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 따라 걷기] 마무리하며
길 위에서 길과 함께 길을 따라 길 “나는 길이다”(요한 14,6 참조). 길이 있습니다 길이 부릅니다 그저 걸으라 손짓합니다 길에게 묻습니다 어디로 가는 길이냐고 왜 이 길을 가야 하느냐고 길은 침묵으로 답합니다 길을 걷는 이만이 길을 알 수 있다는 듯이 길 위에 첫걸음 내딛습니다 새로운 만남의 설렘과 낯섦과 아직 모름의 두려움으로 길 위에 한 걸음 또 한 걸음 길이 건네는 기쁨과 슬픔 길에서 만난 희망과 절망 길에게 묻습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뒤로 물러서야 하는지 그대로 주저앉아야 하는지 길은 여전히 말이 없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다만 나를 떠받치고 있을 뿐 내 앞에 아득히 열려 있을 뿐 길을 걷습니다 길이 있기에 걷습니다 나를 부르는 길이 있기에 한 걸음 두 걸음 쉼 없이 따라 걸음으로써 오직 그럼으로써 길을 느끼고 길과 하나 됩니다 나를 부르는 길이 곧 내가 있어야 할 곳이요 내가 가야 할 곳입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벗님들, ‘사랑의 길’이라는 ‘하나의 길’을 이루는 ‘열 개의 길’을 따라 걸었던 가슴 벅찬 시간을 뒤로하고, 어느덧 여정의 끝자락에 서 있습니다. 또다시 힘찬 한 걸음을 준비하면서 잠시 숨 고르기를 합니다. 걷기와 숨 고르기, 그리고 또 걷기. 언젠가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주님의 품으로 다시 돌아가 영원하고 완전한 평화를 누릴 때까지, 더디더라도 쉼 없이 이어질 아름다운 여정입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벗님들, 잠시 멈춰서 숨 고르기 하는 이 자리에서 올 한 해 동안 우리가 함께 걸어온 길들을 돌아보고 싶습니다.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여라.” 우리는 스스로 계시기에 자유이신 하느님만을 섬김으로써, 우리를 옥죄는 세상의 온갖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의 길’을 걷고자 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우리는 재물, 권력 등 온갖 우상에 맞서 ‘믿음의 길’을 걷고자 하였습니다.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우리는 일하고 쉬시는 하느님을 닮아 ‘일’과 ‘쉼’의 조화 속에 하느님과 이웃들을 만남으로써 ‘살림의 길’을 걷고자 하였습니다. “부모에게 효도하여라.” 우리는 가정뿐만 아니라 우리가 속한 크고 작은 공동체 안에서 나와 너 우리 모두를 살리는 ‘섬김의 길’을 걷고자 하였습니다. “사람을 죽이지 마라.” 우리는 마음 속 티끌만 한 죽임의 유혹조차 말끔히 씻어 내고 ‘상생의 길’을 걷고자 하였습니다. “간음하지 마라.” 우리는 우리 자신과 다른 이의 성(性)을 쾌락의 도구로 삼지 않고 온전히 서로를 품에 안는 ‘사랑의 길’을 걷고자 하였습니다. “도둑질을 하지 마라.” 우리는 더 가지려는 유혹에서 벗어나 ‘나눔의 길’을 걷고자 하였습니다.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 우리는 제가 살려고 다른 이를 죽이는 거짓이 아니라 모두를 살리는 ‘진실의 길’을 걷고자 하였습니다.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마라.” 우리는 크고 작은 각자의 권력으로 끝없이 다른 이를 소유하려는 세상의 유혹을 거슬러 모든 사람이 참으로 존엄한 사람임을 선포하는 ‘존중의 길’을 걷고자 하였습니다.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마라.”우리는 ‘나의 것’이라는 껍데기를 벗고, ‘너 닮음’이라는 유혹에 맞서 다시 ‘나다움의 길’을 걷고자 했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벗님들, 올 한 해 열 개의 길을 따라 걸었던 여정은 어떠셨는지요? 예수님의 벗으로서 예수님과 함께 걷는 뿌듯함도 있었겠지만, 자신의 부족함에 주저앉기도 했을 것입니다. 한 걸음 힘차게 내딛으려는 뜨거운 열정뿐만 아니라, ‘이런다고 내가 뭐 달라질까, 이런다고 세상이 달라질까?’ 그저 그 자리에 안주하고픈 뜨뜻미지근함도 숨길 수는 없겠지요.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선 우리에게, 더디더라도 애써 한 걸음 또 한 걸음 내디딘 우리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면 좋겠습니다. 우리를 이 자리까지 이끌어 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림은 물론이고요. 