렇죠. 작업 중 사고발생이 줄고 작업능률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습니다. 결국 공짜점심 한 끼 주는 것이 회사에는 더 큰 이익으로 돌아왔습니다.

 

최저임금도 이런 효과가 있습니다. 또 임금격차 완화와 소득분배 개선을 가져와서 양극화 현상을 줄일 수 있습니다. 양극화가 심해지면 경제 발전을 저해할 뿐 아니라 사회 불안 요소가 됩니다. 사회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많아지면 밤길이 안전하겠습니까? 중국 경제가 양극화 때문에 발목이 잡힐 것이라는 전문가 견해가 많습니다. 우리나라는 그렇게 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그죠?” [가톨릭신문, 2017년 8월 20일, 백남해 신부]

 

 

[펀펀 사회교리] (34) 최저임금과 교회 가르침 ⑤

 

소득 격차 줄여야 경제 선진국 도약 가능

 

 

양극화 이야기를 하던 백 신부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입니다. OECD는 경제적인 측면만 본다면 전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이 큰 선진국 모임이라고 봐도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경제는 OECD 회원국 수준을 맞추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경제 선진국으로 가는 좋은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양극화 문제에서 우리나라는 35개국 회원국 중 3번째로 심합니다. 소득분배가 잘 되지 않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소득 격차가 크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그나마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최저임금입니다. OECD 가입국 중 최저임금제를 실시하는 나라는 27개국인데, 그중 우리나라는 최저임금 수준이 15위입니다. 중간쯤 됩니다. 하지만 1위 프랑스의 절반 수준에 불과합니다.”

 

“신부님 OECD에 대해서 너무 장황하게 말씀하시는 것 아닙니까?”

 

“예, 그런 이유가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우리나라 경제 상황을 비교하면서 우리보다 더 어려운 나라를 끌어들이고, ‘이만하면 먹고 살만하지 않느냐? 우리 때는 세끼 밥 먹기도 힘들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배가 불렀다.’ 이런 말씀을 많이 하시거든요. 그러나 이제 우리는 당당하게 OECD 가입국으로서 그 수준의 나라들과 비교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이 좀 길었습니다. 이해해 주세요.”

 

백 신부의 말에 베드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한다.

 

“신부님 말씀하시는 뜻은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영세 자영업자와 소기업에 대한 이야기가 아직 없으신데요. 좀 해주시죠.”

 

“그래요, 요즘 자영업 하시는 분들 참 힘드시죠. 북한 핵과 사드 배치로 인한 중국의 무역 압박 등으로 인해서 경제가 어려운 이때에, 최저임금까지 대폭 인상됐으니 참 힘들 것입니다. 통계를 보니까, 내년에 최저임금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근로자는 경제활동인구부가조사 기준 463만여 명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전체적으로 영향을 받는 근로자가 23.6%나 된다는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영세 자영업자들의 고통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주변에서 가장 많이 보는 편의점 예를 들면, 그야말로 인건비와의 싸움입니다. 하루 24시간 문을 열어놓으려면 8시간 근무하는 직원이 최소 3명이어야 합니다. 물론 실제로는 편의점주 부부가 돌아가면서 시간을 메꾸는 것이 일반적입니다.(편의점주 부부의 인건비는 어디서 뽑는가?) 이렇게 인건비가 운영비를 대부분 차지하게 되면, 목이 좋지 않아 장사가 잘 되지 않는 편의점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습니다. TV 뉴스와 인터뷰한 어느 편의점주가 한 ‘차라리 제가 편의점 알바를 해야 할 형편입니다’라는 말에 공감이 갑니다. 참 안타깝죠.” [가톨릭신문, 2017년 8월 27일, 백남해 신부]

 

 

[펀펀 사회교리] (35) 최저임금과 교회 가르침 ⑥

 

인건비 부담 영세업자 ‘사회안전망’ 부실

 

 

베드로가 백 신부의 말을 들으며 그 어느 때보다도 전투력을 불사르고 있다. 허점만 보이면 반격을 가하기 위함이리라. 이런 살벌한(?) 분위기에도 굴하지 않고 백 신부는 이야기를 이어간다.

