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에 처음입니다만] (31) 가톨릭 신자들은 왜 외국 이름을 가지나요?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명 담긴 ‘세례명’ - 세례명은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난 신자가 받는 영적 이름이다. 이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로 그리스도인 각자가 신자로서 앞으로 다할 사명을 나타내는 이름이다. 나처음 : 가톨릭 신자들은 왜 자기들끼리 베드로, 마리아 같은 서양 이름으로 부르나요. 같은 그리스도인인 개신교 신자들은 그렇지 않은데…. 로마 교황청에 대한 문화 사대주의를 드러내는 게 아닌가요? 조언해 : 헐! 진심 어이 털림(어이없다). 뭔 문화 사대주의야. 세례받을 때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났다는 의미로 교회 이름을 받는 거야. 그래서 그걸 ‘세례명’이라고 하는 거야. 라파엘 신부 : 하하! 처음이가 ‘세례명’에 관해 정말 궁금했구나. 성당도 처음인데 신자들이 “요셉 형제님” “마리아 자매님” 하고 서로 부르니 무척 낯설었겠구나. 그것도 일종의 문화 충격이었을 테니 언해야 너무 나무라지 마. 오늘은 세례명에 관한 처음이의 궁금증을 풀어줘야겠구나. 언해 말대로 세례명은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난 신자가 받는 새로운 영적 이름이야. ‘영명’(靈名), ‘본명’(本名)이라고도 하는데 세례명이 올바른 표현이야. ‘Nomen est Omen(노멘 에스트 오멘, 이름이 징조다)’이라는 라틴어 속담이 있어요. 이름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려준다는 뜻이야. 이 속담처럼 세례명은 그리스도인 각자의 신원을 알려주기 위해 하느님께서 주시는 소중한 선물이란다.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어 보마. 성경에는 하느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새로운 사명을 부여하실 때 그 사람의 이름을 바꾸어 주는 경우를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단다. 하느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시어 “이제 너의 이름은 아브라함이다. 내가 너를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로 만들었기 때문이다”(창세 17,5)라고 새 이름은 주셨지.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예수님 자신이야.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나자렛 고을 마리아에게 찾아가게 하시어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루카 1,31-32)라고 고하게 하셨지. 예수는 히브리 말로 ‘요슈아’라고 하는데 ‘야훼께서 구하신다’라는 뜻이야. 하느님께서 직접 당신 외아드님의 사명을 드러내기 위해 그 이름을 예수라고 지으신 것이지. 이처럼 세례자도 자기가 가톨릭 신자로서, 즉 그리스도인으로서 앞으로 다할 사명을 나타내는 이름을 선택하는 거야. 그래서 이 중요한 세례명에 관해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세례명은 수호성인들의 전구와 사랑의 모범을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드러내는 표지이며, 하느님의 부르심에 충실히 응답하겠다는 약속의 징표”(2156항 참조)라고 설명하고 있단다. 세례명은 일반적으로 교회 성인들 가운데 한 분의 이름을 따서 정해요. 세례 때 자신이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성인을 선택해 평생토록 자신의 수호성인으로 특별히 공경하고 보호를 청하며, 그의 성덕과 품성을 본받으려고 노력해야 해. 언제부터 세례명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3세기 중엽 이후부터 태어난 아이에게 성경에 나오는 이름이나 성인들, 순교자들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관례처럼 행해졌단다. 또 4세기 이후부터는 성인들의 이름뿐 아니라 ‘피데스’(Fides, 믿음, 신앙), ‘Agape’(아가페, 사랑), ‘Spes’(스페스, 희망)와 같은 그리스도인의 덕(향주덕)을 뜻하는 이름들도 세례명으로 사용했단다. 14세기 비엔 공의회(1311~1312)는 세례성사 때에 세례명을 받는 것을 공식적으로 선포해 정착시켰고,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는 개신교의 주장에 반대해 성인 공경을 강조해 본당 신부는 신자들에게 자녀들의 세례명을 반드시 성인의 이름으로 짓도록 권고할 것을 명했단다. 현행 교회법도 영세자가 그리스도적 감정에 어울리지 않는 이름을 세례명으로 짓지 않도록 부모와 대부모, 본당 신부들이 살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단다.(855조 참조) 이처럼 세례명은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로 그리스도인 각자가 신자로서 앞으로 다할 사명을 나타내는 이름이라고 정의할 수 있단다.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10월 20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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