사랑하는 믿음의 벗님들, 우리가 한 해 동안 묵상하며 걸어온 열 개의 길은 ‘사랑이신 하느님’(1요한 4,8 참조)께서 몸소 마련해 주신 단 하나의 사랑의 길입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한 우리지만, 나날이 이 길을 정성스레 걷다 보면 언젠가 하느님처럼 사랑하게 되리라는 희망을 품어 봅니다. 이제 벗님들과 함께했던 소중한 여정을 마무리할 때입니다. 그동안 함께했던 벗님들에게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는 헤어짐의 인사를 대신하여, 십자가 수난 전에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약속하시는 예수님(요한 14,15-21)을 묵상하면서, 온갖 어려움에도 사랑의 길을 걸어야 할 우리에 대한 예수님의 믿음과 사랑과 희망이 가슴 아리게 느껴지던 몇 해 전에 썼던 묵상 글을 나누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벗님들, 그동안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랑의 길 위에서, 사랑의 길과 함께, 사랑의 길을 따라 걸으며 우리 다시 만나요. 사랑하고 또 사랑하십시오 사랑하는 벗들이여, 내가 벗들과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입니다. 벗들이 나를 찾을 터인데, 내가 가는 곳에 벗들은 올 수 없습니다. 내가 가는 곳에 벗들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따라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그러니 지금 눈물 흘리지 마십시오. 다만 내가 유언으로 남기는 새 계명을 지키십시오. 서로 사랑하십시오. 내가 벗들을 사랑한 것처럼 벗들도 서로 사랑하십시오. 벗들을 사랑하기에 벗들을 떠나야만 하고, 벗들을 떠나는 것이 벗들을 사랑하는 것이나, 떠나야만 하는 나를 야속하다 마십시오. 떠나야만 하는 나를 붙잡지 마십시오. 나를 기꺼이 보내 주십시오. 나를 더욱 사랑해 주십시오. 벗들이 나를 사랑한다면 내 계명을 지키십시오. 벗들이 나를 사랑한다면 서로 사랑하십시오. 서로 사랑함으로써 나의 벗이라는 것을 드러내십시오. 나의 벗임을 드러냄으로써 나를 드러내십시오. 나를 사랑했습니다. 나는 사랑합니다. 나는 사랑할 것입니다. 나는 사랑입니다. 세상이 나를 죽이려 합니다. 세상은 미움이기에 나를 죽이려 합니다. 미움인 세상이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합니다. 나는 사랑이기에 기꺼이 죽습니다. 세상은 죽임으로써 스스로 미움임을 드러내고 나는 죽임당함으로써 스스로 사랑임을 드러냅니다. 그러기에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슬퍼하지 않습니다. 나의 죽음으로 사랑이 죽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의 단 하나의 일은 오직 사랑하는 것, 그 일을 하는 벗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랑이듯이 나의 벗들은 사랑이어야 합니다. 사랑인 나를 죽인 미움인 세상이 사랑인 벗들 또한 죽이려 할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계속 사랑하십시오. 움츠러들지 마십시오, 더욱 사랑하십시오. 사랑인 내가 떠나도 벗들은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내가 떠난 빈자리에 사랑의 성령께서 함께하시리니. 미움인 세상은 사랑이신 성령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겠지만 사랑인 나를 닮은 사랑인 벗들은 사랑 안에서 그분을 곱게 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벗들이여, 나는 떠나고 벗들은 남습니다. 사랑하기에 나는 떠나고 사랑하기에 벗들은 남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벗들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벗들은 내 안에 있습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사랑 안에서 오직 사랑 안에서 벗들과 나는 하나입니다. 벗들과 내 아버지는 하나입니다. 그러니 사랑하십시오. 그러니 두려움 없이 사랑하십시오. 그러니 주저함 없이 사랑하십시오. 그러니 사랑하고 또 사랑하십시오. * 상지종 베르나르도 - 의정부교구 신부. 교구 제8지구장 겸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8년 12월호, 상지종 베르나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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