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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63: 성자와 성령의 공동 파견(683~690항​)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3-28 조회수2,040 추천수0

[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 - 아는 만큼 보인다] 63. 성자와 성령의 공동 파견(「가톨릭 교회 교리서」 683~690항)

 

성령은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의 무덤이라 볼 수 있다

 

 

6·25전쟁 때 어느 추운 겨울 날, 연료가 소진된 미군의 트럭이 한 다리 위에서 멈추어 섰습니다. 도움을 기다리던 도중 한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게 됩니다. 군인들이 다리 밑으로 내려가 보니 아기를 자신의 옷으로 감싸고 추위를 이기지 못하여 죽어있는 한 어머니를 발견합니다. 다행히 아기는 어머니의 옷과 체온으로 살아있었습니다. 군인들은 어머니의 사랑에 감동하여 어머니를 다리 주위의 큰 나무 밑에 묻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전쟁 후 한 군인이 아기를 미국으로 데려가 키웠습니다.

 

아기가 청년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게 되었을 무렵 양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한국을 다시 찾았습니다. 아들에게 친어머니의 무덤을 보여주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날도 아기를 발견한 날처럼 매서운 추위가 몸을 움츠러들게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아들은 자신의 겉옷을 어머니 무덤에 덮어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 그때 얼마나 추우셨어요?”

 

무덤 안에는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어머니의 유골이 있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을 대신 키워준 양아버지 덕분으로 그 무덤 안에 어머니가 계시고 그 무덤을 통해 어머니의 사랑을 재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약 무덤 안의 어머니가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어주신 예수님이라고 한다면 무덤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당신이 품고 있는 분의 사랑을 증언해주시는 ‘성령’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한 양아버지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게 해 주는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는 당신 사랑을 증언해 줄 성자와 성령을 함께 파견하십니다. “성부께서 당신의 ‘말씀’을 보내실 때 언제나 당신의 ‘성령’도 보내신다”(689)라고 하듯, 성자와 성령께서는 서로 구별되면서도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한 하느님이십니다. 마치 어머니를 품은 무덤처럼 성령은 성자를 계시하십니다.(689 참조) 성령을 받은 사람을 ‘기름부음 받은 이’, 곧 ‘그리스도’라 부릅니다. 무덤과 어머니가 하나이듯, 몸에 발라지는 기름과 피부도 하나입니다. 그래서 교리서는 니사의 성 그레고리오의 말을 빌려 “사실 피부와 기름부음 사이에 이성적으로나 감각적으로 아무런 매개물을 인정할 수 없듯이, 성자와 성령의 접촉도 직접적입니다. 따라서 신앙으로 성자와 접촉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반드시 기름과 접촉해야 합니다. 사실 성령께서 감싸지 않는 부분은 없습니다”(690)라고 가르칩니다.

 

어머니를 만나려면 먼저 무덤을 접해야 하듯, “그리스도와 만나기 위해서는 먼저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이는 “성자 없이는 아무도 성부께 나아갈 수 없는”(683) 것과 같습니다. 성자께서 당신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며 아버지의 사랑을 증언하셨듯, 성령도 마치 무덤처럼 당신이 아닌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언해주십니다. 참 생명은 “하느님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한 17,3)인데, 이를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증언하시는 성령을 먼저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성령께서도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십니다.”(687) 성령을 증언하는 것은 ‘교회’입니다. 자신이 키운 아이를 친어머니의 무덤까지 인도한 양아버지가 우리에게 성령의 존재를 알게 하듯, ‘교회’도 진리와 은총을 베풂으로써 성령의 성전임을 세상에 드러냅니다. 교리서는 교회가 “성령을 인식하는 장소”(688)라고 정의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성령을 통해 하느님 사랑을 알았다는 증거는 무엇일까요? 청년이 자신의 겉옷을 벗어 어머니 무덤에 감싸드렸듯이 이제는 자신이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하느님의 사랑을 증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버지를 위해 아드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아드님을 위해 성령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성령님을 위해 교회가 그러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교회를 증언하는 삶을 삽니다. 모든 신자는 교회를 품고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교회는 성령을 품고, 성령은 그리스도를, 그리스도는 아버지를 품고 있습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돌아가시기 직전 “저는 거룩한 교회의 딸입니다”를 몇 번이고 외치셨습니다. 이것이 교회를 통해 성령을 만난 이의 모습입니다. 교회가 증언하는 성령은 그리스도를 증언하십니다. 교회의 일원인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가톨릭신문, 2020년 3월 29일, 전삼용 신부(수원교구 영성관 관장 · 수원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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