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찾아서 – 성찰이란] 일상 돌아보기 성찰은 자신을 돌아보는 내적 활동입니다.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 잠시 멈추어 생각해 봅니다. 한 걸음 나아가 이를 통해서 무엇을 느꼈는지 답을 구해 봅니다. 성찰은 신앙인의 삶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런 내적 활동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성찰은 고해성사를 준비하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바쁘게 살더라도 고해성사를 보며 조용히 자신의 삶을 돌아봅니다. 하나, 경험 수도 생활의 이론과 실제를 배우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수도회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으니 그 배움의 연속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도회에 입회한 사람은 예외 없이 수도 생활의 첫 단계로 ‘수련’이라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이 수련 시기에는 모든 결정을 전적으로 수련장 신부님께 맡기고, 하루하루 주어진 시간에 온전히 최선을 다하여 훈련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닮으려는 갈망이 가득한 젊은이들끼리 모여 사니 어떠한 다툼이나 긴장도 있을 수 없겠지요? “예.”라고 답하고 싶지만, 그 안에도 성격 차이로 말미암은 긴장과 다툼이 이따금 있습니다. 수련원 시절 가운데 쉽지 않았던 일은 늘 반복되는 일상을 정리하여 보름에 한번 수련장 신부님께 보고하는 것이었습니다. 형식은 구술로, 수련장 신부님과 마주하고 말이지요. 면담 시간에는 고해성사도 정기적으로 해야 했는데, 도대체 뭘 더 말씀드려야 할지 번번이 난처했습니다. 세속에서는 별로 문제시되지 않을 이야기들을 늘어놓아야 했죠. “한 형제와의 사이는 괜찮고, 어떤 형제하고는 서먹한데, 아마도 기질의 차이인 듯합니다.” “침묵을 지켜야 할 시간에 말을 했습니다.” “모임 시간에 2분 늦었습니다.” 삶을 성찰하는 수련이었음에도 당시에는 그저 숙제인 양 느껴졌습니다. 그럴 때면 내심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죄짓기도 힘든 이런 곳에서 거지반 천사처럼 살고 있는데, 면담을 꼭 해야 하나?’ 그러던 어느 날, 복도를 지나는 길에 바닥에서 뒹굴고 있는 먼지 뭉치를 보았습니다. 그 순간 저는 게시판에서 이곳 청소 담당자를 확인했습니다. 이를 확인하고는 ‘이 인간이 청소를 대충대충 하는구먼.’ 하며 그이를 판단하였습니다. 겉모습은 멀쩡하지만 ‘속 빈 강정’이란 꼬리표를 그 형제에게 단 셈이지요. 둘, 성찰 수련원에서는 점심과 잠들기 전, 하루 두 차례 시간을 정해 놓고 15분씩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묵상을 합니다. 이는 수도자의 삶에서도 계속 요청됩니다. 성찰이란 마치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배가 종종 좌표를 확인하는 것과 같은 작업입니다. 고이지 않고 흐르는 물만이 더 낮은 곳을 향해 부단히 흘러 결국 바다에 다다르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의 배’는 파도에 기우뚱거려도 성찰을 통해 목적지로 계속 나아갑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구원’이라는 항구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면 성찰하지 않는 신앙은 어떻게 될까요? 그날 밤 성찰의 시간을 보내며 그 형제를 마음대로 판단한 것이 저의 잘못임을 깨달았습니다. 먼지 뭉치 하나 가지고 그 이를 게으르고 불성실한 사람으로 싸잡아 생각할 까닭은 없었습니다. 그런 판단을 한 제가 매우 실망스러웠습니다. 수련원에서 천사와 진배없이 살고 있고, 남들보다 숭고한 삶을 선택하였노라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그것이 실망에만 머물지 않고 ‘하느님께서 이 뻔뻔하고도 허점 많은 나를 지금껏 너그럽게 봐주셨구나.’ 하는 감사의 마음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어렸을 때, 부친께서는 너그러운 사람이 되라며 제게 당부하시곤 하였습니다. 어린 저는 도대체 그 ‘너그러움’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죠. 하지만 그날의 성찰을 통해서 그것이 우리의 흠결조차도 너그러이 눈감아 주시는 하느님의 한결같은 사랑과 닮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수련원의 매우 단조로운 삶에서도 내가 느끼는 감정은 매우 다채로울 수 있다는 것과 이 감정들을 더욱 섬세하게 헤아릴 수 있다면 수련장 신부님과의 면담이 더는 부담스럽지 않겠다는 용기도 생겼습니다. 이렇듯 성찰은 구원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필요한 기술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알아내는 기술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를 구원으로 초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은 「영신 수련」을 통해서 성찰하는 법을 알려 주셨습니다. 이것을 각 항목에 제목을 달아 풀어서 설명해 보았습니다. 