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아카데미] 두려운 이들과의 동행 - 故 장준형 생일에…
그들의 울부짖음을 들어야 합니다 지난 8월 20일, 그날은 주일이었습니다. 홍콩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위원들은 한국을 방문하여 한국 민주화운동의 흐름을 알고 싶어 했습니다. 홍콩은 영국 지배에서 중국에 반환된 지 20년이 되었으나 반환될 당시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중국 중앙정부의 강한 압박으로 민주적 자치와 인권보장이 후퇴하고 일상적 감시가 강화되고 이에 항의하는 집회와 시위마저 차단된 상황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1년 전부터 타오른 한국의 촛불집회를 눈여겨보았고 홍콩 시민들도 중국 본토로부터 민주적 통치를 보장받으려면 어떤 운동이 일어나야 가능한지 고심 중이었습니다. 그들은 민주주의나 인권보장은 어떤 희생이 있어야 함을 알지만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자신들을 지배하고 있음을 스스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과 안산 세월호 정부 합동분향소에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날은 마침 사고로 희생된 고(故) 장준형(사무엘)군의 생일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18세, 아! 우리 곁에 있다면 21세의 어엿한 청년입니다. 앞서 다녀간 여러 사람의 편지가 있었습니다. “사무엘에게, 벌써 3년이구나. 하늘나라에서 잘 지내고 있니. 우린 서로 모르는 사이였는데 네가 복사로 있던 그곳 신부님의 음악으로 너란 아이를 알게 되었구나. 널 보러 온지 세 번째고 처음 쓰는 편진데…. 신부님 노래가사처럼 그곳에서 엄마는 만났니? 이승의 아픔 나쁜 기억은 잊고 그곳에서 행복했음 좋겠다. 널 위해 기도할게. 그리고 자주 오도록 할게. 평화를 빕니다. 2017. 3. 24. 포일성당 자매가.” “사랑하는 내 조카 사랑하는 사무엘아. 너무 보고 싶고 그립지만 주님이 지금은 아니라고 하시니 조금만 기다려줘! 내가 차갑고 아팠던 너의 손과 발, 얼굴, 그리고 차가워진 심장까지도 모두 따뜻하게 안아줄게. 부탁이야. 제발 작은 고모 잊지 말고 있어줘. 사랑해. 2017. 5. 1. 작은고모 아가다.” 남동생 둘, 여동생 하나가 있는 준형의 4남매를 큰고모가 키웠다고 합니다. 예비신학교도 잘 나갔고 그날 세월호가 출발할 때 고모에게 전화하여 엄마라고 불러도 되냐면서 통화했다고 합니다. 그가 엄마라고 한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고 말았습니다. ‘엄마, 저 이제 출발해요. 잘 다녀올게요.’ 준형의 “엄마!” 소리를 들은 큰고모의 심정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유가족들의 대책마련과 재발방지 등 사회안전망 확보 요구에 정부의 대응은 더디기만 합니다. 단원고 2학년은 10반이었으나 현재 11반이라고 합니다. 사고 후 자원봉사자들이 11반이 된 것입니다. 우리도 11반이 될 수 있습니다. “다른 이들의 고통에 깊이 공감할 때 우린 가난한 이들의 울부짖음을 들어주라는 명령을 이행할 수 있습니다.”(「복음의 기쁨」 193항) 그날 홍콩 정의평화위원회 위원들은 준형의 생일을 이유로 그의 영정 앞에서 케이크에 초를 켜고 흐르는 눈물과 흐느낌으로 축하노래를 불렀습니다. 난생처음 보는 생일 축하였습니다. 그것은 304명 사망자 중 일반승객 42명, 12명의 교사, 250명의 단원고 학생, 그들 모두의 부활을 염원하는 노래였습니다. 아직 돌아오지 못하는 5명의 자리를 마음 속 깊은 곳에 품은 채…. 권재근, 권혁규, 양승진, 남현철, 박영민. 아! 이런 생일 축하는 더 이상 없어야 합니다. * 양운기 수사(한국순교복자수도회) - 한국순교복자수도회 소속.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상임위원이며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이다. 현재 나루터 공동체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11월 12일, 양운기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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