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 - 아는 만큼 보인다] 46. 예수님의 세례(「가톨릭 교회 교리서」 535~537항)
하느님을 참 아버지로 인정하면 그분 영향 받지 않을 수 없어 밤에 어떤 사람이 언덕 위에 있는 으스스한 공동묘지를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인기척이 나서 화들짝 놀랐습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가만히 보니 한 아이가 공동묘지에서 재미있게 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어른은 다가가서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공동묘지인데 여기서 혼자 있는 것이 무섭지 않니?” 이렇게 묻자 꼬마는 “아뇨”라고 당당히 대답했습니다. “왜 무섭지 않지?”라고 어른이 다시 묻자 꼬마는 활짝 웃으며 말했습니다. “우리 아빠가 이 묘지 관리인이거든요.” 아이가 아버지를 믿는다는 것은 아버지의 존재만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를 믿으면 아버지로부터 영향을 받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믿는 사람에게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이가 공동묘지에 있는 것을 무서워하면서 아버지를 믿는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자녀라고 하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 아버지는 당신을 믿는 자녀들에게 이웃을 사랑하라는 마음만을 심어주십니다. 하느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고 그 뜻에 영향을 받기 시작하는 결정적 계기가 ‘세례’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우리 아버지이심을 믿기로 결단을 내립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아버지로 여기는 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하는지 당신도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보여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실 때 하늘에서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루카 3,22)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드님이 당신께 순종하기를 결심했기 때문에 하느님도 예수님을 아드님으로 인정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례 이전까지는 인간적 부모에게 순종하며 살았지만(루카 2,51 참조), 세례 이후부터는 하느님의 뜻에만 순종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세례가 순종할 아버지를 바꾸는 계기가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 12,5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신앙인은 아버지의 뜻이 자신 안에서 이루어지게 함으로써 하느님의 참 자녀로 인정받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자신 안에서 이루어지게 하려면 반드시 이전의 자신은 십자가에 못 박혀야합니다. 교리서는 “세례를 받으실 때 예수님께서는 ‘고난 받는 종’이라는 당신의 사명을 수락하시고 그 사명을 수행하기 시작하셨다”(536항)고 말합니다.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내 자신을 십자가에 매달 줄 알 때 비로소 하느님의 자녀의 자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녀들이 당신의 뜻을 따를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그 힘이 ‘성령’이십니다. 예수님도 세례 받으실 때 성령을 받으셨습니다. 성령은 사랑을 위해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게 만드는 힘입니다. 사랑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를 통하여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령의 힘으로 살지 않는 사람 또한 하느님 자녀가 아닌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을 받기 위해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이런 의미로 세례는 또한 꾸준한 기도생활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은 후 기도하시기 위해 바로 광야로 나가셨습니다. 이웃을 용서하고 사랑하기 위해 기도하지 않으면 하느님을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신앙생활을 했다고 하더라도 마지막 심판 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마태 7,23)라는 판결을 듣게 됩니다. 자신이 먼저 하느님을 외면했으니 하느님도 그를 자녀로 인정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자녀는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 성자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하는 자녀가 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로마 6,4)”(537항) 세례를 통해 믿게 된 하느님 아버지의 뜻 때문에 삶에 변화가 생겨야 합니다. 하느님의 자녀라면 매순간 아버지의 뜻이 자신을 통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야 합니다. 세례는 단순한 예식이 아니라 십자가의 사랑을 시작하는 삶의 변화의 출발점입니다. [가톨릭신문, 2019년 11월 24일, 전삼용 신부(수원교구 영성관 관장 · 수원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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