 

“주위를 둘러보면, 인건비가 운영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업종들은 영세 자영업들에서 많이 보입니다. 동네이웃들에서 가장 쉽게 만나는 치킨집, 시장 상표 피자집 등입니다. 특별히 목이 좋거나 맛집으로 소문나지 않으면, 대부분 배달을 해야 겨우 먹고 살 정도일 것입니다. 배달원을 쓰려면 인건비가 비싸니까 매장에 직접 와서 사가면 20, 30%씩 깎아 주는 곳도 있습니다. 그만큼 인건비가 부담되는 것이겠죠. 이런 사정들을 이해하면서도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과연 편의점이나 치킨집들이 적정한 숫자인가? 이런 프랜차이즈 가맹점들이 본점과의 관계가 정당하고 공평한가? 하는 것입니다.

 

한 예로, 얼마 전 부산 송도에서 8년째 2층에서 편의점 업을 하고 있는 한 건물 1층에 또 다른 편의점이 문을 열어서 비난을 산 적이 있습니다. 극단적인 경우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편의점 본사들이 가맹점만 늘려서 이익을 보려 하고, 이런 추세가 너무 많은 편의점을 양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이렇다 보면 가맹점과 본점 사이의 관계가 정상적이지는 않겠죠. 통계를 좀 볼까요. 지난해 편의점 시장 규모는 20조4000억 원이라고 합니다. 1인 가구 증가로 혼술, 혼밥 메뉴가 인기를 끌면서 불과 5년 사이 2배로 성장했습니다. 가족 해체나 개인주의 만연이라는 서글픈 세태의 결과이기도 하죠. 어쨌든 이런 성장세에 힘입어서 지난해에만 3600여 곳의 편의점이 새로 문을 열었습니다. 모두들 열심히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꿈을 가지고 가게 문을 열 텐데요. 기존 편의점들과의 경쟁에서 얼마나 살아남겠습니까? 영세업자들이 어려운 것은, 인건비 상승 문제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동종업체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소비할 수 있는 사람 수는 정해져 있는데 어떻게 모두 다 장사가 잘되겠습니까? 이런 분들이 대부분 명예퇴직하고 퇴직금으로 정말 생사를 걸고 장사를 시작하시는데… 이러다가 한 번 망하면 재기하기 힘듭니다. 사회안전망도 부실하다 보니 그냥 급전직하 하는 것이죠.”

 

“최저임금 이야기하시다가 갑자기 웬 사회안전망 말씀이십니까?”

 

베드로의 질문에 백 신부가 “이런 것들이 사회 경제적으로 모두 다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며 말을 잇는다. [가톨릭신문, 2017년 9월 3일, 백남해 신부]

 

 

[펀펀 사회교리] (36) 최저임금과 교회 가르침 ⑦

 

경제 약자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 필요

 

 

백 신부가 사회안전망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한다.

 

“영세 자영업자들이 사회안전망의 부실로 한 번 사업에 실패하면 재기하기 힘든 것이 우리 현실입니다. 그래서 경제적 약자들을 위해서 어느 정도 기본적인 안전망을 갖추어 주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기초생활수급자 등록을 통한 생활보장이나, 어려운 어르신들에 대한 기초 노령연금 등이죠. 이것들은 조건에 따른 사회보장제도입니다. 여기에다 그 어떤 조건을 두지 않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이만큼 일을 하면 이만큼은 수고에 대한 대가로 받아야 한다. 이런 게 필요하다는 것이죠. 이것이 최저임금입니다. 최저임금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하는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인 것입니다.”

 

백 신부의 이야기를 듣던 베드로가 의아한 듯 묻는다.

 

“신부님, 국민 누구나 기본적인 인간다운 삶을 살게 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라는 점에서 말씀은 이해하겠습니다. 그러나 왜 하필 어려움이 많은 영세 자영업자들의 희생을 통해서 사회안전망이 형성되어야 합니까? 뭐, 최저임금을 정하더라도 대기업에는 많게, 영세 자영업에는 적게 해서 차등적으로 정한다든지. 국가가 최저임금을 책임지겠다면 영세업자들에게 지급된 임금 중 일부를 세금에서 보전해주면 되지 않습니까?”

 

베드로의 예리한 지적에 백 신부가 살짝 당황했지만, 당황하지 않은 척 머뭇거리다 웃음 지으며 말을 한다.

