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곤소곤 교리] 기도 기도의 효과가 의문이에요 신앙생활을 잘하려면 열심히 기도해야 한다고 하는데 기도의 효과에 대해서 의문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저는 ‘기도의 효과’를 맛보지 못한 이들에게 인도의 빈민가에서 평생을 헌신했던 마더 데레사 성녀의 이야기를 곧잘 들려드리는데요. 그분의 삶이야말로 기도의 효과가 얼마나 큰 힘을 내는지를 뚜렷이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성녀는 길에서 비참하게 죽어 가는 사람들이 품위 있는 임종을 맞을 수 있도록 헌신했을 때, 버려진 고아를 돌보려고 거리낌 없이 맨손으로 나섰을 때, 그 모든 일이 가능했던 것은 ‘기도’의 힘이었다고 서슴없이 고백합니다. 연약한 자신이 작은 것을 충실히 사랑하고자 바친 기도가 불가능한 모든 것을 가능하게 바꾸는 신비를 일으켰다고 증언해 줍니다. 아, 어쩌면 마더 데레사 성녀의 이야기는 잘 알고 계실 것 같군요. 그리고 그런 기도는 마더 데레사 성녀처럼 믿음이 훌륭하고 탁월한 분들만 가능한 것으로 여기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인간은 기도하는 존재입니다. 기도가 인간 누구에게나 간직된 본성이라는 사실은 유혹이든 시험이든 자신의 온 존재를 흔들어 놓는 문제를 마주할 때, 특히 힘들고 절박한 순간에 어느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누군가를 찾고 간청하게 된다는 사실에서 확연히 드러나는데요. 그것이 하느님일 수도 있고 부처님이나 공자님, 부모님, 조상님일 수도 있겠지요.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기도 이렇듯 많은 경우에 기도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시작하게 됩니다. ‘이젠 끝이야!’라고 절망하게 될 때,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신기할 정도로 많은 이에게 기도를 통해서 절망이 희망으로 바뀐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도란 우리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그 무엇을 해결해 주기를 청하는 행위라고 설명해도 무방할 텐데요. 더욱이 주님에 대한 기도의 은총은 특별한 조건을 갖춘 사람에게만 열리는 것이 아니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그럼에도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사랑이 기도를 통해서 자라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기도의 응답을 받은 뒤에는 간절했던 마음을 잊고 더 이상 기도하지 않을 수 있는 부작용에 특히 유의해야 합니다. 기도는 상황이 달라졌다고 하여 중단해 버리면 결코 성장하지 못하고 이내 시들어 버리는 ‘생물’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간절한 바람이 있을 때에 바치는 청원을 넘어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려는 성숙한 기도로 키우고 가꾸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만일 우리가 ‘더 이상 기도해서 얻어지는 것이 없다.’며 기도를 중단한다면, 그것은 자기중심적으로 기도한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성숙하게 기도드리지 못할 때, 자칫 온갖 환상이 거짓된 모습으로 영혼을 갉아먹어 마음을 공허하게 만들 수 있고, 끝내는 기도할 마음을 미루게 만들며 미사에 소홀하게 하여 삶의 활기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이 과정은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은밀하기에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얻는 무한한 은총과 혜택을 빼앗기는 결과를 낳을 수 있으니까요. 기도로써 내적 세계를 발견하는 것은 영적 여정의 일부입니다. 그러기에 매우 힘들고 괴로운 투쟁으로 이끌어 가기도 합니다. 그래도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게 하지”(1코린 1,13)않으시는 분이니까요. 힘든 과정을 이겨낼 수 있도록 힘을 채워 주시니까요. 기도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 갓 제대한 친구가 들려준 얘기를 전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어느 운전병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부대 안에서 후진을 하다가 정원의 나무를 부러뜨렸는데 하필 사단장이 기념식수를 한 나무였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다음 날 사단장의 부대 방문이 예고되었고 운전병은 사색이 되었지요. 사단장의 나무를 부러뜨렸으니, 곧바로 영창행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너무너무 겁이 나고 두려워서 밤을 새워 기도했답니다. 제발 부러진 나무를 다시 붙여 달라고, 기적을 보여 달라고 말이지요. 결과가 어떠했을까요? 열심히 기도했으니 부러진 나무가 다시 붙었을까요? 그런 기적은 가당찮으니 결국 영창 신세를 져야 했을까요? 묘하게도 그날 밤에 드센 폭풍우가 몰아치더랍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주변의 나무들도 모두 부러지고 쓰러져 있었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죠? 그렇게만 된다면 기도하지 않을 이유가 없겠지요? 물론 우리의 생각과 하느님의 방법은 다를 때가 많습니다. 내 기도에 어떻게 응답하실지는 하느님께서 결정하십니다. 하지만 마침내 기쁨으로 채워 주신다는 것,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좋은 방법으로 응답해 주신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내내 행복한 이유입니다. 단, 모든 기도는 자판기가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내가 이렇게 바라고 기도했으니 내가 바라는 대로 해 주실 것이라는 생각은 주님께 통하지 않는다는 점도 기억하시고요. 기도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서 결과는 그분께 맡기는 온전한 의탁입니다. 당장 내 뜻대로가 아닐지라도 실망하지 마세요. 하느님께서는 결단코 우리가 불행해지는 것을 바라시지 않는 우리 아버지이시니까요. 주님께 미주알고주알 전부를 이야기하며 더 친한 관계로 돋움하시길 응원합니다. * 장재봉 스테파노 – 부산교구 선교사목국장으로 지낸 4년을 주님의 ‘개인 지도’ 기간이었다고 믿는다. 그 배움을 본당 사목에 실천하고자 ‘하느님의 눈’, ‘성모님의 눈’, ‘신자들의 눈’, ‘가난한 이웃의 눈’으로 월평본당을 꾸리려 애쓰는 주임 신부다. [경향잡지, 2019년 3월호, 장재봉 스테파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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