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 환경 보호 (2) 사회교리로 보는 환경 보호 인류가 이룩한 과학과 기술의 결과는 그 자체로는 긍정적입니다. 가톨릭 교회는 진보를 결코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과학적·기술적 적용의 핵심이 되는 준거는 인간에 대한 존중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또한, 인간 존중이 인간을 절대자의 위치에 올려두는 것으로 오인되어서도 안 됩니다. 상호 존중, 즉 올바른 의미의 인간 존중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다른 모든 피조물 역시 존중하는 태도를 수반하며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헝클어진 인간과 환경간의 관계 자연에 대한 인간의 무분별한 착취 풍조는 오랜 역사적 문화적 과정의 결과입니다. 인간은 자연을 개발의 대상 혹은 자원 채취의 원천으로 격하시켰습니다. 이런 경향은 산업화 이후 기술 문명의 급격한 발달과 더불어 더욱 가속화되었습니다. 따라서 인간과 환경의 관계는 점점 더 위기 상황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의 근본 원인은 기술 개발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간 인류가 자기 행위에 대한 도덕적 고찰을 무시했다는 점, 그 결과 오만함으로 사물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배를 주장했다는 데에 근본적인 결함이 존재합니다. 온 인류의 과제, 환경 보호 환경 보호는 공동선의 문제입니다. 현재의 환경 위기는 특히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자신을 보호할 경제적 기술적 수단이 없는 사람들이 피해를 더욱 크게 받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환경 보호는 정의의 문제도 됩니다. 또한, 환경 보호는 미래 세대에 대한 현세대의 책임도 요구합니다. 현세대의 선택에 따라 미래 세대가 더 큰 피해를 받을 수 있기에 그러합니다. 결국, 환경 보호에의 관점은 우리에게 새로운 생활양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생활양식의 변화 없이 환경을 지켜내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생활양식은 개인적·사회적 차원의 검약·절제·자제로부터 생겨납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개인의 관점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소비 논리를 이겨내야 합니다. 이익의 극대화만을 목표로 하는 경제 체제 안에서는 환경에 대한 존중도 요원하기 마련입니다. 신앙의 관점에서 이 세상 만물은 창조주 하느님의 신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인간이 하느님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때, 자연과의 관계 역시 헝클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자연을 소비와 개발의 대상으로만 취급하면, 그 안에 담겨있는 하느님의 신비 역시도 잃어버리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환경 보호는 근본적으로 우리에게 생태적 회개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동료 인간이나 환경과 맺는 관계를 결정짓는 것은 바로 인간이 하느님과 맺는 관계이다. 그리스도교 문화는 언제나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피조물을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로, 창조주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르고 보살펴야 할 존재로 인정해 왔다. 베네딕토와 프란치스코 영성은 특히 인간이 피조물인 환경과 맺는 이러한 친밀한 관계를 증언해 왔으며, 인간에게 주변 세계의 모든 실재를 존중하는 태도를 길러 주었다.”(요한 바오로 2세, ‘환경과 건강’에 관한 회의 참석자들에게 한 연설, 4항) [2020년 12월 20일 대림 제4주일 의정부주보 5면, 김승연 프란치스코 신부(수동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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