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 따라 걷기] 일곱째 계명 : 도둑질을 하지 마라 나눔의 길 그분은 내게 맡기셨습니다 -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마태 21,33-46) 묵상 그분은 내게 희망을 맡기셨습니다 희망을 가꾸어 다른 이에게 나누어주라고 희망이 되어 다른 이에게 나누어지라고 이 희망 나의 것인 양 쉽사리 포기하고 절망 속에 헤맨다면 난 그분의 희망을 빼앗는 것입니다 그분은 내게 기쁨을 맡기셨습니다 기쁨을 가꾸어 다른 이에게 나누어주라고 기쁨이 되어 다른 이에게 나누어지라고 이 기쁨 나의 것인 양 쉽사리 내던지고 슬픔 속에 울부짖는다면 난 그분의 기쁨을 빼앗는 것입니다 그분은 내게 사람을 맡기셨습니다 소중히 보듬고 따뜻한 마음으로 함께 살라고 이 사람 나의 것인 양 내 멋대로 만나고 내 것만을 강요한다면 난 그분의 사람을 빼앗는 것입니다 그분은 내게 교회를 맡기셨습니다 어두움 밝히는 한 줄기 빛이 되도록 작은 몸 바쳐 소중히 가꾸라고 이 교회 나의 것인 양 내 이익을 위해 교회를 이용하고 교회 안에서 내 자리 찾기에 미쳐 있다면 난 그분의 교회를 빼앗는 것입니다 그분은 내게 세상을 맡기셨습니다 태초에 당신께서 보시기에 좋았던 모습 그대로 아름답게 함께 어울려 사는 지상의 천국으로 만들라고 이 세상 나의 것인 양 나를 위해 착취하고 내 욕망으로 더럽힌다면 난 그분의 세상을 빼앗는 것입니다 그분은 내게 당신을 맡기셨습니다 내 안에 당신 살듯 당신 안에 나 살아 당신을 드러내고 당신 나라 넓히라고 그분 뜻 저버리고 내 뜻 드러내면 그분과 나는 이제 아무 관계가 없고 그분의 자리를 빼앗고 그분을 죽이는 것입니다 나의 것, 너의 것, 우리의 것 나의 것이 있습니다. 너의 것이 있습니다. 정당한 수단과 방법, 값진 피땀과 노고로 얻은 나의 것과 너의 것은 서로에게 존중받아야만 합니다. 하지만 더 가지려는 욕구에 집착한 이들은 때로 다른 이의 것을 부당하게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삼습니다. 이것이 바로 도둑질입니다. 따라서 도둑질은 “마땅히 하느님께 드릴 것을 드리고 이웃에게 주어야 할 것을 주려는 지속적이고 확고한 의지”(가톨릭교회 교리서, 1807항)인 정의를 거스르는 불의입니다. 일곱째 계명은 도둑질을 금함으로써 정의를 세우라고 초대합니다.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모든 이가 쉽게 동의할 수 있는 자명한 계명입니다. 그런데 나의 것에 대해서 절대적 권리를 주장할 수 있습니까? 이 물음에 교회는 답합니다. ‘나’의 것과 ‘너’의 것을 구분하기 전에 ‘우리’의 것이 먼저라고 말입니다. “비록 공동선의 증진을 위해 사유 재산을 존중하고 사유 재산권과 그 재산권의 행사를 존중해야 하더라도, 재물의 보편적 목적이 우선합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403항). “하느님께서는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모든 사람과 모든 민족이 사용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따라서 창조된 재화는 사랑을 동반하는 정의에 따라 공정하게 모든 사람에게 풍부히 돌아가야 합니다. … 재화를 사용하는 사람은 합법적으로 소유하는 외적 사물을 자기 사유물만이 아니라 공유물로도 여겨야 하며, 그러한 의식에서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익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사목 헌장, 69항). 나누지 않음은 도둑질이에요 ‘나의 것’이기 전에 ‘우리의 것’이기에, 우리는 비록 정당한 방법으로 취득한 것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소유물에 대해서 절대적 권리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우리 노고의 결실 이전에 함께 나누라고 주신 하느님의 귀한 선물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하고 당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명하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을 거슬러, 자신의 소유물을 오직 자신을 위해서만 움켜쥔다면, 이는 또 다른 의미의 도둑질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이들과 나누어 갖지 않는 것은 그들의 것을 훔치는 것이며, 그들의 생명을 빼앗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재물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의 것입니다.” 또한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은 말합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필수적인 물건들을 줄 때,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의 것을 선물로 베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것을 돌려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비의 행위를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정의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감추어진 그러나 최악의 도둑질 흔히 도둑질이라고 하면 다른 사람의 ‘소유물’을 부당하게 취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잘 드러나지 않지만 최악의 도둑질은 하느님의 모습으로서 동등한 존엄성을 지닌 ‘다른 사람’을 부당하게 자신의 것으로 삼는 것, 곧 “인간 도둑질”(김진호 외 9인, 「가장 많이 알고 있음에도 가장 숙고되지 못한 ‘십계’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 글항아리, 2018, 164쪽)입니다. 성서학자 림벡에 따르면 “제7계명은 특히 타인의 희생으로 이득을 취하여 부자가 되려는 사람들을 겨냥하고 있으며 바로 그러한 자들 앞에 내놓는 계명, 그들에게 대항하는 계명”(안젤름 그륀, 「인생을 떠받치는 열 개의 기둥」, 송안정 옮김, 21세기북스, 2010, 133쪽 재인용)입니다. 따라서 이 계명의 목적은 배가 고파 빵을 훔치는 가난한 이들을 단죄하기보다 가난한 이들을 부자의 착취에서 보호하는 데 있습니다(조안 키티스터. 「십계명 마음의 법」, 성찬성 옮김, 성바오로, 2008, 128쪽 참조). 더 나아가 개신교 신학자 정용택은 ‘도둑질하다’로 번역하는 히브리어 ‘가나브’의 다른 용례에 착안하여, 일곱째 계명을 “납치하여 노예로 만들지 마라.” 또는 “유인하여 노예로 만들지 마라.”라고 해석합니다(김진호 외 9인, 앞의 책, 156-162쪽 참조). 따라서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고 다른 이들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도구화하는 일체의 행위, 곧 고문, 불법 감금, 인신매매, 노동 착취, 불법 해고, 무자비한 철거, 인종 차별, 갑질 문화 등은 일곱째 계명을 범하는 심각한 죄악입니다. 이러한 죄악들은 단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죄악일 뿐만 아니라,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영예를 극도로 모욕하는 것(사목 헌장, 27항 참조)이고, 하느님의 자리마저 빼앗는 도둑질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시 나눔의 길을 걸어요 다른 사람의 소유물을 부당하게 빼앗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의 생존기반을 박탈함으로써 다른 사람을 소유하는 행위 모두 일곱째 계명은 금합니다. 하지만 일곱째 계명은 단순히 ‘도둑질을 하지 마라.’는 소극적 의미만이 아니라, ‘나의 소유물을 나누고, 더 나아가 나 자신을 나눔으로써 더불어 살라.’는 적극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벗님들, 더 가지려는 유혹에서 벗어나 나눔의 길을 걸어요, 성체와 성혈로 당신을 나누시고, 십자가 죽음으로 생명마저 내어놓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예수님처럼. * 상지종 베르나르도 - 의정부교구 신부. 교구 제8지구장 겸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8년 8월호, 상지종 베르나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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