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이 궁금해요] 치명
신앙선조들이 ‘순교’ 표현한 말 치명(致命, martyrdom, martyrium) [치ː명]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을 신앙선조들이 부르던 말. 같은 말 순교(殉敎). - 조르조 바사리의 ‘성 스테파노의 순교’.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있다면 ‘생명’일 것이다. 일단 살아있지 않으면 그 무엇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이 생명을 바친다는 것은 가장 소중한 생명보다도 소중한 것임을 고백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선조들은 박해자들 앞에서 신앙을 증거하면서 죽음을 당하는 것을 ‘위주치명’(爲主致命)이라 불렀다. 바로 오늘날 우리가 ‘순교’라고 부르는 말과 같은 말이다. 신앙선조들은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이 말의 뜻을 담아 ‘치명’이라는 말로 순교를 표현했다. 라틴어로 치명, 즉 순교는 본래 ‘증언’ 혹은 ‘증거’ 의미의 그리스어에서 온 말이다. 이 말이 성경에서는 사도행전에서 “주님의 증인인 스테파노”(사도 20,22)라고 처음으로 등장하고, 요한묵시록에서는 “성도들의 피와 예수님의 증인들의 피”(묵시 17,6)라고 사용되는 등 ‘피를 흘리는 증거’로써 사용됐다. 이후 교부들은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피 흘려 죽었음을 나타내는 말로 이 말을 사용해왔다. 모든 죽음이 순교인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순교자의 조건을 3가지로 드는데, 첫째는 실제로 죽임을 당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진리를 증오하는 자에게 죽음을 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와 그의 진리를 지키고자 기꺼이 스스로 받아들인 죽음이어야 한다. 신앙과 진리를 위해서라는 이유가 있더라도 자살이나 선택하지 않은 죽음은 엄밀히 따지면 순교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순교하려는 자는 비록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널리 증거하려는 목적을 가지지 않고 그저 ‘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필리 1,23) 있고자 하는 마음뿐일지라도 순교의 결과는 증거가 된다. 103위 순교성인과 124위 순교복자, 하느님의 종들, 그리고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무명순교자들에 이르기까지 이 수많은 순교자들의 증거야말로 오늘의 한국교회를 지탱하는 뿌리다. [가톨릭신문, 2019년 9월 1일,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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