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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앙교리: 하느님 나라를 위한 전제조건으로서의 회개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7-05 조회수4,028 추천수0

[공부합시다! 신앙교리] 하느님 나라를 위한 전제조건으로서의 회개

 

 

회개는 하느님 나라의 전제조건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이 말씀처럼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한 마디로 복음을 선포하는 일이었고, 그 선포의 내용은 다가오는 하느님의 나라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는 복음에 대한 신앙의 전제조건이 바로 ‘회개’(悔改)하는 일이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곧 어디까지나 회개한 다음에야 다가 올 수 있는 나라인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회개하고 난 그 다음에야 비로소 우리와 함께 할 수 있게 되는 나라라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의 나라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에서 살고 있음을 느끼지 못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회개하지 않아서’ 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믿고 희망하는 하느님의 나라는 ‘죄를 짓지 않음으로써’ 가는 나라라기보다, ‘죄를 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는 하느님이 주시는 은총으로 ‘회개하고 용서를 받음으로써’ 가는 나라인 것입니다!

 

 

회개는 하느님을 향해 돌아섬

 

신학적으로 ‘회개’(悔改, metanoia)란 ‘하느님과 그분의 뜻에서 벗어나 살던 사람이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께 돌아가는 행위’를 말합니다. ‘죄’(罪)란 하느님의 뜻 혹은 하느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곧 올바른 목표와 방향에서 어긋난 생각과 말과 행위를 말한다면, 회개란 목표를 벗어나 죄를 짓던 잘못된 길을 돌이켜 (바른 목표를 향해) 방향을 바꾸는 것, 즉 하느님께 반역하던 과거에서 돌아서서 하느님을 향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그만 나에게 돌아오너라!” 이 말씀은 인간의 죄를 아파하시는 성경의 하느님이 거듭거듭 하시는 말씀이지요. 나 자신이 죄를 지어 방황하고, 남 때문에 죄를 지어 미움을 쌓고 있다면, 그런 나에게 하느님께서는 “이제 그만 돌아오너라!” 하실 것이고, 그것도 계속해서 그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회개의 삶

 

가톨릭교회교리서는 우리가 살아야 할 회개의 삶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의 회개는 화해의 행위,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 정의의 실천과 타인의 권리 옹호, 형제들에게 잘못을 고백함, 형제적인 충고, 생활에 대한 반성, 양심 성찰, 영적 지도, 고통을 받아들임, 정의를 위해 박해를 견딤 등으로 실현된다.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가장 확실한 회개의 길이다.”(1435항)

 

회개의 삶을 살려면 화해해야하고, 가난한 사람을 돌보아야 하며, 정의를 실천해야 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해야 하며, 제대로 충고할 줄 알아야 하고, 생활을 반성하고 양심을 성찰하며, 모범적으로 영적인 생활을 하고, 고통을 수용하며, 박해를 견뎌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확실한 회개의 길은 ‘날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아니라 ‘나 자신의 십자가를 날마다 지고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곧 ‘계속해서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끊임없는 쇄신을 말하며, 그러할 때 끊임없는 성화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하느님의 은총에 응답해야 하는 것이고, 그러한 응답에 회개의 삶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지요.

 

 

회개하는 삶은 어떤 삶인가?

 

우리가 살아야 하는 회개의 삶은 무엇보다 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의 계명에 충실한 삶’이어야 할 것입니다. 곧 물질의 소유와 자기 만족감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인간다운 사랑의 눈길을 형제자매들에게 돌리는 삶을 말합니다. 공동체와 관계없이 나 혼자 동떨어진 채로 형제자매들의 어려움을 외면하는 삶은 그리스도인다운 삶일 수가 없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형제자매들을 위해 사랑을 실천하는 삶입니다.

 

일찍이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는 2012년 사순시기 담화문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에 대한 사랑과 충실성을 새롭게 증언하도록 요구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모두 사랑과 봉사와 선행에 앞장서야 하는 절실한 요구를 느껴야 합니다.(히브 6,10 참조).” 하셨습니다. 교황님이 강조하신 사랑과 봉사, 그리고 선행은 회개의 길에서 벗어나 나태해지려는 유혹에서 우리 자신을 구해줄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합시다. 이러한 사랑과 봉사, 그리고 선행이 결국 회개의 삶을 살아가고 증거하는 삶 아닐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유혹을 당하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 하느님의 나라에 들기 위하여, 곧 영광의 시간을 위하여 시련을 겪어내는 일 중에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유혹에 대한 극복의 자세일 것입니다. 특히 사순시기에 많은 분들이 여러 가지의 결심을 하게 될 것인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유혹에 대한 대처와 극복의 자세가 아닐까 합니다. 이때 우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우리의 삶은 유혹 가운데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주 예수님께서도 유혹을 받으셨다는 사실은 큰 힘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유혹을 겪고 이겨내셨으니 우리도 유혹을 당함이 당연하고, 또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연한 것이지만, 유혹은 살아있는 사람만이 당하는 것이지요. 유혹이 없는 삶은 이미 삶이 아니니, 유혹 없이 있을 수 있는 자는 ‘망자’(亡子)뿐인 것입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우리 삶에 유혹이 없을 수 없다고 해서 아예 내 삶의 한 쪽 발을 계속 유혹에다 넣고 살아야 할까요?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 우리가 매일매일 바치는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아름다운 기도에도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는 간청이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유혹에 한 발을 넣은 채로 열심히 기도만 한다면 어떠할까요? 그런 우리라면 전능하신 주님께서도 (그런 우리를 유혹에서) 지켜주기가 힘드실 것입니다.

 

내 자신이 우선 유혹에 빠져있는 나의 한 발부터라도 빼내기를 힘써야 합니다! 이를테면 노래방이나 술집을 드나들면서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죄를 짓는다면 먼저 그러한 업소를 찾아 들어가는 일부터 피해야 할 것이고,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문제라면 먼저 술자리 자체를 삼가야 할 것입니다. 1차에서는 괜찮은데 그 다음이 문제라면 2차와 3차 술자리를 피해야 하겠지요.

 

끝으로 레지오단원 여러분들께 유혹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자는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서로가 서로에게 자극을 주어 사랑과 선행을 베풀며 성화의 길을 함께 걸어가자고 하시며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안타깝게도, 성령의 불을 꺼버리고 냉담하려는 유혹, 우리가 받은 탈렌트를 우리 자신과 다른 이들을 위하여 쓰기를 거부하려는 유혹은 늘 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7월호, 조현권 스테파노 신부(대구대교구 사목국장, 대구 Se. 담당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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