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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프란치스코 교황의 십계명 교리: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11-18 조회수4,070 추천수1

십계명에 관한 교리 :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


“뒷담화는 (사람을) 죽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진실과 사랑으로 하느님을 증거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십계명의 여덟 번째 계명인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에 대해 설명하면서 십계명에 대한 교리 교육을 이어나갔다. 우리는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불안정한/위태로운(in bilico)” 삶을 살고 있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사명은 우리의 모든 행동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아버지이심을 드러나게 내어 맡기는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교리 교육에서는 십계명의 여덟 번째 말씀인 “너의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에 대해 살펴 보기로 하겠습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이 계명이 “타인과 맺는 관계에서 진실을 왜곡하는 것을 금한다”(2464 항)고 설명합니다. 거짓된 커뮤니케이션으로 살아가는 것은 서로 간의 관계들을 방해하고, 사랑을 방해하기 때문에 심각한 것입니다. 거짓이 있는 곳에는 사랑이 없으며, 사랑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람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에 관해 말할 때, 우리는 말 뿐만이 아니라 몸짓들과 태도들, 심지어는 침묵들과 부재들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모든 것과 자신이 행하는 것을 통해 말합니다. 우리 모두는 항상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살아 갑니다. 우리는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불안정한/위태로운(in bilico)”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실을 말하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정직하다는 뜻인가요? 아니면 정확하다는 뜻인가요? 실제로, 이러한 뜻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정직하지만 잘못을 저지를 수 있고, 세부적으로는 정확할 수 있지만 전체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나는 내가 느끼는 것을 말했을 뿐인데!”라고 말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정당화합니다. 네, 하지만 여러분은 자신의 관점을 절대화한 것일 수 있습니다. 또는 “나는 진실만을 말했는데!”라고 말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개인적이거나 비밀스러운 사실을 공개한 것일 수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뒷담화가 부적절함이나 신중함의 부재로 인해 친교를 파괴하는지요! 더 확실히 말하자면 뒷담화는 (사람을) 죽입니다. 이에 대해 야고보 사도가 자신의 서간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뒷담화하는 남자나 여자는 (사람을) 죽이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혀가 칼처럼 (사람을) 죽이기 때문에 그들은 다른 이들을 죽이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조심하십시오! 뒷담화하는 남자나 여자는 자신들의 혀를 사용하여 폭탄을 던지고 유유히 사라지지만, 그들이 던진 폭탄은 다른 이의 명성을 파괴하기 때문에 그들은 테러범입니다. 뒷담화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렇다면 진실(진리)이란 무엇입니까? 이 질문은 빌라도가 자신 앞에 서서 여덟 번째 계명을 실현하고 계시는 예수님에게 했던 질문입니다(요한 18,38 참조). 사실, “너의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는 말은 법정 용어에 속하는 말입니다. 복음서들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으심과 부활 사화로 절정에 이릅니다. 이 사화는 재판, 형 집행의 실행, 그리고 전례 없는 결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빌라도가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요한 18,37). 이 “증언(testimonianza)”을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으심을 통해서 주십니다. 마르코 복음 사가는 “예수님을 마주 보고 서 있던 백인대장이 그분께서 그렇게 숨을 거두시는 것을 보고,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하고 말하였다”(15,39)고 전합니다. 네, 일관성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당신의 죽음을 통해, 하느님 아버지와 당신의 자비롭고 충실한 사랑을 나타내셨기 때문에 일관성이 있으셨습니다.

 

진리는 예수님의 인격 안에서(요한 14,6 참조), 하느님 아버지와의 관계의 열매인 그분의 삶과 죽음의 모습 안에서, 그 완전한 실현을 찾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진리의 성령이시며 우리 마음 안에 ‘하느님께서는 우리 아버지’라고 증언하시는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심으로써(로마 8,16 참조), 하느님 자녀로서의 이 존재 사실을 우리에게도 선물하십니다.

 

인간은 자신의 모든 행동 안에서 이 진리를 확증하거나 부인합니다. 작은 일상의 상황들에서부터 가장 중요한 선택들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합니다. 부모님과 조부모님이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가르치시는 것처럼 항상 같은 논리입니다.

 

우리 자신들에게 물어봅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말과 행동과 선택은 어떤 진리를 증언하고 있는가? 각자 스스로 자문해 봅시다. 나는 진리의 증인인가, 아니면 나는 진짜인 것처럼 변장한 거짓말쟁이인가? 각자 자문해 보십시오. 그리스도인들은 특별한 남자나 특별한 여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선하시고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시고 우리 마음 안에 형제들을 향한 사랑을 넣어 주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녀들입니다. 이 진리는 단순히 말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와 삶의 방식으로 표현하며 각각의 모든 행동 안에서 볼 수 있습니다(야고 2,18 참조). 이렇게 하는 남자가 진짜 남자이며, 이렇게 하는 여자가 진짜 여자임을 우리는 확연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하지 않는데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진실되게 행동하기 때문에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진실을 말하고, 진실되게 행동합니다. 이는 우리를 위한 좋은 삶의 방식입니다.

 

진리는 아버지로서의 얼굴을 보여 주신 하느님의 놀라운 계시이며, 그분의 무한한 사랑입니다. 이 진리는 인간의 이성과 부합하지만 이성을 끝없이 넘어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지상에 내려온 선물이며,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육화 되었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진리에 속한 사람들에 의해 볼 수 있게 되었으며, 그들에 의해 그 스스로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는 것은, 결코 단 한 번도 자신에게 거짓되지 않았고,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서, 하느님의 자녀로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행동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아버지이시며, 우리는 그분을 신뢰할 수 있다는 위대한 진리가 드러나도록 하면서, 하느님의 자녀로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을 신뢰하는 것이 바로 위대한 진리입니다. 아버지이시며 나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신뢰로부터 나의 진리가 나오며, 거짓된 존재가 아닌 진실된 존재가 나옵니다.

 

[바티칸 뉴스, 2018년 11월 14일, 번역 김호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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