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교리] ‘예수’ - 우리 구원에 필요한 단 하나의 이름 하느님의 외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시고, 이 세상에 오시어 행하시고 말씀하시고 고통받으신 모든 것은 ‘원죄’를 저지름으로써 타락한 인간의 원초적 소명, 즉 ‘원초적 거룩함과 의로움’을 회복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잃어버린 모든 것을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순종, 당신의 전 생애를 통한 순종, 그리고 결정적으로 십자가 위에서의 완전한 순종으로 되찾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아담으로 잃은 모든 것을 우리에게 되찾아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예수님의 이름은 구원을 바라는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유일한 이름이 되었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성모님에게 나타나 그분의 탄생을 예고한 천사 가브리엘이 알려준 이름입니다(루카 1,31 참조). 그러니까 ‘예수’라는 이름은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에 오신 당신 외아드님에게 아버지 하느님께서 주신 이름이기도 합니다. ‘예수’는 히브리 말로 “하느님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이름 안에는 그분의 신원과 사명이 동시에 드러납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430항 참조). 그분은 ‘하느님’이시고, 그분의 사명은 ‘구원’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이란 곧 ‘죄의 용서’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한 분 외에 아무도 죄를 용서할 수 없기”(마르 2, 7 참조)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라는 것은 그분께서 우리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분이시요 곧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사람이 되신 당신의 영원한 아들 예수님을 통해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마태 1,21 참조). 따라서 예수라는 이름은 “바로 하느님의 이름이 당신 아들의 인격 안에 현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성자께서는 인간을 죄로부터 보편적으로 그리고 결정적으로 구해 내시기 위해 인간이 되셨다. 예수는 구원을 가져다 줄 수 있는 하느님의 이름이며, 이제는 강생하여 모든 사람들과 하나가 되시어, 모든 사람은 이 이름을 부를 수 있게 되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432항).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이 이름밖에 없습니다”(사도 4,12). 악령들도 그분의 이름을 두려워하고(사도 19,13-16 참조),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분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였습니다(마르 16,17 참조).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나 다 들어주시기 때문입니다(요한 15,16 참조). ‘예수 그리스도!’ 우리는 나자렛 사람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우리의 구세주, 그리스도라고 고백합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영원한 아드님이시고,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셨으며, 죄의 용서를 통해 아담으로 인해 잃은 모든 것을 우리에게 되찾아주셨음을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라는 이름은 우리의 신앙과 기도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전례의 기도를 비롯하여 우리의 모든 기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라는 말로 끝맺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단 하나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성인과 순교자들을 비롯한 신앙인들은 오직 ‘예수’라는 이름을 부르며 숨을 거둡니다. 이 이름만이 나를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또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주 예수 그리스도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2018년 10월 14일 연중 제28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3면, 이영우 베네딕도 신부(전주가톨릭신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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