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 - 세상의 빛] 37. 정치 공동체와 올바른 민주주의(「간추린 사회교리」 407~409항) 극단과 진영을 극복해 대화와 상생으로 헬레나: 신부님, 요즘 보면 사람들이 양쪽으로 갈라진 것 같은 느낌이에요. 그런데 자신들의 이야기만 많이 하지 상대방의 이야기는 전혀 듣지 않는 것 같아요. 특히,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야기가 더 심해요. 마치 목소리 큰 사람이 주도권을 잡는다고나 할까요? 이 신부: 아, 그렇군요. 정의와 도덕이 결합돼야 할 민주주의 가톨릭교회는 민주주의를 높이 평가하고 그것을 통해 올바른 정치가 구현되길 고대합니다.(「백주년」 46항) 또한 올바른 민주주의는 사회교리의 원리 중 하나로서 인간의 존엄과 공동선이 지켜질 때 실현되는 것이라 합니다.(「간추린 사회교리」 407항) 그리고 보편적 진리와 객관적인 기준을 인정하지 않는 윤리 상대주의나 회의적 상대주의를 민주주의의 가장 큰 위협요소라고 밝힙니다. 실제로 보편적 진리가 없는 민주주의는 정세나 상황에 따라 쉽게 조작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민주주의라 하더라도 특정 개인과 정당의 정치적 목적과 기득권에 의해 좌지우지 될 수도 있습니다. 그 보편적 진리란 정의와 공정이며 그 중에서도 생명과 인간 존중, 섬김과 봉사입니다.(「간추린 사회교리」 383항) 극단의 진영 논리 개인의 삶도 그러하지만 그 개인과 밀접한 사회도 식별과 지혜 그리고 이것이 소통되는 대화의 자리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의 그 자리에 극단주의와 진영논리가 자리잡았습니다. 지역과 계층 간 갈등이 심한 한국사회에서 이러한 폐해는 더욱 심화됐습니다. 심지어 대화마저 거부하고 반지성적 배타주의로 일관하는 극단적 정치주의도 횡행합니다. 이들에게 자신과 견해가 다른 세력은 제거해야 할 적일 뿐이며, 대화와 타협을 제안하는 이는 배신자라 여깁니다. 이것이 과연 건강하고 올바른 것입니까? 사회에 만연한 오럴 해저드(Oral Hazard)와 막말, 가짜뉴스, 뉴스 편식으로 인한 ‘확증편향’은 그러한 진영논리와 극단적 정치를 더 심화합니다. 그런 분열과 선동도 문제지만 사안의 본질을 자세히 보지 않으려는 우리의 책임도 있습니다. 대화와 존중, 소통과 경청의 가치 회복 절실 최근 한 공직자의 임명을 두고 온 나라가 갈라졌습니다. 관련 언론보도가 100만 건이 넘었다고 합니다. 이 사태 역시 진영논리와 극단주의가 작용했다는 분석이 큽니다. 사안에 대한 도덕적 실망과 함께 노인과 청년, 고용과 인권 문제를 비롯한 사회의 긴급한 민생현안이 도외시됐기에 상실감은 더 큽니다. 그러나 그 사안을 놓고 여전히 적대감과 대립만이 존재하고 있으며 해결과 봉합은 요원해 보이기에 더 안타깝습니다. 지금 우리는 민생도 중요하지만 올바른 민주주의의 기틀을 다지는 것도 급합니다. 올바른 민주주의는 나의 목소리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지 않을 때 친교와 관계, 상생과 협치, 올바른 정치와 민주주의는 불가능합니다. 대화와 존중은 한 개인의 영적이고 인격적인 품위이자 덕입니다. 동시에 참으로 중요한 사회적 자산이자 성장과 발전의 동력이며 정치의 근간입니다. 우리 사회가 다른 무엇보다도 대화와 존중, 소통과 경청의 문화를 시급히 회복해야 합니다. “참된 민주주의는 단지 일련의 규범들을 형식적으로 준수한 결과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존엄, 인권 존중, 정치 생활의 목적이며 통치 기준인 공동선에 대한 투신과 같이 민주주의 발전에 영감을 주는 가치들을 확신 있게 수용한 열매이다. (「간추린 사회교리」 407항) [가톨릭신문, 2019년 9월 22일, 이주형 신부(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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