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자유주의와 연대성의 원리 (1) 국가는 민간이 하기 힘든 국방과 치안, 또 도로와 항만 등의 공공재를 공급합니다. 경제를 안정시키고 성장기반을 마련하는 것도 국가의 일이고 소득분배를 개선하는 일이나 국민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교육과 의료 같은 가치재를 공급하는 것도 국가의 일이지요. 이 모든 일은 세금을 걷어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세금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면서도 막상 내는 입장에서는 몹시 아깝게 여깁니다. 특히 세금을 복지에 투입하겠다면 찬반이 갈리는데, 무상 급식이나 공공 의료 같은 문제를 두고 치열한 사회적 논쟁이 벌어졌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1. 세금은 강제노동이다.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정치철학자 노직(Robert Nozick)은 세금을 복지에 쓰는 것이 국가가 강제노동을 시키는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합니다. 가령 수입의 20%를 세금으로 걷는다는 것은 열 시간을 일한 결과 가운데 두 시간 분을 국가가 떼어간다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국가가 강제노동을 시키는 것이 잘못된 일이라면 세금을 떼는 것도 잘못된 일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자유주의자들은 세금은 적을수록 좋고,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도 최소한이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나라 정당 중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당명에 넣었던 정당들은 대개 이런 입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한다는 분들은 복지에 재정을 투입하는데 부정적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복지에 돈을 쓰는 것이 잘못이라던 분들이 경영 잘못으로 흔들리는 기업에는 공적 자금을 투입하라고 하고, 땅값/집값을 올릴만한 사업에는 재정을 투입하라고 요구합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돈을 쓰는 것은 잘못된 일이지만, 가진 사람이 더 큰돈을 벌도록 보태주는 것은 바람직하다는 것이지요. 더욱 역설적인 것은, 복지혜택의 수혜자들이 유독 자유주의 정당을 선호하는 것입니다. 2. 세금이 없으면 소득도 없다. 자유주의자의 대척점에는 법철학자 머피(Liam Murphy)와 나겔(Thomas Nagel) 같은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애초에 세금으로 다져놓은 기반이 없으면 소득 자체가 없을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예컨대 세금으로 도로를 만들고 상하수도와 전기, 통신 시설을 하지 않았으면 제아무리 좋은 발상과 뛰어난 기술이 있다 하더라도 무용지물입니다. 세금으로 의무교육을 하지 않았다면 계약서 하나 못 읽는 사람들이 넘쳐나서 상거래 자체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세금을 소득과 소유를 가능하게 하는 기반으로 봅니다. 공정한 시장 경쟁과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보는 것은 논리적 귀결입니다. 오늘날 경제 정책과 정치를 읽고 해석하는 일은 대체로 이 두 가지 큰 흐름 중에서 하나의 관점을 택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하겠습니다. 그러면 사회교리는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다음 회에 살펴보겠습니다. [2019년 5월 26일 부활 제6주일(청소년 주일) 대구주보 3면, 박용욱 미카엘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사회교리] 자유주의와 연대성의 원리 (2) 지난 회에 세금은 줄이고 경제는 가급적 시장의 질서에 맡기라는 자유주의 철학자 노직과 그 대척점에 있는 머피와 나겔의 논리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경제 정책과 정치를 읽고 해석하는 일은 대체로 이 두 가지 큰 흐름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는 어느 쪽이든 간에 말씀드린 철학을 바탕으로 해서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선택하며 대화하는 일이 드뭅니다. 대개의 경우 정치와 경제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그것이 내게 직접적으로 얼마의 이익을 주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는 게 현실적이겠지요. 예컨대 시장경제를 옹호하고 기업과 자본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라는 이들도 국가의 재정으로 대기업에 보조금을 주거나 부동산 가격을 올리기 위해 토건 사업을 벌이는 일에는 적극 찬성합니다. 복지에 세금을 투입하거나 사회적 약자에게 세금을 투입하면 퍼주기니 포퓰리즘이니 하며 비난하는 이들도 막상 자기가 받을 연금이나 복지혜택을 줄이는 일에는 쌍수를 들어 반대합니다. 세금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이미 수년 전에 종합부동산세 도입과 관련해서 사회적 논란이 컸습니다만, 소수의 초고가 주택 보유자와 다주택자들에게 부과되는 세금에 대해서 여러 언론들이 사회 전반에 걸쳐 부정적인 여론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내 땅 내 집값 폭등할 때는 거저 앉아서 돈을 버는 게 당연하지만 그 폭리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세금을 떼자면 견디질 못하는 이기심이 사회에 팽배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듯 국가라든가 경제라든가 민족의 미래 같은 거창한 수사들 이면에 내 손에 떨어지는 돈이 얼마인가를 따지는 이기적인 욕망이 있더라는 씁쓸한 경험을 안 해보신 분이 있을까요. 그런 면에서 사회교리는 연대성의 원리를 통해서 정치와 경제의 영역에도 인격과 윤리의 색이 입혀져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연대성의 원리는 쉽게 말해서 인간은 누구나 서로에게 빚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도 홀로 살 수 없고 1등이 존재하는 것은 2등, 3등이 받쳐 주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며, 남이야 어찌 되건 내 것만 챙기면 된다는 이기적인 태도로는 인간성 자체를 잃어버릴 뿐 아니라 결국 공멸에 이르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빚지고 있는 만큼 서로에게 책임이 있으며, 내가 가진 것에 대해서 절대적인 소유권을 주장하기보다는 자기가 가진 바를 나눌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연대성의 원리입니다. 우리 사회는 이런 연대성의 가치를 오랫동안 잊었습니다. 그리하여 빈부의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이른바 ‘갑질 문화’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는 오늘을 맞게 되었습니다. 경제논리라는 분칠로 가리기에는 너무 커져 버린 이기심을 연대성의 원리로 제어하지 않으면 더 살벌한 세상, 더 무서운 미래 말고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을까요. [2019년 6월 23일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대구주보 3면, 박용욱 미카엘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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