 

“음, 그렇죠. 그래서 이번 정부에서도 영세 자영업자들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발표되었습니다. 그 내용을 대략 살펴보면 첫째, 일자리 ‘안정자금’을 지원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씨가 말한 것처럼. 중소기업에게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분의 절반을 지원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경영상 제반 비용 부담 완화’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뭐, 카드수수료 인하나 60세 이상 근로자를 고용하면 더 많은 지원금을 주겠다는 것들입니다. 셋째, 상가 임대료 인상률을 현재 9%에서 더 인하한다든지, 임차인의 계약갱신 청구권 행사 기간을 현행 5년에서 10년으로 늘린다든지 하는 ‘공정한 거래 질서 확립’이나. 넷째, ‘경영여건 개선 및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들을 시행하겠다는 것입니다.”

 

“뭐, 정부 정책이 다른 때와 달리 신속하게 발표되고 준비도 잘 하는 것 같으니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실제 현장에서 시행될 때는 어려움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렇겠죠. 이해 당사자가 너무 많고 먹고 사는 것에 관한 문제라 특히 더 그렇겠죠. 하지만 우리는 좀 더 멀리 볼 필요가 있습니다. 최저임금을 넘어서 생활임금까지도 내다보아야 합니다.”

 

“생활임금이라…” 베드로가 중얼거린다. [가톨릭신문, 2017년 9월 10일, 백남해 신부]

 

 

[펀펀 사회교리] (37) 최저임금과 교회 가르침 ⑧ · 끝

 

최저생활비 보장 ‘생활임금’ 도입 추세

 

 

베드로의 중얼거림을 의식한 듯 백 신부가 ‘생활임금’에 대해 설명을 한다.

 

“‘생활임금’에 대해서 들어보지 못하셨나요? ‘생활임금’은 현재의 물가와 사회상황을 고려하여, 근로자의 최저임금이 아니라 최저생활비를 보장해주는 개념입니다. 대체로 최저임금보다는 상당히 높게 책정이 됩니다. 최소한의 문화생활 등을 누림으로써 인간다운 삶, 여유로운 삶을 보장하자는 의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첫 시작은 19세기 말 미국에서부터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3년 경기도 부천시에서 처음으로 제정하기 시작하여 서울특별시 노원구, 성북구 등으로 확산되었습니다. 현재 지방자치단체에서 법률로 제정하거나 예정을 앞두고 있는 곳은 대략 65개 정도라고 합니다. 이 제도는 법률에는 근거가 없고, 순전히 조례에 의한 제도라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실제로 2013년 부천시에서 ‘생활임금’ 조례를 제정할 때 법제처는 법률에 근거가 없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거든요. 하지만 각 지역의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저소득 근로자들이 보다 여유로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있다는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생활임금’에 대해들은 베드로가 적이 놀라며 되묻는다.

 

“아니 그렇게 좋은 제도가 있었단 말입니까? 최저임금보다도 더 필요한 제도인 것 같습니다. 최저임금이 겨우 먹고살기 위한 인간의 기본이라면, 인간으로서 좀 더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생활임금’이야말로 선진 국가, 선진 국민을 만드는 확실한 임금 제도 같습니다. 일부 지자체가 아닌 대한민국 모든 지자체가 ‘생활임금’을 적용시켜야겠습니다.”

 

“하하, 베드로씨가 최저임금도 많다고 우려하시더니만 그보다 더 높은 수준의 ‘생활임금’에 대해서 이야기 듣고 홀랑 반하신 모양입니다.”

 

베드로가 겸연쩍게 웃으며 말한다.

 

“신부님, 죄송합니다. 사실 제가 최저임금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 대기업의 이해를 대변하는 몇몇 재벌언론에서 떠들어대는 소리만 듣고 오해가 많았습니다. 신부님 말씀 쭉 듣고 정부 정책들에 대해서 깊이 있게 공부하고 나니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최저임금뿐만 아니라 ‘생활임금’까지 이런 추세로 곧장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저와 미래의 제 아내와 아이들까지 여유로운 저녁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베드로와 백 신부는 오랜만에 마음이 통해 흐뭇하게 웃으며 최저임금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래요. 신앙인이라면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돈이든 시간이든, 기도까지도 내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이며 이웃과 나누어야 하는 것임을 명심해야겠습니다. 자 다음에는 무슨 이야기를 해 볼까요?” [가톨릭신문, 2017년 9월 17일, 백남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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