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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53: 예수님과 이스라엘(587~594항)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1-12 조회수1,990 추천수0

[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 - 세상의 빛] 53. 예수님과 이스라엘(「가톨릭 교회 교리서」 587~594항)


내가 못 박히기 원치 않아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로마를 세계 최강으로 만든 로마 최초의 황제입니다. 그러나 그는 황제가 된지 1년 만에 자신이 믿는 이들로부터 살해당합니다. 기원전 44년 3월 15일, 원로원 회의장에 들어가려는 카이사르를 14명의 귀족이 에워싸 23군데나 찔렀습니다.

 

눈을 감기 직전 카이사르는 암살을 주도한 데시무스 브루투스를 바라보았습니다. 브루투스는 갈리아 전쟁 전부터 카이사르의 총애를 받으며 로마의 번영을 위해 함께 일해 왔던 인물입니다.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카이사르의 유언 같은 한 마디 말, “브루투스 너마저!”는 카이사르가 생의 마지막 순간에 느낀 배신감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훗날 카이사르의 유언장이 공개되었을 때 브루투스는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카이사르가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한 이가 바로 브루투스였기 때문입니다. 브루투스는 왕으로부터 지배당하는 것을 원치 않아 장차 왕이 될 권한도 잃었습니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말이 있습니다. 토끼가 죽으면 토끼를 잡던 사냥개도 함께 삶아 먹는다는 뜻입니다. 필요할 때는 쓰고 필요 없을 때는 버리는 마음을 일컫는 말입니다. 로마 원로들은 카이사르가 자신들을 부강하게 만들어준 것은 인정하나 그에게 지배 받기를 원치는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 되시러 오십니다. 그분으로부터 지배를 받아야 나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나 자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면 죄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나의 왕이 되심을 거부하면 예수님은 나로부터 ‘토사구팽’ 당하십니다.

 

예수님은 죄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죄인들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죄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배고픔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메시아를 원했습니다. 죄로부터 해방시켜 줄 왕이 아닌 자신들을 영광스럽게 만들어줄 종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빵 5개 물고기 2마리로 장정만도 5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먹이시는 기적을 행하셨을 때 그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요한 6,15) 하였습니다. 먹을 것을 주는 종과 같은 허수아비 왕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구약에서도 이미 그리스도께서 어떠한 모습으로 오시는 분이신지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수백 년 전에 이미 십자가에 달린 메시아의 수난을 바라보며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라고도 했습니다.(이사 53,5 참조)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로 인간을 죄로부터 해방시키러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구원은 율법을 지키면 충분하다 여겼습니다. 로마로부터 해방시켜 주고 조용히 사라져 줄 왕을 원했습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해 줄 수 없다면 그런 왕은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메시아가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기 때문에 뱉어버렸습니다. 그 결과가 십자가의 죽음이었습니다. 죄로부터의 구원이 아닌 세속적인 욕망을 바라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못 박히십니다.

 

구원은 죄의 종살이 때문에 괴로워하는 이들의 몫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죄로부터의 해방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믿는 이들만 그분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마음에서 솟아나는 세상 것에 대한 욕망을 십자가에 못 박으러 오신 분이십니다. 이런 ‘죄인들을 속량하시는 그분의 소임’ 때문에 자아의 욕구를 내려놓기 싫어하는 이들에겐 그리스도께서 걸림돌이 되십니다.(587항 참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또 다시 십자가에 못 박지 않으려면 그분을 나 자신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유일한 구원자요 왕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죽어야 그리스도가 삽니다.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습니다.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를 원치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가톨릭신문, 2020년 1월 12일, 전삼용 신부(수원교구 영성관 관장 · 수원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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