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양심 - 사회교리] <간추린 사회교리> 제6장 ‘인간 노동’을 중심으로
세상의 관리자인 인간의 존엄한 노동 교회는 노동을 인간의 본래 상태에 속한 것이며, 인간이 타락하기 전부터 있었으므로 형벌이나 저주가 아니라고 가르친다. 인간에게 노동은 하느님에 대한 신뢰와 일치의 관계를 깬 아담과 하와의 죄 때문에 고생스럽고 힘든 것이 된 것이다(창세 3,6-8). 창세기 신학은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처럼 될 것’(창세 3,5) 이라는 유혹에, 창조주의 뜻에 복종할 필요 없이 ‘모든 것을 지배하기를 바랐던’ 그 순간부터 땅은 인간에게 비참하고 보람 없고 적대적인 것이 되었다고 설명해 준다. 그러나 우리 원조들의 죄에도 불구하고 창조주의 계획과 피조물을 가꾸고 돌보도록 부름 받은 ‘인간’의 의미는 변하지 않았다. 인간에게 노동은 부의 원천이고 품위 있는 생활을 위한 필수적 조건이며 빈곤을 막기 위한 효과적인 도구이지만, 인간 삶의 궁극적이고 결정적 의미와 최종 목적은 노동이 아니라 ‘하느님’이시다. 따라서 인간이 노동을 통해 마음을 두어야 할 것은 쓰면 사라지는 지상의 재화가 아니라 사라지지 않는 천상의 보화(마태 6,19-21)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께서는 지상 생활 동안 끊임없이 일하시며 인간을 병과 고통, 죽음에서 해방시키는 놀라운 일들을 이루셨다. 그리고 안식일이 인간이 하느님과 다른 이들에게 온전히 헌신해야 하는 날임을 보여주고자 하셨다. 따라서 인간의 노동은 사람들을 악에서 벗어나게 하고 형제애와 나눔을 실천할 때 가장 숭고한 의미를 얻게 되며, 휴식 또한 인간이 내적으로 갈망하는 축제로 거행될 때 인류는 영원한 안식을 향한 길로 나갈 수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261항). 인류 역사의 흐름은 산업화 시대를 맞아 수많은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와 존엄성 침해를 보여주었고, 교회는 강력한 예언자적 대응으로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지하며 보편적이고 정당한 원칙을 강조하였다. 노동자들의 양도할 수 없는 존엄성은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인 하나의 인격체로서 ‘인격적인 행위(actus personae)’로서 노동을 하기 때문에 노동자를 단순한 생산도구나 물질인 노동력이나 상품으로 격하시키거나 왜곡시켜서는 안 된다. 인간의 노동은 인간에서 비롯할 뿐 아니라, 본질적으로 인간을 지향하며 인간을 최종 목적으로 삼기 때문에 노동이 인간을 위한 것이지 인간이 노동을 위한 것이 아닌 것이다(「간추린 사회교리」, 272항). 또한 사회 속의 인간은 다른 이들과 더불어 다른 이들을 위하여 무언가를 함으로써 노동이 창조주의 명령을 따라 자신의 도덕적 임무를 발전시킬 필요성에 응답함이며, 자신이 세상의 주인이 아닌 관리자로서 노동을 통해 자신의 원형인 창조주의 모습을 드러내는 정체성을 찾도록 부름 받는다. 교회의 사회교리는 노동과 자본의 관계에서 이 둘의 상호 보완성은 물론 자본에 대한 노동의 우위를 분명히 밝혔다. ‘노동은 자본보다 본질적으로 우위에 있다.’ 이 원칙은 생산과정에서 ‘고용된 노동’이 항상 주요 생산요소가 되지만, 생산수단의 총합인 자본(기업의 물질적 생산 수단이나, 금융자원이나 인적-기술적 자본)은 다만 하나의 도구일 뿐 목적이 될 수 없다는 원칙이다(「노동하는 인간」, 12항). 자본은 노동 없이 있을 수 없고 노동은 자본 없이 있을 수 없기에 이들의 협력으로 얻어진 것(이윤)을 어느 한편에만 귀속시키거나 무시하거나 독점하는 것은 정의에 크게 어긋난다(「사십주년」, 24항). 따라서 교회는 오늘날에도 기업주들이 최대이윤을 위해 고용된 노동에 대해 가능한 한 최저임금을 책정하려 하며, 노동자들을 과학기술의 발전과 시장의 세계화라는 경제구조 속에 무절제한 생산성 추구에 착취당할 위험으로 내몰고 있음을 경고한다(「간추린 사회교리」, 279항). 교회는 노동이 인간 존엄을 표현하고 증진하는 적절한 방법이기 때문에 인간의 기본권이며 인간에게 합당하고 유용한 선임을 가르친다. 따라서 노동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어야 하며 완전고용을 향한 적극적인 고용 정책을 추진할 의무와 책임은 공동선을 지향해야 하는 국가에게 있다. 또한 ‘적정한 임금은 노동의 정당한 결실’이기 때문에 적정한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한 일에 비례한 임금을 제때에 지불하지 않는 사람들은 심각한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노동의 보수가 단순한 계약으로 합의되었다 하더라도 ‘적정 임금은 노동자가 생활을 유지하는 데에 미흡해서는 안 된다’(「새로운 사태」, 32항)는 본질적인 정의는 계약의 자유에 우선할 뿐만 아니라 우위에 있다. 정규직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계약직 노동자들은 세계화된 자본이 바라는 ‘노동시장의 유연화’ 정책으로 언제든지 안정적 일자리에서 쫓겨날 위협 속에 살고 있다. 노동자들의,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새로운 결속 운동인 ‘연대’는 노동자로서 자신의 존엄을 온전히 존중받으며 노동자들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해줄 사회 · 정치 · 문화적 환경의 조성을 위한 더욱 큰 책임에 노력해야 한다. [외침, 2017년 7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한만삼 신부(광교1동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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