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환민 신부의 교리산책] 연옥(煉獄) 우리 교회의 아름다운 전통 중 하나는 우리보다 앞서 세상을 떠난 영혼들을 위해 끊임없이 희생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미사 때마다 산 이들뿐 아니라 죽은 이들도 기억합니다. 묵주기도를 바칠 때 매 단마다 연옥의 영혼, 특히 가장 외로운 영혼을 위해 기도합니다. 장례 때나 기일에 연도를 바치고 위령성월에는 앞서가신 모든 영혼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다른 때보다 더 열심히 희생하고 기도합니다. 하느님의 은총 속에, 다시 말해 하느님이나 주위 사람들과 평화로운 관계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라도 하느님의 얼굴을 뵙기 위해서는 먼저 정화의 시간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연옥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을 때 주님은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습니다.(루카 22,54-62 참조) 연옥의 느낌은 이와 같을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 대부분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연옥을 겪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사랑 가득한 눈길로 우리를 바라보실 텐데, 우리는 자신의 악한 행실이나 ‘단순히 사랑 없이’ 한 행동 때문에 얼굴이 화끈거리는 부끄러움과 뼈아픈 후회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정화의 고통을 겪은 이후에야 비로소 사랑 넘치는 주님의 시선을 천상의 순수한 기쁨 속에서 마주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세례 받은 이들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서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살아있는 사람들은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죽은 사람은 자신을 위해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사랑을 증명할 시기가 이미 지나버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살아 있는 우리는 연옥에 있는 영혼을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으며, 우리의 사랑은 저 세상까지 이릅니다. 단식과 기도, 선행 그리고 무엇보다 미사를 통해 우리는 죽은 이들을 위해 은총을 청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연옥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그 영혼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공로이기도 하고 우리 자신을 위한 매우 뜻깊은 선행이기도 합니다. “예수님, 저희 죄를 용서하시며, 저희를 지옥불에서 구하시고 연옥 영혼을 돌보시며, 가장 버림받은 영혼을 돌보소서.”(구원송) [2017년 11월 12일 연중 제32주일 서울주보 4면, 유환민 마르첼리노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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