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 - 아는 만큼 보인다] 47. 예수님께서 겪으신 유혹(「가톨릭 교회 교리서」 538~540항)
광야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따라야 할 모범 보여주신 예수님 어느 날 한 어머니가 아들을 데리고 간디를 찾아왔습니다. “선생님, 제 아이가 사탕을 너무 많이 먹어 이가 다 썩었어요. 제 아들은 선생님 말씀이라면 무엇이든지 잘 들어요. 그러니 선생님께서 말씀 좀 해주세요.” 그런데 뜻밖에도 간디는 “한 달 후에 데리고 오십시오. 그때 말해주지요”라고 말했습니다. 아이 어머니는 놀랍고도 이상했으나 한 달을 기다렸다가 다시 간디에게 갔습니다. “한 달만 더 있다가 오실 수 있습니까?” 아이 어머니는 정말 이해할 수 없었으나 참고 기다다가 한 달 후에 또 찾아갔습니다. “애야, 지금부터는 사탕을 먹지 말아라.” “예! 절대로 사탕을 안 먹을래요.” 소년의 어머니가 간디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말씀 한 마디 하시는데 왜 두 달씩이나 걸려야 했나요?” “실은 나도 사탕을 좋아해서 사탕을 자주 먹는 습관이 있었어요. 그 습관을 끊는데 두 달이 걸렸답니다.” 스승은 모범으로 가르쳐야합니다. 예수님도 그러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다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요한 13,14-15) 예수님의 모든 생애는 그분을 따르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본받아야 하는 표본이요 모범입니다. 그분은 사랑도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요한 15,12)하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죄를 이기시는 방법도 당신의 모범으로 알려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와 싸우러 나가신 장소는 ‘광야’입니다. 사탄으로부터 유혹받기 위해 광야로 나가신 것입니다.(루카 4,1-2 참조)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어떻게 유혹을 이기시는지 보여주심으로써 우리도 따라하도록 자진해서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교리서는 “첫 아담은 유혹에 넘어졌으나, 예수님께서는 꿋꿋하게 서 계시는 새 아담이시다”(539항)라고 말합니다. 첫 아담은 광야로 나아가 유혹과 싸울 줄 몰랐기 때문에 죄에 떨어진 것입니다. 죄를 이기는 방법은 예수님을 따라하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광야로 나가 단식하면 마귀의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사탄은 모든 인간에게 ‘소유욕-성욕-교만’의 세 욕구를 자극해 죄를 짓게 만듭니다. 이를 그리스도인들이 싸워야 할 세 원수, 즉 삼구(三仇)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이 세 유혹과 싸워 이기셨습니다.(538항 참조) 반면 아담은 ‘선악과를 소유하라’는 욕구와 ‘여자’의 유혹과 ‘하느님처럼 될 수 있다’는 교만의 유혹을 견뎌내지 못했습니다. ‘광야’로 나갈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반면 예수님은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기 위해 세상 부귀영화에 대한 유혹을 물리치셨고, 돌을 빵으로 만들어보라는 육체의 유혹을 이기셨으며, 하느님께서 계신 성전 위에 서서 하느님을 시험하라는 교만의 유혹도 이기셨습니다. ‘광야’로 나가실 줄 아셨기 때문입니다. 광야에 머물 줄 알아야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세례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그리스도의 모범대로 광야로 나가야합니다. 광야는 먹고 마실 것도 없고 내일도 모르며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르는 죽음의 공간입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길 수밖에 없는 곳입니다. 소유욕과 육욕과 교만이 자리할 수 없는 공간입니다. 우리의 삶을 광야로 만들 수 없으면 죄에서 헤어 나올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싸움을 지금 당장 시작하라고 “우리를 위하여” 그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540항 참조) 세례 때 받은 성령의 힘으로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고 있다면(로마 8,15 참조)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아야합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돈을 섬길 수 없고 육체의 욕망이나 자기 영광을 추구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라 믿는다면 이런 유혹들과 반드시 전쟁을 치르고 있어야합니다. 아기가 부모처럼 되려고 수천 번 넘어지면서도 걸음마를 포기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 싸움을 한다면 광야에 머무는 것이고 광야에 머물 때야만 그리스도를 닮은 것입니다. [가톨릭신문, 2019년 12월 1일, 전삼용 신부(수원교구 영성관 관장 · 수원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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