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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회교리 아카데미: 세상을 구한 남자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7-11-18 조회수4,068 추천수0

[사회교리 아카데미] 세상을 구한 남자


자기 희생해 평화 지킨 ‘진정한 영웅’

 

 

‘세상을 구한 남자’는 핵미사일이 발사되는 순간과 폭발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되는 영화로 전쟁의 참혹함을 알리고 평화를 염원하는 소련군 장교의 실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주인공 페트로프 중령은 소련 ‘세르푸호프-15’로, 소련 중앙 방공사령부 관제센터 근무 중이었습니다. 그의 임무는 스크린에 핵미사일이 나타나면 규정과 순서대로 보고하는 일입니다. 1983년 9월 26일 그가 근무 중 경보가 울리면서 핵미사일이 날아오는 것이 스크린에 나타났습니다. 규정대로 보고해야 하지만 스크린을 지켜본 그는 시스템의 오류라고 판단했습니다. 미국이 미사일을 발사했다면 단지 6발보다 훨씬 많이 발사했을 것이라는 확신도 있었습니다. 

 

소련은 3주 전 1983년 9월 1일, 승객 269명이 탄 대한항공 007편을 미국 정찰기로 오인해 격추시킨 일로 미국에 의해 ‘악의 제국’으로 지목받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미국이 소련을 공격할 것이란 생각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미국의 미사일이라고 보고했다면 미국과 소련은 전면전이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페트로프 중령은 “이상 없음”으로 보고절차를 마쳤고 후에 시스템 오류임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날의 일지가 정확하지 않다는 이류로 강제 전역하고 연금도 받지 못한 채 가난하고 쓸쓸한 노후를 보냈고 그 사실을 말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그러던 중 1998년 유리 보틴체프 전 소련 미사일방어 사령관의 회고록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면서 2006년 유엔 세계 시민상을, 2013년 드레스덴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그의 평소 신념은 ‘양쪽에 전쟁광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신념이 근무 중 스크린에 미사일로 보이는 물체가 나타났을 때 ‘시스템의 오작동’을 알아내는 능력으로 작용한 것입니다. 이것은 그가 평화에 대한 감수성이 풍부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규정대로 즉각 사령관에게 미국의 미사일 공격을 보고하고 조치대로 따르면 되는 것이었지만 그는 핵전쟁이 발생할 때 인류의 처참함을 먼저 생각한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영웅이라고 추켜세우자 영웅이 아니라고 하며 “다만 한 가지가 저를 부끄럽게 합니다. 그날 밤 제가 한 일 중 가장 최악이었던 건 제 결정이 옳은지 아닌지를 의심했단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행히 제가 옳았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가 그리스도교적 가치관으로 살았는지는 알 수 없고 영화도 특정종교에 대한 내용이 아니며 그의 평화 감수성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또한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평화를 이루는 행복한 사람’(마태 5,9)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자신은 강제로 군을 떠났으나 미·소의 충돌을 막았고 자신의 희생으로 전쟁을 방지한 것입니다. ‘전쟁은 불필요한 대량학살이며 되돌릴 수 없는 모험이 되어 인류의 현재와 미래를 위협한다.’(「간추린 사회교리」 497항)고 알고 있기에 기꺼이 자신을 희생했습니다. “평화는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생겨난 것”(「간추린 사회교리」 493항)이라면 페트로프의 희생으로 평화가 유지됐습니다.

 

그는 익명의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나는 영웅이 아니며 그냥 그 때 그 장소에 있었을 뿐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가 진정한 영웅입니다. 우린 지금 또 하나의 영웅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 양운기 수사(한국순교복자수도회) - 한국순교복자수도회 소속.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상임위원이며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이다. 현재 나루터 공동체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11월 19일, 양운기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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