먼저, 15분 정도 조용히 머물 수 있는 곳을 찾습니다. 숨을 고르고 다음의 순서에 따라 기도합니다. 성찰은 달리 말하면, 자신의 삶을 소재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첫째, 하느님 고맙습니다. - 지금 이 순간 성찰하기까지의 시간을 허락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리기. 둘째, 하느님 도와주세요. - ‘성령께서 오시어, 제가 선입견에 매인 채 삶을 바라보지 않고, 주님의 빛 안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하며 성령의 은혜를 구함. 셋째, 하느님 사랑합니다. - 아침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지낸 시간을 기록 영화를 감상하듯 훑어보기. 그 가운데 행복을 느꼈던 장면, 또는 행복하지 못했던 장면에서 잠시 멈춰 바라봄. 넷째, 하느님 죄송합니다. - 행복하지 못했던 장면에서 하느님께 불만을 느꼈다면, 이에 대하여 용서를 구함. 반대로 행복을 느꼈다면 하느님께 감사 기도 드리기. 다섯째, 하느님 함께하소서. - 삶을 바로잡으려는 나의 결심과 더불어 다가올 시간에서도 늘 하느님께서 함께하여 주시기를 청하기. ‘주님의 기도’로 성찰을 끝맺음. 이 가운데 많은 시간을 할애할 곳은 셋째 항목입니다. 넷째 항목에서는 두드러지게 나타난 행위에 따라 용서를 구할 수도, 감사를 드릴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늘, 잠깐이라도 하느님과 대화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반복해서 생긴 습관은 하느님과 친교를 나누는 데 더욱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상대적으로 첫째와 둘째 항목은 차분하게 마음을 정리한 상태에서 짧게 지나갈 수 있습니다. 셋, 실천 성찰을 통해 삶을 더욱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연습이 진행된다면,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바쁜 일상에서 감흥 없이 말하는 일은 사라질 겁니다. 날마다 성찰한 뒤 간단하게라도 메모하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성찰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일기를 쓰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그림일기를 숙제로 내지 않은 뒤로 성찰의 습관을 그만두었는지도 모릅니다. 다시 그 시절을 떠올리며 일기 쓰기를 새롭게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낙서를 좋아하시는 분은 그날의 기분을 글과 함께 재미 삼아 그림으로 그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림 그리기가 어려운 분은 그날의 기분 정도만 간단히 메모할 수 있겠지요. 중요한 점은 글의 양보다 꾸준히 하는 것입니다. ‘성찰하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하고 여기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일기 쓰기가 꼭 필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날마다 모인 기록들을 가지고 지난주와 이번 주, 지난달과 이번 달을 비교해 봄으로써, 내가 어떤 흐름의 삶을 살고 있는지 점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서 어떤 경험이 대체로 나를 지지하고 고양하는 것인지, 반대로 나를 고립시키거나 위협하여 의기소침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전자를 위로와 위안(consolation), 후자를 고독과 실망(desolation)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의 일상은 늘 이 둘 사이를 오갑니다. 그것은 맑기만 하거나, 반대로 비만 내리는 날이 계속되지 않는 자연의 이치와 같습니다. 하지만 한쪽의 분위기가 장기화될 때는 그 원인을 찾아봐야 합니다. 위로가 어떤 원인을 가지고 있으며, 실망이 무엇에서 비롯되는지를 말입니다. 위로의 순간에서는 감사 기도를 잊지 않도록 합니다. 기분 좋은 분위기가 언젠가 끝날지도 모른다고 불안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때를 대비해서 하느님께서 지금 내게 주신 은혜를 깨알같이 기억하는 게 중요합니다. 반대로 고독의 흐름 가운데에 있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위로받을 날이 오리라 믿고, 이 거센 파도가 지나가기를 인내하며 기다립니다. 실망의 시기에는 중요한 결정을 함부로 내리지 않도록 합니다. 대신, 삶을 개선하려는 작은 시도를 해 봅니다. 예컨대 연일 술을 마시고 있다면, 하루는 금주함으로써 그날의 정신과 육체적인 상태를 점검해 보는 것입니다. 위로의 순간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의 사랑에 뿌리내린다면, 고독이 닥쳐올 때 우리에겐 이를 이겨 낼 맷집 좋은 사랑의 힘이 선물로 주어질 것입니다. 건강한 믿음은 이렇게 자라납니다. * 박종인 요한 - 예수회 신부. 청소년 사목을 맡고 있으며, 서강대학교에서 ‘성찰과 성장’ 과목을 담당하고 있다. 「교회상식 속풀이」를 펴냈다. [경향잡지, 2018년 2월호, 박종인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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