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주일 특집] 세상과 소통한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들
진리 수호하며 세상의 평화 이끈 ‘하느님 종들의 종’
베드로 사도부터 프란치스코 교황까지 2000년 교회사에서 266명의 교황이 탄생했다. 고대 교황들은 가톨릭 전통 신앙을 고수하고 속권으로부터 교회의 권위를 지키는 데 헌신했다. 중세 교황들은 이슬람의 서구 진출에 맞서 십자군 전쟁과 스페인 국토 회복 운동에 힘쓰고, 이단에 맞서 성체와 성모 신심을 확산했다. 또 르네상스 시대 교황들은 종교 개혁에 맞서 교회 쇄신에 힘썼고, 근현대 교황들은 계몽시대와 산업혁명, 세계대전과 디지털 시대를 겪으면서 시대의 문화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한 생명의 문화로 정착될 수 있도록 헌신했다. 교황 주일을 맞아 역대 교황 가운데 세상과 소통한 교황들을 소개한다. 성 실베스테르 1세(재위 314~335) 성 실베스테르 1세는 콘스탄티누스 대제로부터 신앙의 자유를 인정받아 박해 시대 지하 교회를 지상으로 끌어 올린 교황이다. 그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도움으로 ‘세상 모든 교회의 어머니이며 으뜸’인 라테라노 대성전과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의 무덤 위에 대성전을 지었다. 그는 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314년에 소집한 제1차 아를 공의회와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 특사를 보내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한 아리우스를 이단으로 단죄하고, 천주 성부와 성자는 ‘한 본체’임을 선언했다. 실베스테르 1세는 22년간 교황직을 수행하면서 정통 신앙을 고수하고 지상 교회 제도의 틀을 갖추는 데 헌신한 교황이다. 성 레오 1세(재위 440~461) 성 레오 1세는 성 그레고리오 1세와 함께 ‘대교황’으로 불리고 있다. 그는 451년 칼체돈 공의회를 소집해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한 네스토리우스와 단성론자를 이단으로 단죄하고 ‘그리스도는 신성과 인성 두 본성 안에 있는 한 인격’’이라고 선포했다. 또 ‘베드로의 대리자’라는 칭호를 처음으로 사용하며 보편 교회 안에서의 교황 수위권을 강화했다. 그는 또 452년 훈족의 아틸라 왕이 이탈리아 북부를 초토화하고 남부까지 쳐들어오자 로마 원로원 사절 자격으로 직접 중재를 성사시켜 훈족으로부터 로마를 구했다. 이후 로마 시민들은 레오 1세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여 ‘대교황’이라 불리게 됐다. 그는 교황으로서는 첫 번째로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 묘지에 안장됐다. 성 그레고리오 1세(재위 590~604) 그레고리오 1세는 수도자 출신 첫 교황으로 ‘대교황’이라 불린다. 자신을 ‘하느님의 종들의 종’이라 부르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또 그는 롬바르드 왕국의 침략에 맞서 로마를 구하고 부유한 가문들이 교회에 기부한 토지로 교황령의 기초를 놓았다. 그는 사제 독신제를 시행하고 주교 품행에 관한 규정을 세워 죄를 지은 고위 성직자를 면직시켰다. 또 성 베네딕도의 수도 규칙을 기반으로 한 수도원 제도를 널리 시행하고,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는 로마 미사 전례서를 만들었다. 아울러 잉글랜드와 독일, 스페인 지역을 선교해 그리스도교화 했다. 레오 13세(재위 1878~1903) 레오 13세는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 자극을 받아 교회 쇄신과 세계와의 대화에 힘썼다. 그는 1891년 사회 회칙 「새로운 사태」를 반포하고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사유재산뿐 아니라 공정한 임금, 노동자의 권리, 노동조합을 지지하면서 사회주의를 단죄하고 사회 정의를 옹호했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의 교황’이라 불린다. 또 사회주의, 공산주의, 허무주의에 관한 회칙을 반포, 교회와 사회 사이의 대화 장을 열었다. 아울러 신앙 때문에 갈라진 형제들과의 일치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다. 레오 13세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묵주 기도에 관한 회칙 11편과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과 성체에 관한 회칙 2편을 발표하고, 1893년 성가정 축일을 도입하는 등 신자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서도 헌신한 교황이다. 신학교 교육 과정을 현대화하고 토마스 아퀴나스를 신학과 철학 연구의 본보기로 삼을 것을 권고했다. 아울러 성경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해 1902년 교황청 성서위원회를 설립했다. 베네딕토 15세(재위 1914~1922) “세계 평화를 위해서는 우리의 생명마저도 기꺼이 희생시켜야 한다.” 베네딕토 15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그는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헌신한 교황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전쟁 포로에 대한 보호, 전쟁 부상자들의 교환, 생필품 준비 등을 통해 전쟁 참상을 완화하는 데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특히 ‘아동 구호 기금’을 적극 후원했고, 소련의 기아 문제 해결에도 힘썼다. 베네딕토 15세는 또 1917년 새 교회법을 반포했고, 동방교회성과 동방대학을 교황청에 설립해 교회 일치에도 노력했다. 성 요한 23세(재위 1958~1963) 성 요한 23세는 뛰어난 직관력으로 교회의 미래상을 그렸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한 교황이다. 쇄신을 통해 현대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세상을 향해 교회를 개방하고 모국어로 미사를 봉헌하게 했다. 또 회칙 「어머니와 스승」을 반포, 부유한 국가들이 가난한 국가를 도우라고 요청했다. 아울러 회칙 「지상의 평화」를 통해 세계 평화가 인간의 권리와 의무임을 강조하고 서방 세계와 공산주의와의 평화 공존을 역설했다. 성 바오로 6세(재위 1963~1978) 성 바오로 6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교황이다. 그는 세계 여러 나라를 사목 방문한 첫 번째 교황으로 ‘순례자의 교황’이라 불린다. 그는 세계를 순방하면서 화해와 쇄신, 평화를 주창했고, 1965년 동방 교회 총대주교 아테나고라스 1세를 만나 1054년 동방 교회에 내린 파문을 철회하면서 교회 일치의 토대를 마련했다. 그는 회칙 「민족들의 발전」을 통해 사회정의 실현을 요구했고, 「인간 생명」을 반포, 인위적 산아제한을 단죄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재위 1978~2005)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하드리아노 6세 이래 456년 만의 비 이탈리아인 교황이자 최초의 슬라브인 교황이다. 그는 첫 회칙 「인간의 구원자」를 통해 인간 존엄성과 사회정의를 촉구했다. 또 두 번째 회칙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통해 갈수록 위협받는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자비를 보이라고 당부했다. 아울러 세 번째 회칙 「노동하는 인간」에서 자본주의나 마르크스주의가 아닌 노동자들의 권리와 노동의 존엄성에 기초한 새로운 경제 질서를 요청했다. 이어 「사회적 관심」과 「백주년」을 통해 마르크스주의와 물질지상주의, 자본주의를 비난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6월 30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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