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 - 세상의 빛] 38. 정치적 풍토 만드는 성숙한 의식(「간추린 사회교리」 391항) 사익(私益) 앞세운 유권자에게 인간다운 삶 보장하는 정치는 없다 베드로: 신부님, 요즘 살기가 여러워 많이들 불안해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꾸 이기적으로 되는 것 같아요. 나와 우리 가족만 잘살면 된다는 그런 생각 말입니다. 이 신부: 요즘 다들 어렵다고 하시지요? 형제님은 가장이시니 그럴 수도 있습니다. 베드로: 그래도 어려운 이웃들을 도와야 하는데, 하느님 앞에서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신앙의 가르침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정치를 하려할까?’ 봉사를 해보셨습니까? 그러나 봉사는 어렵습니다. 삶이 바쁘고 봉사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보상이 주어진다면 그것은 봉사가 될 수 없겠지요. 「간추린 사회교리」에서는 교회를 일컬어 ‘구원의 봉사자’라 하며(60항), ‘정치공동체의 목적은 봉사’라 합니다(412항). 이런 상상을 해 봅니다. 보상 없이 순수한 봉사로서 정치활동이 가능한가? 아마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는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교회의 가르침과도 어긋납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정치인들이 누리는 특혜들이 지나치다는 기사가 자주 보도됐습니다. 어떤 예능프로는 한국의 선거철 정치쇼를 풍자한 적이 있습니다. 선거철에 유세만 한다고 비판 받는 정치인도 있습니다. 물론 모든 정치인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 그러나 섬김과 봉사라는 정치 본연의 목적이 과연 존재하는가 우려스럽습니다. 주권재민(主權在民), 정치적 풍토를 만드는 것은 결국 국민적 의식 많은 정치인들이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장담합니다. 그러나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권한을 위임받은 정치인들은 국민에 봉사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선출하는 것은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들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정치 풍토는 1차적으로 유권자인 우리의 책임도 있습니다. 사회의 정치 풍토는 국민적 인식의 반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치인이 아니라, 우리를 성찰해 봅시다. 우리들도 정치를 논하고 기득권을 규탄하고 정치의 정화를 요구하지만 정작 섬김과 봉사라는 가치를 중요시합니까? 오히려 이익 없는 일은 안 한다는 구두쇠 인식만을 갖고 사는 것은 아닐까요? 최근 우리 사회의 최대 논란거리는 불평등입니다. “부모 잘 만나는 게 스펙”이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물론 사회적 부조리와 불의함은 반드시 해결돼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듯 우리의 정치 풍토 역시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기회의 불평등을 성토하지만 나보다 약한 사람에게도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나와 우리 가족만을 위해 사익을 추구합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의 속마음이라면 그 어떤 정치 시스템도, 정치인도 이를 해결하기는 어렵습니다. ‘섬김과 배려를 실천해야’ 자본주의사회에서 소비자에게 주권이 있듯이, 대의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유권자에게 권한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OECD회원국 중에서 최고 수준의 고등교육 이수율을 자랑합니다.(OECD 평균 44.3%, 한국은 69.6%) 이제 우리는 자문해야 합니다. 높은 교육 수준만큼의 성숙한 시민의식과 윤리의식이 있습니까? 생명의 빵을 찾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는 얼마나 깊이 받아들입니까? 우리는 물신주의와 이기주의를 이겨내고 나보다 약한 사회적 약자들을 도울 준비가 돼 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들이 그 사회의 정치 성질과 본질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신앙인은 가장 먼저 봉사와 섬김, 약자를 위한 배려라는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사회생활이 지향해야 할 ‘사랑의 문화’의 이상을 더욱 성숙하게 인식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수록, 사회생활은 더욱 인간다워진다.”(「간추린 사회교리」 391항) [가톨릭신문, 2019년 9월 29일, 이주형 신부(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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