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 - 아는 만큼 보인다] 57. 성 토요일(「가톨릭 교회 교리서」 624~630항)
성 토요일 신비는 창조주 하느님의 안식을 묵상하게 한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에서 밀 이삭을 뜯어 먹다가 바리사이들에게 들켜 비난을 당하였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마태 12,7)라고 하시며,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마태 12,8)라고 하십니다. 왜 제자들은 명확하게 안식일을 어기고 도둑질까지 하였는데 죄가 없다는 말씀일까요? 또 당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란 말은 무슨 뜻일까요? 창세기에서는 하느님께서 6일간의 창조를 마치시고 7일째 쉬셨다는 내용이 나옵니다.(창세 2,2 참조) 이 때문에 일주일 중에 일곱째 날인 토요일이 ‘안식일’이 되었습니다. 모세를 통한 안식일 규정은 매우 무섭습니다. “이날을 더럽히는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탈출 31,14)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유다인들은 이에 분개하여 예수님을 고발하였습니다. 거룩한 안식일에 일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안식일에 쉬어야 하는 것만 알았지 참 안식에 들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동참해야 하는 것은 몰랐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마르 3,4)라고 물으십니다. 우리도 참된 안식에 들려면 하느님 창조사업에 동참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7일째 안식하시기 위해 여섯째 날까지 하신 일은 ‘창조’였습니다.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창조이고, 목숨을 구하는 것이 창조이며, 구부러진 손을 펴주시는 것이 창조이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창조입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 되시는 이유는 창조자의 참된 협력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로 안식일은 주님 창조사업에 협력한 이들이 들어가는 하느님 나라의 안식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바오로 사도는 참된 안식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던 일을 마치고 쉬신 것처럼, 그분의 안식처에 들어가는 이도 자기가 하던 일을 마치고 쉬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와 같은 불순종의 본을 따르다가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없게, 우리 모두 저 안식처에 들어가도록 힘씁시다.”(히브 4,9-10) 그리스도께서 무덤에 묻히신 ‘성 토요일’은 참된 안식의 신비를 잘 설명해줍니다.(624항 참조) “참된 안식은 그리스도처럼 아버지의 뜻을 따라 새 창조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가 쉬는 시간입니다. 안식일은 목숨을 마친 하느님 창조사업 다음 날입니다. 마치 어머니가 피를 흘려 아기를 낳은 직후 쉴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해야 우리가 죄에 대하여도 죽습니다. 죽은 상태에서는 죄도 지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628항 참조) 바오로 사도는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19-20)라고 말합니다. 성 토요일의 신비를 사는 사람은 내가 죽고 그리스도께서 사시게 하는 삶을 삽니다. 그러면 자신의 죄도 사라지고 자신을 통해 새로운 창조가 일어납니다. 주님께서 그런 사람을 창조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안식에 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안식일에 남의 밭의 밀을 먹은 제자들도 그것으로는 더 이상 죄가 안 됩니다. 창조사업에 뛰어든 이는 이미 자신을 그리스도와 함께 봉헌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죄지을 자신이 죽었는데 어떻게 죄를 짓겠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성 토요일의 신비를 사는 사람들은 이미 안식일의 신비를 살기 때문에 죄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죄에서 해방되어 참된 안식의 신비에 참여하려는 우리 모두는 하느님께서 아드님을 통하여 하시고자 한 창조사업에 동참해야 합니다. 그 창조사업이란 목숨을 아끼지 않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투신하는 것입니다. [가톨릭신문, 2020년 2월 16일, 전삼용 신부(수원교구 영성관 관장 · 수원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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