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 - 세상의 빛] 54. 청년들에게 희망을! - No 갑질, 평등한 동반적 관계(「간추린 사회교리」 145항)
힘 없는 이들 울리는 갑질은 교묘한 악마의 얼굴 마리아: 신부님, 직장을 그만두게 됐어요. 비정규직이지만 매일 야근에 주말도 없고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도 참고 일했어요. 저희 부모님은 저 어렸을 때 더 힘들게도 일하셨거든요. 그런데 욕설과 폭언을 하는 것은 참을 수 없었어요. 이미 다른 직원들도 많이 그만뒀어요.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근로기준법 조항도 있다는데, 왜 그런 기본적인 법도 안 지키는지 모르겠어요. 이 신부: 그렇군요! 근절되지 않는 갑질 공정, 정의, 원칙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습니다. ‘공정사회’ 없이는 ‘상생 도약’도 없다고 천명한 정부는 권력기관과 제도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삶의 현장에서는 여전히 요원해 보입니다. 90%가량의 직장인들이 갑질에 시달려 본 적이 있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한국마사회의 비리와 부정, 갑질을 폭로하며 부산경마공원 기수 문중원 형제가 목숨을 끊었습니다. 2017년 이한빛 피디가 방송제작 환경의 갑질문화를 폭로하며 목숨을 끊은 일도 있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갑질(gapjil)이라는 표현을 ‘마치 중세시대처럼 직원이나 하청업자들을 학대(虐待)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연차와 지위 등 위계에 의한 무리한 요구, 욕설과 폭언, 심리적 압박과 퇴사 종용 등 갑질은 매우 다양합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됐으나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은 심각합니다. 더욱이 그 피해가 청년과 여성, 사회적 약자에게 집중된다는 것이 더욱 개탄스럽습니다. 법적 개선에도 이런 폐단이 근절되지 않아 더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직장 내 민주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한국을 등질 젊은이가 많을 수 있다고 분석합니다. 또한 사랑과 정의를 실현해야 할 교회 공동체도 이러한 상황을 점검해 봐야 합니다. 평화는 정의의 열매(Opus iustitae pax) 갑질은 폭력과 죽음의 문화이며, 불평등과 차별, 표리부동(表裏不同)이자 비겁하고 부당한 착취입니다. 사회를 병들게 하는 병폐이면서 그 자체로 큰 죄악입니다. ‘인종차별보다 더 무서운 직장상사의 갑질’이라 하듯 잔인하고 교묘한 악마의 얼굴입니다. 갑질이 근절되지 않는 원인은 복잡하지만, 결국 그 마음이 비뚫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말씀 대신 욕심과 이기심이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권력과 욕심에 가려 도덕과 윤리, 신앙의 가르침이 실종된 것입니다. ‘평화는 정의의 열매’라고 합니다.(이사 32,17; 야고 3,18, 비오 12세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갑질이 근절되지 않는다면 공정하고 건강한 사회도, 청년에 대한 희망도 불가능합니다. 한국은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는 경제강국이지만 과연 성숙한 의식이 자리 잡았는지 성찰해야 합니다. 낮은 ‘워라밸’ 지수와(35개 OECD국가 중 32위) 만연한 갑질은 결국 청년들을 병들게 하고 떠나게 할 것입니다. 사랑과 동반, 변화를 위한 실천 노동사목을 하면서 갑질을 당한 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접합니다. 그중 대다수는 청년들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참고 버티라고 하기엔 너무나 터무니없고 심지어 위법적 사례가 많습니다. 사회가 발전했지만 인식의 변화는 더 퇴보했다는 씁씁할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아무리 고용관계라고 하지만 피도 눈물도 없는 갑질은 대죄(大罪)입니다. 노동을 사랑이라고 표현한다면 너무 이상적일까요?(도로테 죌레 「사랑과 노동」) 하지만 우리는 하느님은 사랑이시라고 믿지 않습니까?(1요한 4,16)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 이에게 노동은 당연히 사랑입니다. 노동을 통해 사랑을 열매 맺기 때문입니다. 일자리와 효율성이라는 지표는 인간존중, 사랑과 동반이라는 가치와 함께 고려돼야 합니다. 서로에게 상하 지위가 아닌 평등한 동반자적 관계가 돼야 합니다. 청년들에게 그런 사랑의 문화를 보여 주고, 우리가 그런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인식하지 못하면 결국 우상숭배에 머무는 것이며 무늬만 신자일 뿐입니다. 또한 갑질에 의해 고통 받는 분들에게 제안합니다. 갑질 상사한테 맞추고 산다면 그 상사는 점점 더 괴물이 될 것입니다. 용기 있게 합리적으로 문제제기를 하십시오. 이웃이 죄를 짓게 내버려 두는 것보다 그가 회개하고 변화될 기회를 주는 것을 하느님은 바라십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인식할 때에 비로소 모든 사람은 함께 또 개인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이러한 성장을 촉진하려면, 남자와 여자에게 균등한 기회 조건들을 실제적으로 보장하고, 여러 사회 계층이 법 앞에서 객관적으로 평등하도록 보장하면서, 특별히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을 도와주어야 한다.”(「간추린사회교리」 145항) [가톨릭신문, 2020년 1월 19일, 이주형 신부(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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