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 환경 보호 (1) 성경으로 보는 환경 보호 코로나19 바이러스 창궐로 인한 미증유의 사태 속에서, 환경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는 요즘입니다. 특히, 지난여름 우리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상관측 사상 최장의 장마와 잇단 태풍도 함께 견뎌내야 했습니다. 이제는 인류가 그동안 자연을 어떻게 대해왔고, 앞으로는 어떻게 자연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하여 성찰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먼저, 성경은 자연을 어떠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을까요? 보시니 좋았다 창세기의 저자는 태초에 하느님께서 세상 만물을 창조하셨고, 만드신 실체 하나하나를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창세 1,4.10.12.18.25 참조)라고 반복해서 전합니다. 피조물의 정점에는 인간이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하느님의 모습으로”(창세 1,27)로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일구고 돌보라는 소명 당신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에게 하느님께서는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습니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창세 1,28) 다스리라는 말씀은 창세기 다음 장의 내용과 병행하여 이해되어야 합니다.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데려다 에덴 동산에 두시어,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다.”(창세 2,15) 인간은 자연을 일구면서, 즉 활용하면서도 동시에 돌보아야 합니다. 보존의 책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역사 안에서 이 “다스려라”라는 말씀은 오인되었습니다. 그간 인간이 자연을 착취와 개발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았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터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화해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육화의 신비는 그분의 부활에서 정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께서는 만물이 당신께 복종하는 새 세상, 새 시대를 여셨습니다(1코린 15,20-28 참조). 이에 동참하는 인간 역시 새롭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2코린 5,17) 죄가 파괴했던 질서와 조화를 예수님께서 회복시키셨습니다. 이 회복의 과정에서 화해는 필수입니다.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콜로 1,20) 따라서 인간은 다시 자연과의 화해로 부르심 받았습니다. 여기에 응답해야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던 세상이 복원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가 하느님과 닮은 모습으로 창조되었고 우리에게 이 땅에 대한 지배가 부여되었다는 사실이 다른 피조물에 대한 절대적 지배를 정당화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강력하게 부인해야 합니다. 성경 구절은 그 맥락 안에서 올바른 해석학을 통하여 읽어야 합니다. 성경 구절은 우리가 세상이라는 정원을 ‘일구고 돌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하는 것입니다(창세 2,15 참조).”(교황 프란치스코, 회칙 「찬미받으소서」, 67항) [2020년 12월 13일 대림 제3주일(자선 주일) 의정부주보 5면, 김승연 프란치스코 신부(수동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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