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 - 아는 만큼 보인다] 38. 하느님의 외아들(「가톨릭 교회 교리서」 441~445항)
하느님의 외아들이신 예수님은 유일한 구원자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은 어디 있을까요? 바로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믿음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자신이 아버지라 부르는 대상만큼 변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는 목사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고흐의 아버지는 아들도 목사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고흐도 그렇게 믿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탄광촌에서 목회하던 중 광부들의 파업에 연루되어 사목직을 박탈당합니다. 그 이후부터는 그림 그리는 일에 전념합니다. 물론 아무도 고흐의 그림을 사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는 수백, 수천 점의 명작을 계속 그렸습니다. 대부분의 걸작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나왔습니다. 마치 아버지가 그의 걸작들을 움켜쥐고 있다가 갑자기 풀어놓아준 것과 같았습니다. 코이란 물고기는 자신이 담긴 어항의 크기에 맞춰 성장합니다. 모든 이에게 ‘아버지’란 이름도 어항의 크기와 같습니다. 늑대에게 자라 아버지가 늑대라고 믿는 아이는 절대 보통 인간처럼 두 발로 일어설 수 없습니다. 늑대에게 자란 아이가 사람 사이에서 살려면 먼저 자신의 아버지가 늑대가 아니고 사람임을 믿어야합니다. 그러나 늑대는 이 사실을 아이에게 알려줄 수 없습니다. 알려주어도 아이는 믿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인간이 커다란 사랑을 주며 그의 아버지가 인간임을 믿게 해야 아이도 늑대의 본성을 벗고 인간이 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아버지라 믿게 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느님을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요한 20,17)라 하셨습니다. 또한 하느님께 기도할 때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마태 6,9)라고 부르며 기도하도록 하셨습니다.(443항 참조) 교회의 모든 구성원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성령의 힘으로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갈라 4,6)라 부릅니다. 그렇게 인간의 본성을 벗고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납니다. 이것이 구원에 이르는 믿음입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먼저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셔야 했습니다. 인간이 하느님을 아버지라 알려주면 농담으로 여기겠지만 하느님의 외아드님이 그렇게 말한다면 사정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어떤 아이가 본래 한 왕국의 왕자였지만 사정상 시골의 한 가정에 맡겨져 자라게 되었습니다. 때가 되어 그를 키워준 부모가 그 아이에게 “당신은 사실 이 왕국의 임금이 되실 분입니다”라고 말했지만 그 아이는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임금의 신하들까지 와서 그런 말을 하니 조금은 이상하게 여겼지만 참으로 믿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임금의 유일한 아드님이 직접 찾아와서 “형님은 제 유일한 핏줄입니다”라고 말하니 믿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를 위해 하느님의 외아드님께서 직접 세상에 오셔야 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참 아버지를 알려주신 예수님은 당신께서 사실 “하느님의 외아들”(요한 3,16)이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도 직접 아드님의 세례 때와 변모 때 예수님을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확증해주셨습니다. 따라서 구원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외아드님을 믿는 것에서 시작됩니다.(444항 참조) 「사랑의 기술」의 저자 에리히 프롬(1900~1980)은 여러 번 결혼에 실패한 사람입니다. 나중에야 그 실패 이유가 부모를 떠나지 않고 사랑하려 했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지독한 경건주의자로 키운 유다인 아버지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다교에서 절대 금기시된 ‘돼지고기’를 먹는 예식을 행합니다. 그리고 비로소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라 독립한 한 어른으로서 한 여성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부모가 늑대라고 믿으면 인간적인 사랑은 절대 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부모가 인간이라 믿으면 하느님적인 사랑은 불가능합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하느님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알려주러 오신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외아드님이셨음을 먼저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믿음을 강화시키는 어떠한 예식을 거행해야 합니다. 이 예식이 하느님의 자녀만이 참여할 수 있는 천상양식을 먹는 성찬식입니다. 양식을 주시는 분이 부모입니다. 인간의 부모가 주는 양식이 아니라 천상의 부모가 주는 양식을 먹는 예식을 통해 우리의 참 아버지가 하느님임을 기억합니다. 예수님은 이 믿음을 주시기 위해 “사람의 아들”이 되셨고, 이 믿음을 받아들인 이는 자신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느님이 되어야만 인간 본성의 죄성(罪性)에서 벗어나 하느님으로서 행할 수 있는 사랑의 수준에 도달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 수준의 사랑을 할 줄 아는 한 아버지 밑에 모인 한 가족입니다. [가톨릭신문, 2019년 9월 29일, 전삼용 신부(수원교구 영성관 관장 · 수원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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