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아카데미]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교회가 침묵하던 그 때에…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이정미 재판관의 목소리는 차분했으나 단호했습니다. “이 사건 탄핵심판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문제로 정치적 폐습을 청산하기 위하여 파면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는 재판관 안창호의 보충의견이 있습니다. 이것으로 선고를 마칩니다.” 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탄핵 결정문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2016년 12월 9일 오후 국회는 그의 탄핵소추안이 “탄핵 가결 정족수(200석 이상)를 충분하게 넘어선 234표의 찬성으로 통과”되었음을 선언했습니다. 234표는 야당 및 무소속(민주당 121, 국민의당 38, 정의당 6, 무소속 7) 172명이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고 보면 당시 새누리당에서 62명이 대통령 탄핵에 동참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탄핵은 민심이고 천심이었습니다. 그만큼 박근혜 정부 4년은 백성을 위한 정치가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며 정확히 1년이 지난 지금의 소회(所懷)입니다. 지난해 11월 1일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대통령은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려는 진지한 자세로 국민의 뜻을 존중하여 책임있는 결단을 해야 한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분명히 과오가 있음을 지적하며 탄핵의 정당함에 의견을 냈습니다. 또한 사회주교위원회는 “대통령과 소수 측근의 국정농단 사태로 국민 주권과 법치주의 원칙이 유린되는 반헌법적이고 반민주적인 현 상황을 깊이 우려한다. 국민의 대통령 퇴진 요구는 정당하며, 국회는 당리당략보다 국가와 국민을 걱정하라”며 그의 퇴진이 교회의 입장임을 공식화 했습니다. 교회의 입장은 분명했습니다만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 것” 같습니다. 그가 대통령의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은 이미 그 이전이고 교회는 좀 더 철저한 예언직을 수행했어야 했습니다. 이정미 재판관이 “이 사건 탄핵심판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는 설명은 사실 교회가 박근혜식 정치에 이미 했어야 하는 말이었습니다. 교회는 분명히 “인간다운 사회건설을 이끌어야 할 원리들과 더불어, 교회의 사회교리는 근본적인 가치들도 제시해야”(「간추린 사회교리」 197항)함에도 가끔, 오히려 교회가 어떤 사안을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으로 분석하지는 않았는가?” 돌아볼 대목입니다. 이정미 재판관은 계속 말을 이었습니다. “정치적 폐습을 청산하기 위한 파면 결정”이라고.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고. 우린 탄핵시기에만 정치적 폐습을 본 것은 아닙니다. 지금 ‘국정원 대선댓글’로 밝혀지고 있지만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시기 ‘부정선거’의 혐의가 분명했습니다. 그 때 왜 교회는 확실한 입장표명을 주저했던가요? 좀 더 분명하게 “종교는 국민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건들에 대하여 의견을 표명하지 말라고 누구도 말 할 수 없다”(「복음의 기쁨」 183항)는 점을 상기했으면 어땠을까요? 교회가 주저할 때마다 백성들은 엄청난 고통을 겪으며 적폐를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교황청 주교성은 「사도들의 후계자」 209항에서 다음처럼 말합니다. “주교는 정의와 평화의 예언자가 되고, 양도할 수 없는 인간 권리의 옹호자가 되도록 요구받고 있습니다.” * 양운기 수사(한국순교복자수도회) - 한국순교복자수도회 소속.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상임위원이며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이다. 현재 나루터 공동체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12월 10일, 양운기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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