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사회교리와 오늘날의 한국 사회 1. 사회교리와 그 맥락 사회교리는 어느 맥락에서나 통하는 만병통치약이 아닙니다. 사회교리 자체가 현실의 도전에 응답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사회적, 시대적 배경의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예컨대 1891년, 최초의 사회교리 회칙 “새로운 사태”(레오 13세)가 나오던 무렵에는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당한 노동자들의 자리를 하느님 역사 안에서 찾는 것이 시급한 문제였습니다. 1941년 “지상의 평화”(비오 12세)는 세계대전의 참화 속에서 정당하고 평화로운 국제 정치 질서를 촉구하는 내용이었지요. 1981년의 “노동하는 인간”(요한 바오로 2세)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 대결 가운데 경제생활이 갖는 의미와 세계화 현상을 진단하는 것이고, 2009년 이후에는 “진리 안의 사랑”, “복음의 기쁨”, “찬미 받으소서” 같은 회칙들이 세계화와 생태 재앙에 직면한 인류와 교회의 사명을 다룹니다. 교회는 이런 발전 과정을 거치면서 공론의 마당에 참여해 왔습니다. 2. 한국 사회의 발전 과정 그런데 한국 사회는 일반적인 사회 발전과정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역사를 거쳐 왔습니다. 한국 사회의 산업화 과정은 국가가 사회 전체를 동원하고 통제하던 시대를 거쳐서 재벌과 정치세력의 유착을 통해 급격히 성장했고, 급진적 자본시장 자유화와 산업기반 세계화를 통해서 덩치를 키우는 과정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노동자, 농민, 중소기업, 여성 같은 약자에 대한 배려는 매우 부족했고, 혼인/출산/노동 같은 사회재생산 과정은 오로지 가족의 책임으로 떠넘겨졌습니다. 세상은 개인이 쫓아가기 벅찰 만큼 줄달음치는데, 국가와 산업자본은 허덕이는 개인과 가족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비정하고 기형적인 사회가 된 것이지요. 그 와중에 사람들은 공론의 장을 만들고 공공의식을 높이기보다는 혈연이나 지연, 학연 같은 연줄 맺기에 몰두하다가 최근에는 그마저 어렵다는 점을 깨닫게 된 것 같습니다. 출산을 거부하고, 비혼, 별거가 확산되며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을 보이는 것은 여태 한국 사회가 기대온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왜 희생과 양보는 늘 약자만의 것인가?”를 묻는 사람들에게 낡은 이념 대결의 굴레를 씌우거나 “꼬우면 네가 출세하지!” 식으로 대꾸하는 비정한 사회에 더 이상 미련이 없다는 의사표현일 것입니다. 다음 달에는 이런 상황을 좀 더 세밀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문제를 알아야 답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2019년 4월 7일 사순 제5주일 대구주보 3면, 박용욱 미카엘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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