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합시다! 신앙교리] 성체성사로 우리게 오시는 구원의 하느님 성체성사 안에서 우리가 받아 영하는 성체는 강생(降生)하신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우리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사람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몸을 생명의 양식으로 내어 놓으신 것입니다. ‘영성체’(領聖體)는 이러한 그리스도의 몸을 우리가 받아 모시는 행위를 말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모시는 영성체는 결코 생략될 수 없는 성체성사의 한 부분이며 성찬례의 목표이고 완성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만일 우리가 주님의 성찬에 참여하면서 성체를 모시지 않는다면, 그러한 미사참여는 불완전한 것이라 할 수밖에 없겠지요.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나를 기념하여 먹고 마셔라’고 분명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주님의 몸을 모시기에 너무 부당하다는 생각에서 영성체를 소홀히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주님의 거룩한 몸을 모시기에 결코 합당하지 않은 우리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님의 성찬례에 초대를 받고 있는 복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영성체를 위한 준비 성체성사의 높은 품위는 그 성사의 수령자에게 그에 상응하는 준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 “그러므로 부당하게 주님의 빵을 먹거나 그분의 잔을 마시는 자는 주님의 몸과 피에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러니 각 사람은 자신을 돌이켜보고 나서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셔야 합니다.”(1코린 12,27-28) 바오로 사도의 말씀에 따라 교회는 영성체를 위한 준비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있는데, 그 수령의 조건들은 영성체하는 사람의 몸과 영혼을 다 포함하는 것으로 영적이면서도 육체적인 준비를 뜻하는 것입니다. 즉 “영성체 전 적어도 한 시간 동안은 물과 약 외에는 어떤 음식도 삼가야 한다는 공복제”(교회법 919조 1항)를 뜻하는 육체적인 준비와, “중죄를 자각하는 이의 영성체 전의 고해성사 참여”(교회법 916조)와 같은 영적인 준비입니다. 영적인 준비에 대해서는 디다케 14항이 잘 가르치고 있습니다. – “너희는 먼저 너희의 죄를 고백하고 난 후에 주의 날에 모여서 빵을 나누고 감사를 드려라. 그래야 너희의 봉헌이 깨끗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교회는 중대한 이유가 있고 고해성사를 볼 기회가 없는 경우, 자신이 대죄 중에 있음을 자각하는 이라도 진실한 통회를 발해야 한다는 것과 빠른 시일 내에 고해성사를 받아야한다는 것을 자각하면 주의 몸을 영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중죄를 자각하는 이에 있어서 고해성사가 중요하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해성사가 성체성사를 위한 절대적이고 유일무이한 필수 준비조건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죄인 자신이 진실로 뉘우치는 것이고, 고해성사에 참여하기를 노력하는 것이며,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주님의 몸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트리엔트공의회는 성체를 모시는 데는 3가지 방법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즉 성사적인 방법, 영적인 방법, 성사적이고 영적인 방법이 그것입니다. 먼저 성사적인 방법은 미사에 참여하기는 하지만 특별한 준비 없이, 건성으로 혹은 형식적으로 성체를 모시는 것을 말합니다. 영적인 방법은 미사에 참여하지는 못하지만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현존을 모시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 영적으로 영성체를 한다는 뜻에서 ‘신령성체’(神領聖體)라고 부릅니다. 성사적이고 영적인 방법은 잘 준비해서 미사에 참여하여 성체를 모시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당연히 미사에 참례할 때마다 합당한 준비로 거룩한 성체를 받아 모시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성체성사적인 삶 영성체를 위해서 잘 준비하는 자세도 중요하지만, 영성체 후에도 성체성사를 모신 사람에 걸맞게 살아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즉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어 모시는 이들은 친교의 공동체인 교회와 더불어 사랑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성찬에 초대를 받고 성체를 모시는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러한 삶의 자세는 성체성사적 삶이라고 하겠습니다. 성체성사적인 삶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신의 몸을 타인을 위해 내어주는 것이고, 성체를 통해 우리 모두 하나가 되는 것이며,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분께 우리의 사랑을 드리는 것이며, 우리 죄를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이고 그분께 더 가까이 나아갈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세가 성체성사적 삶이고, 이런 성체성사적 삶을 살아갈 마음을 우리는 매번의 미사 때마다, 매번의 영성체 때마다 배우고, 또 그 마음을 새롭게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성체성사를 이루고 나누는 교회 안에서 나를 구원하시는 하느님 성체성사는 우리 신앙생활의 핵심을 이루고 원천이 됩니다. 또한 성체성사는 우리 교회 공동체를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일 미사에 참례하는 것은 인류의 구원에 봉사하는 교회의 존립을 위한 것이고, 교회 공동체의 친교를 위한 신앙생활의 중요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성체성사 안에서 당신의 몸을 빵으로 내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이 되어 우리게 오신 하느님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시려고, 우리 인간의 언어로 말하시려고, 또 우리와 함께 사시려고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인간이 되어 오신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인간 죄악의 극치 앞에서 하느님의 한량없는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당신의 그러한 사랑이 당신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 의해서 이 세상에 계속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 하느님의 사랑을 세상에 전하는 도구의 역할을 맡은 단체가 우리 교회인 것입니다. 즉 우리 인간을 위하여 우리 인간 가운데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인간의 행복을 바라시고 그 행복을 가능하게 하시는데, 무엇보다 우리 교회를 통해서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교회 공동체는 세상의 구원만이 아니라 나의 구원을 위해서도 있습니다. 곧 나의 구원은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교회를 통해서 인류를, 무엇보다 나를 구원하고자 하신다는 것입니다! 나의 구원을 위해서 교회는 참으로 필요합니다! 교회는 내가 세례를 받았으니 마지못해서 다녀야 할 곳도, 나의 돈과 시간과 정열을 뺏으려는 곳도, 인간적인 친교만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도 아닙니다. 교회는 무엇보다 나의 구원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구성원 모두가 나의 구원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우리가 교우(敎友)라고 부르는 동료 신자들, 신부님들, 수녀님들이 다 나의 구원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그러면서도 교회는 나만의 구원이 아니라 나 아닌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도 존재하는 것임을, 나는 다른 이에 대해서 또 교회에 대해서 나름의 책임이 있음을, 그래서 나는 공동체 안에서 말하고 행하는 나의 한마디, 한 행동에 주의를 기울여야 함을 잊지 맙시다! 예수께서는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달고 바다 깊은 곳에 빠지는 편이 낫다.”(마태 18,6)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7년 12월호, 조현권 스테파노 신부(대구대교구 사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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